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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는 인권 [2026.9~10] 기후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기후가 미쳤다. 우리나라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04년 이후 122년 만에 무더위 기록이 깨졌다. 8월 초 42.5도를 기록한 경남 양산은 닷새 연속 40도를 넘겼다. 8월 중순에 거제에 내린 비는 200년 만의 호우라 했다.

기후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

케이트 마블

미국은 남서부 온도가 47도를 기록했다. 세계가 절절 끓으며 물도 부족했다. 이탈리아는 포강이 말라 식수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가뭄으로 원전 냉각수가 부족해 프랑스와 헝가리 원전이 줄줄이 가동을 중단했다. 루마니아는 냉각수 확보를 위해 다뉴브강에서 암반을 폭파, 물길을 바꿨다. 다뉴브강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침몰한 독일 군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캐나다 산불도 역대급이었고, 스페인과 프랑스를 휩쓴 산불은 그리스로 번졌다. 올여름 폭염과 산불로 인한 유럽 피해액은 30억 유로, 우리 돈 5조 원이 넘는다. 가뭄은 산불을 부르고, 산불은 이산화탄소를 더 배출해 지구온난화를 빠르게 하고, 이는 다시 극한 폭염과 가뭄을 부른다. 전세계 폭염 관련 사망자는 해마다 50만 명에 육박한다. 지구의 분노가 뜨겁다. 이런데도 기후위기가 음모고 거짓이라고?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이같은 주장에 진짜 기후과학자는 미칠 지경 아닐까?

<나는 미쳐가고 있는 기후과학자입니다>의 원제는 Human Nature. 번역 제목은 경이, 분노, 죄책감, 두려움, 애도, 놀라움, 자부심, 희망, 사랑으로 이어지는 9개 장 중 2장 ‘분노, 어차피 저는 미친 과학자니까요’에서 나왔다. 저자는 아홉 가지 감정을 통해 지구의 위기를 인간적 성찰로 풀어냈다. 경이로운 지구에 반해서 기후과학자의 길을 걷게 된 케이트 마블은 일단 분노를 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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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이 멍청한 것도 아니면서(실제로는 뻔히 다 알면서) 모르는 척 내뱉는 허위사실들 때문에, 심지어 그 똑같은 헛소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걸 볼 때마다 분노가 이글이글 타오른다. 나와 내 동료 과학자들이 받는 대접도 짜증난다. 과학적 방법론에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내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때다 하고 그걸 꼬투리 잡아 물고 늘어지며 진실을 왜곡시키는 모습을 보면 분이 치밀어 오른다. 당연히 과학자들이 100% 확실합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그렇다고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라고!

기후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25년 유엔총회에서 "기후변화는 전세계 최대 사기극”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날씨 예보조차 제대로 못하는 그들이 기후에 대해 뭘 알겠는가”라는 식으로 조롱하며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고,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줄줄이 폐기했다. 하지만 석유기업 엑슨모빌은 이미 1970년대부터 연구를 통해 지구온난화를 예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거짓말로 이를 감춰왔을 뿐이다. 1988년 내부 문건에는 불확실성을 강조하라는 전략이 담겨 있었다. 엑슨모빌 CEO 렉스 틸러슨은 2017년 미국 국무장관이 되어서도 기후변화를 “열린 질문"이라는 식으로 뭉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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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환경 문제 역시 인간이 오염을 그만두고 자연이 저절로 치유되기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해결 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인간의 도움 없이는 자연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기후변화를 불확실하다는 식으로 폄훼하는 이들도 역사 앞에 겸허해질까? 기후는 자비롭지 않다. 2억5000만년 전 페름기 말기 오늘날 시베리아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연속으로 화산 분출이 일어났다. 엄청난 이산화탄소가 쏟아지면서 지구가 뜨거워지고 바다는 산성화됐다. 식물은 말라버렸고, 바닷속 식물성 플랑크톤은 죽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해양 생물의 5분의 4, 육지의 척추동물 70%가 멸종한 시기다.

5600만 년 전에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급증, 지구 평균 온도가 5도 상승했으며 심해 생물들이 몰살당했다. 육지에서는 더위를 버티기 위해 포유류 덩치가 작아졌다고 한다. 1877년 엘니뇨의 후폭풍은 인도 중국 이집트 에티오피아 브라질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의 가뭄을 가져왔다. 대 가뭄은 대 기근으로 이어져 5000만 명이 숨졌다.

해마다 그린란드와 남극에서 4200억 톤의 얼음이 녹고 있다. 저자는 “뉴욕시의 모든 빌딩을 다 합친 것의 500배에 달하는 무게”라고 설명했다. 저자는 "1980년대에는 미국에서 10억 달러 규모의 재난이 4개월에 한 번 꼴로 일어났는데 지금은 그런 재난이 3주에 한번씩 일어난다”고 했다. 기록적 폭염, 파괴적 홍수, 끊임없는 가뭄 등 극단적 사건들이 놀라울 정도로 평범하게 찾아오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기후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기후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어차피 세상이 망할 것이라고 손놓는 것은 과학자의 자세가 아니다. 기후 예측 모델을 통해 지구의 재앙적 미래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 직업인 저자는 주체할 수 없는 분노, 미칠 것 같은 슬픔을 토로한다. 위기를 막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무시해온 자본과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 만큼이나 스스로 환경 파괴에 일조하고 있다는 죄책감, 기후 재난에 대한 두려움도 털어놓는다. 하지만 미래에는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 자연에 대한 사랑도 그에게는 중요한 감정이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지구 행성을 지키는데 실제 변화를 만들기도 했다. 2차 대전 이후 서구 경제가 회복되면서 하늘이 흐려지자 1970년대 여러 국가가 대기청정을 법제화했다. 실제 서유럽과 북미에서 에어로졸 배출은 급격히 감소했다. 한때 서울 시민으로서 매캐했던 공기를 기억하지만 경유버스를 천연가스 및 전기, 수소차로 바꾸면서 지난 20년간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40% 감소했다. 불과 몇년 전까지 우리는 중국의 미세먼지가 서해를 건너와 파란 하늘을 못 본다고 분개했다. 하지만 중국은 수도권에서 가정 난방용 석탄을 금지하고, 경유차를 규제하고 신재생 에너지를 늘렸다. 중국발 미세먼지를 탓하던 것도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다만 중국은 여전히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이며 지구온난화에 대략 12%의 책임이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산화탄소는 대기중에서 오래 살아남기 때문에 미국은 관측된 온난화에서 17% 이상 책임이 있다고 한다. 반면 가장 덜 발전된 국가들의 경우 그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를 전부 합쳐도 전체의 6% 수준에 불과하다. 지구온난화를 부추기는 이들이 고통받는 당사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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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나라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지구상 모든 곳에 영향을 미쳤고 그 대가를 지금 모든 사람이 느끼고 있다. 극단적 기상 현상이 놀라울 정도로 빈번하게 찾아오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 파괴적인 홍수, 끊임없는 가뭄, 전례없는 시기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언제나 선택은 부유한 이들이 하고 그 대가는 가난한 이들이 치른 다는 사실이다. 기후 변화로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은 그 책임이 가장 없는 이들이다… 세계는 더 위험하고 비참하고 불평등해지고 있다. 고소득 국가에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는 이들은 불편한 진실을 마주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우리 잘못이라는 사실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1은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화석연료 연소에서 나온다고 한다. 저자는 미국의 경우, 풍력과 태양광 발전 설비를 최대 30배 늘리고 원전을 250군데 더 지으면서 기존 석탄, 가스 발전소 수천 군데를 페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기후변화를 멈출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무를 무분별하게 파괴하면 안된다. 2022년 기준 뉴욕시 면적 만한 숲이 매주 사라졌다. 숲을 보호하는 것만으로도 수십억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을 수 있다.

의외로 전 인간의 모든 활동 중 가장 크게 지구를 바꾸는 것은 식생활. 얼음이 없는 땅의 40%가 농경지인데 이중 4분의 3이 가축이 풀뜯는 목초지이거나 가축 사료 농작물을 기른다. 기후변화가 거짓말이라고 하는 글로벌 리더, 기업들을 비판하며 관련 정책을 바꾸도록 압박해 미래를 바꿀 기회가 아직은 우리 손에 있다. 온난화 덕에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데, 우리에게 골든타임은 얼마나 남은 것일까? 「인권」

글_ 정혜승ㅣ북살롱 오티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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