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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슈 [2023.02] 세계가 만일 100명의 ‘나’로 구성된 마을이라면

글. 홍은전(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

 

서른여섯 살에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고 1년 뒤 무릎 부상까지 입었다. 무리한 글쓰기 노동과 피폐한 몸으로 떠난 도보여행의 결과였지만 다시 예전으로 회복되는 것이 아닌 퇴행과 노화의 시작이었다. 나는 내 몸이 그렇게 빨리 늙을 줄 꿈에도 몰랐다. 무릎이 아파서 한 계단 한 계단씩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평균’의 속도로부터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감각, ‘정상적’ 흐름에 내가 방해가 된다는 감각,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면 옆으로 빠져주어야 한다는 감각이 엄습했다. 내 인생에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이렇게 빨리 필요해질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장애인운동의 수혜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건 혼자 걸을 때 뿐, 함께 걷는 동행이 있을 때면 나는 마치 전혀 아프지 않은 것처럼 계단을 성큼성큼 내려간다. 그리고선 다음날 끙끙 앓기를 반복한다. 무릎 아프니까 좀 돌아가거나 천천히 가자는 말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 아프다는 건 부끄러운 것이고 느리다는 건 미안한 일이라는 걸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몸이 벌써 알았다. 자본주의적 효율성에 저항한다는 장애인운동을 하면서도 내 몸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건 두려웠고, 누군가의 약함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큰소리 뻥뻥치면서도 나의 약함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그 저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이라는 책이 있다. 63억의 인구가 복잡하게 뒤얽혀 살아가는 세계를 인구 100명의 마을로 축소해 ‘30명은 아이, 70명은 어른’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나는 그 가정을 자주 이렇게 바꿔본다. 세계가 만일 100명의 홍은전으로 구성된 마을이라면? 그러니까 ‘1세 홍은전’부터 ‘100세 홍은전’까지 종으로 이어질 ‘나’들이 횡으로 펼쳐져 동시에 살아가는 마을을 상상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나라는 존재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나기 이전 ‘22세 홍은전’ 과 만난 이후 ‘24세 홍은전’은 너무 다른 존재여서, 그 둘은 서로를 싫어할 것이다. ‘20대 홍은전들’과 ‘40대 홍은전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몸을 가졌는지에 따라 내가 경험하는 세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렇다면 그 중 몇 명의 ‘나’가 장애인이고 몇 명의 ‘나’는 비장애인일까?

 

나는 왜인지 그 비율이 사회의 장애출현율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답하기가 어렵다. 한국의 경우 인구의 5% 정도를 장애인으로 보지만 OECD 평균은 15%, 영국이나 미국은 20% 정도다. ‘심신의 손상이 사회적 장벽을 만나 차별받는 것’을 장애라고 했을 때, 일단 그 손상이란 것부터가 ‘있고 없음’으로 칼로 자르듯 나눠서 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체 위에 존재하는 차이이기 때문이다. 이 차이의 어디를 끊어서 장애와 비장애를 나눌 것이냐의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다. 스웨덴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민자도 장애인으로 보고, 어떤 나라는 HIV감염이나 비만도 장애에 포함시킨다. 장애인을 소위 ‘일반인’, ‘정상인’과 다르게 태어난 비극적이고 불행한 운명을 가진 존재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한국의 장애인구가 적은 것은 한국의 의료기술이 뛰어나서 장애가 다 치료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심해서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뿐이다.

 

2001년 내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가 되었을 때 나는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처음 만났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체 그동안 어디에 있었을까 신기할 정도였다. 그들은 모두 20-30대 청년들이었고 생애 내내 집과 시설에 갇혀 살았다고 했다. 같은 부모 아래 태어난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학교를 다니고 연애하고 취업하고 독립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동안 작은 방에 유폐되어 TV와 라디오를 친구 삼아 살아온 사람들, 바다를 본 적도 없고 언니의 결혼식에도 초대받지 못한 그런 사람들이었다. 나의 첫 임무는 신림동에 사는 내 또래 장애여성 K의 등교를 돕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이 도시가 계단 위에 지어진 문명이라는 사실과 그 계단들이 모두 K에게 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너는 들어올 수 없어. 아무도 너를 원하지 않아” 같은 말이었다. 세상은 거대한 ‘노 장애인 존’이었다.

 

노들야학은 학생들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해 봉고를 한 대 운영했다. 그 운영비가 연간 2천만 원임에도 불구하고 봉고 한 대가 이동시킬 수 있는 사람은 고작 6명뿐이었다. 봉고는 금세 만원이 되었고 7번째 사람이 야학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 노들야학이 여느 복지관처럼 당신은 올 수 없다고 친절하게 거부했거나 기다리라고 태연하게 말했다면 세상은 조용했을 것이고 2023년 한국의 풍경도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노들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천만 시민들이 이동하는 일상의 공간인 지하철에, 그러니까 비장애인들의 세상에 조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장애인이동권 투쟁은 노들야학의 이 이동과 함께 시작되었다. 배우기 위해선 이동해야 했고 이동하기 위해선 싸워야했다.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다 추락해 사망했을 때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이동할 권리를 외친 것도 바로 노들야학 사람들이었다. 중증장애인이라는 존재가 한국사회라는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열린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선전전 _ 2023. 1. 13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열린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선전전 _ 2023. 1. 13

 

2022년은 놀라운 해였다. 20여년 전 세상에 처음 등장했던 그들이 연일 뉴스를 장식한 것이다. 맨 앞에 있는 박경석 전 노들야학 교장의 파뿌리 같은 머리가 이 투쟁의 끈질김을 말해주고 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21년 12월부터 출근길 지하철타기 행동을 통해 이동권을 포함한 교육권, 탈시설 등 장애인 권리 예산을 편성해달라고 촉구했고 그 행동은 1년이 넘도록 지속되었다. 하지만 이 노력을 비웃듯 전장연이 요구했던 2023년 장애인 권리 예산 1조3천억 중 단 0.8%만이 국회를 통과했다. 지난 1월 전장연은 잠시 중단했던 지하철 행동을 다시 시작했지만 서울시는 이들의 열차 탑승 자체를 막고 열차를 무정차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전장연을 상대로 지하철 운행 차질에 대한 책임을 물어 6억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정치권의 공격적 선동과 시민들의 비난과 혐오도 거세졌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한탄하지만 되돌아보면 놀랄 만큼 많은 것이 변했다. 2001년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는 주장은 한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 장애인들의 과도한 요구라고 무시되었으나 2023년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율은 95%에 이르며 그것은 그저 상식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교육권, 활동지원서비스, 탈시설 등에 관한 눈부신 변화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장애인들의 존재투쟁이 전면화되었다. 밑바닥에 있는 자들에게 세상의 변화가 더 잘 보이는 법이다. 20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싸우며 세상의 밑바닥을 바꿔온 이들은 시간이란 1분, 10분 단위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 10년, 20년 단위로도 흐른다는 것을 잘 안다. 천만 명에게 욕을 먹을지라도 엘리베이터 하나를 더 설치하는 것이 결국 모두에게 이롭다는 것을, 비를 견뎌야 무지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선 인구의 30%를 교통약자라고 보는데, ‘100명의 홍은전으로 구성된 마을’에서 교통약자는 체감상 60명은 되는 것 같다. 장애와 질병, 노화 사이의 경계는 흐릿하고 모두 예외일 수 없다. ‘44세 홍은전’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마다 좁은 공간에 꾸역꾸역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모종의 동질감을 느낀다. 다들 비장애인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아프거나 고장이 난 사람들이다. 이 동료시민들에게 이 엘리베이터 하나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고 재잘재잘 이야기해주고 싶다. 엄마들이 밥상 앞에서 자신이 만든 음식이 얼마나 정성을 들인 것인지 자꾸 말하는 것처럼, 아빠들이 젊은 시절 얼마나 가난했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자랑처럼 떠들 듯이.

 

하지만 사람들이 몰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는 것이라고 착각해도 그저 지하철역엔 엘리베이터가 있는 게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쁘다. 그 작은 상식을 바꾸기 위해 어떤 사람들의 평생이 필요했고 그들은 오늘도 싸우고 있다.

 

홍은전은 인권기록센터 ‘사이’ 활동가입니다.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로 활동했고 현재는 기록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차별받던 사람이 저항하는 사람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며 지은 책으로는 『노란들판의 꿈』, 『그냥, 사람』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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