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인권학 [2026.9~10] 기후위기, 식탁에 오르다
폭염과 폭우, 가뭄과 해수온 상승이 우리의 식탁을 바꾸고 있다. 문제는 먹거리의 감소가 모두에게 같은 무게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격이 오를수록 저소득층의 식탁에서는 과일과 채소, 단백질부터 먼저 사라진다. 기후위기 시대, ‘무엇을 먹을 수 있는가’는 생존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결정하는 권리의 문제가 되고 있다.

기후가 바뀌자, 익숙한 음식이 귀해졌다
사과가 예전처럼 열리지 않는다. 봄철 이상고온과 냉해, 여름 폭염과 집중호우가 반복되면 열매가 맺히는 과정부터 흔들린다. 배추는 폭염에 무르고, 김은 따뜻해진 바다에서 생산 조건이 달라진다. 오징어가 잡히는 바다도 이동한다. 우리의 기후와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는 커피와 초콜릿도 예외가 아니다. 커피나무와 카카오나무는 기온과 강수량 변화에 민감해 주요 생산지가 가뭄과 폭염을 겪을 때 생산량과 가격이 출렁인다. 기후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식재료 하나를 없애는 사건이라기보다, 우리가 당연하게 먹어온 음식들을 조금씩 귀하고 비싼 것으로 바꾸는 과정에 가깝다.
문제는 수확량 감소가 시장에서 가격 상승으로 번지고, 그 가격이 다시 가정의 식탁을 압박한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는 온도와 강수량의 변화, 가뭄과 홍수 같은 극한기상을 통해 식량 생산과 공급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식량 가격이 높아지면 특히 식비가 가계 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저소득 가구가 더 큰 충격을 받는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도 저소득 가구가 식품 가격 급등과 변동성에 더욱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기후위기가 밥상 물가의 문제가 되는 순간, 그것은 동시에 불평등의 문제가 된다.
비싼 사과를 포기하는 순간 시작되는 불평등
먹거리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똑같이 덜 먹는 것은 아니다. 소득에 여유가 있는 가정은 가격이 오른 사과를 사거나 다른 과일로 바꿀 수 있다. 생선이 비싸지면 고기나 달걀, 다른 단백질원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식비를 빠듯하게 쓰고 있는 가정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가격이 오르면 먼저 과일을 줄이고, 채소의 종류를 줄이고, 질 좋은 단백질을 덜 사게 된다. 배를 채우는 값싼 탄수화물이나 가공식품의 비중이 커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같은 물가 상승이 어떤 사람에게는 ‘장바구니 부담’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위가 좁아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때 문제는 배고픔만이 아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칼로리의 총량만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하고 안전하며 영양적으로 적절한 음식이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적절한 식량에 대한 권리’를 단순히 굶지 않을 권리로 한정하지 않는다. 개인의 영양적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양과 질의 식량이 존재해야 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물리적·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경제적 이유로 신선한 과일과 채소, 단백질 식품에 접근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이는 단순한 소비 격차를 넘어 영양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결국 식량권의 격차가 건강권의 격차로 번지는 셈이다.
기후위기 시대, ‘먹을 권리’를 다시 묻다
기후위기는 이미 존재하던 사회적 격차를 확대한다. 폭염은 누구에게나 덥지만 냉방할 공간과 비용이 없는 사람에게 더 위험하고, 홍수는 같은 양의 비가 내려도 열악한 주거지에 사는 사람에게 더 큰 피해를 남긴다.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식품 가격이 오르면 더 많은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기존의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식탁을 줄여야 한다. 기후위기의 원인에 기여한 정도와 그 피해를 감당할 능력이 서로 다른데도, 시장에서는 결국 지불 능력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결정된다. 기후위기가 인권 문제로 읽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기후위기 시대의 식량정책은 단순히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서 끝날 수 없다. 기후변화에 견딜 수 있는 생산 기반을 만들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동시에, 소득과 관계없이 누구나 영양적으로 충분한 먹거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취약계층의 식품 지원도 ‘배를 채울 수 있는가’가 아니라 ‘건강한 식사를 할 수 있는가’라는 기준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후가 바뀌면 우리의 밥상도 바뀐다. 그러나 그 변화의 대가까지 가난한 사람에게 먼저 돌아가야 할 이유는 없다. 사과 한 알과 배추 한 포기의 가격을 들여다보는 일은 이제 물가를 넘어, 우리 사회가 누구의 인간다운 삶을 끝까지 보장할 것인지 묻는 일이 되고 있다. 「인권」
글_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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