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는 시간 [2026.9~10] 〈월-E〉 지구를 떠날 것인가, 구할 것인가

환경 운동가로도 유명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제작·출연한 다큐메터리 <비포 더 플러드>는 기후위기가 화석연료에 의존한 경제 구조와 인간의 거대한 탐욕이 결합해 만든 인재(人災)라고 말한다. 문명을 말살하고 동물을 멸종시키는 행위에 거리낌 없었던 인간은 ‘알면서도’ 지구를 망치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으며, 이러다간 머지않아 지구라는 작은 배가 가라앉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SF영화 속 지구의 미래도 좀처럼 낙관적이지 않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따먹었듯, 인간은 앞으로도 대량 생산과 소비를 멈추지 않을 것이고,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 지구의 자원을 빠르게 소모할 것이며, 지구 온난화와 기후 위기는 대재앙을 부를 것이라는 게 어느덧 미래를 상상하는 SF 작가들의 전제가 돼버린 듯하다.

많은 SF 창작물에서 기후위기는 하나의 ‘고정된 미래 값’처럼 등장한다. <인터스텔라>에서 지구는 이상 기후와 병충해로 극심한 식량부족을 겪고, 인류는 죽어가는 지구를 대신할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난다. <미키17>에서도 인류는 기후 변화로 모래폭풍이 빈번해진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고, <설국열차>에선 기상 이변으로 얼어붙은 지구 위를 무한히 달리는 계급의 열차가 생존의 터전이 된다. 기후위기 시대 창작자들의 상상력은 ‘지구가 망할지도 몰라’에서 ‘지구는 이미 망했어’로 이동했다.
최근의 대중문화에서 지구 밖으로 향하는 인류의 상상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건 새로운 생존 공간을 개척하는 이야기가 더 이상 순수한 공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 과장해 말하면, 인간은 이제 지구마저 쓰고 버리려 한다. 그러곤 이러한 낙관적 사고 회로를 돌린다. 우주는 광활하고 인간의 기술은 계속 발전할 테니 이주 가능한 행성 하나쯤은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해야 마땅하다. 언젠가 인간이 지구를 떠나야 한다면 지구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걸까. 지구가 망한다면 인간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2008년에 개봉한 픽사의 애니메이션 〈월-E〉는 이 질문을 단순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영화가 시작되면 지구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다.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지구, 빌딩보다 높게 쌓인 쓰레기 더미 사이를 누비는 건 쓰레기 처리 로봇 월-E(와 바퀴벌레)뿐이다. 700년 전, 인간은 손쓸 수 없을 만큼 오염돼 생명이 뿌리내릴 수 없게 된 지구를 버리고 우주선 엑시엄 호에 몸을 실었다. 쓰레기 처리 로봇들에게 지구를 맡길 때만 해도 5년이면 지구 대청소 작전이 완료될 것이라 예상했다. 결과적으로 터무니없이 낙관적인 계획이었다. 지구 대청소 작전은 실패했고, 지구 귀환 작전도 취소된 지 오래다. 엑시엄 호에 탑승한 사람들은 영원히 현재의 궤도를 돌며 우주선 생활을 해야 한다. 그 사이 지구에서 쓰레기를 치워온 월-E는 마음을 가진 존재로 진화했고, 우주선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수동적 존재로 퇴화했다.
인류는 지구를 떠나 살아남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다운 삶은 잃어버렸다. 자동화 시스템의 안락함에 익숙해져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보지 않게 됐다. 식사와 이동은 물론 여가 생활조차 인공지능의 지시를 따른다. 공중부양 자동 의자에 앉아 스크린만 바라본다. 입과 손가락과 눈동자만 굴리는 신인류의 탄생. 그들은 걷는 법을 잊어버렸고, 타인의 얼굴을 보고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모두가 편안하지만 아무도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풍요롭지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다. 지구의 개념마저 희미해졌다. 우주선에서 나고 자란 선장은 인공지능에게 묻는다. “땅을 정의해봐. 바다를 정의해봐. 춤을 정의해봐.”
반면 월-E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쓰레기를 처리하다 신기한 물건, 유용하다 싶은 물건을 발견하면 자신의 보금자리인 트레일러로 가져간다. 카세트테이프, VHS 비디오, 라이터, 큐브, 반지 케이스(반지는 버리고 케이스는 보관하는 식) 등 수백 년 전 인간이 만들고 사용한 물건들이 월-E의 안식처에 빼곡히 쌓여간다. 옛날 뮤지컬 영화를 반복해서 보며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빛과 몸짓, 춤을 추고 손을 잡는 행위의 의미도 배운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로봇 이브를 만나 그와 친구가 되려 한다. 자신과는 달리 깨끗하고 세련되고 매끈한 모습을 한 이브는 식물 탐사 로봇이다. 이브의 명령어가 무엇인지 모르는 월-E는 이브에게 초록색의 풀 한포기를 건넸다가 우주로 모험을 떠난다. 이 자그마하고 연약한 식물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열쇠인 줄도 모르고.
〈월-E〉를 통해 지구를 떠난 인간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지구를 버리고 새 터전을 찾아 나선 인간의 삶은 반성이 아닌 관성으로 꾸려질 게 뻔하다. 기계와 시스템에 의존할수록 몸의 감각과 자율성은 잃어버리고, 효율과 편리함을 추구할수록 생명의 활동성은 줄어들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춤을 춘다거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거나,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을 품는다거나 하는,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수많은 기쁨들과 멀어질 것이다.
영화에서 인류 생존의 키워드는 우주선도 인공지능도 아닌 작은 식물 하나다. 초록의 식물은 죽어버린 지구에 다시 생명이 시작될 가능성을 상징한다. 〈월-E〉의 지구는 이미 한번 버려졌지만, 영화는 그곳으로 인간이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지구가 회복되는 데 적어도 700년이 걸렸다고 영화는 가정하는데, 지구를 쓰고 버려도 될 물건으로 여기며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월-E〉의 상상은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주로 떠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지구를 떠날 수 있는 인류가 되는 것과 지구를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인류가 되는 것, 우리는 둘 중 어느 미래를 선택하게 될까. 「인권」

글_ 이주현ㅣ전 씨네21 편집장


페이스북 1
트위터 2
카카오톡 3
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 4
밴드 5
해당호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