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권감수성 [2026.9~10] 기후위기, 혼자 막을 수 없다!

“혹시, 컵 하나 빌릴 수 있을까요?”
한 사무실 정수기 앞, 몇 번을 망설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 부탁을 했다. 잠시 후, 건네받은 종이컵으로 갈증을 달래고 나니 마음이 조금 복잡하다. 아침 일찍 정신없이 집을 나온 탓에 텀블러를 챙기지 못했다. 어떤 법칙이라도 있는 건지, 텀블러가 없는 날이면 그 흔한 정수기용 미니 종이컵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만약 텀블러가 있었다면 오히려 정수기 옆 종이컵이 눈에 거슬렸겠지만, 막상 물을 마실 수 없어 종이컵 하나를 썼더니 뭔가 살짝 불편하다. 기후행동, 과연 누구나 가능한 일일까.

물론, 소소한 실천은 중요하다. 몇 년 전부터 정부가 ‘탄소중립 생활 실천’을 안내한 것처럼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재활용을 위해 분리배출을 하는 일 등은 분명 도움이 될 거다. 그렇지만 하늘에 흰 줄을 남기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있으면 ‘종이컵 하나가 뭐 그리 대수인가’ 싶은 마음도 든다. 참 쉽지 않다.
SNS를 보면 탄소중립을 위한 아이디어가 넘쳐난다. 플라스틱 제품을 재활용하고, 비건 요리를 만들며, 고장 난 물건을 수리해 사용하는 등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할 것을 제안한다.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것도 엄청난 양의 물이 사용된다는데, 정말 필요한 옷만 사는 것도 기후위기 대응에 동참하는 일이다. 그런데 모두가 이런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자전거 페달을 직접 밟을 수 없고, 또 누군가는 빨대 없이는 음료를 마시기 어렵다. 이처럼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마저 불평등한 마당에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그 방법조차 소외되거나 배제된다.
대중교통만 봐도 그렇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대중’교통은 정말 누구나 이용할 수 있을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우선 버스나 지하철 등이 하루에도 수십번 오가는 곳에 살아야 하고, 대중교통이 운행되고 있을 때 일터나 학교, 집을 다닐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각종 어플을 통해 노선과 운행시간 등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계단이나 경사로 등을 가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신속히 움직일 수 있어야 비로소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 대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신체 기능이 저하될수록 ‘대중’교통은 무용지물인 셈이다. 심지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매번 타인의 양해를 구해야 하니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대중교통이 정작 이들에게는 사회적 장벽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실질적인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진정 이 목표를 달성할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참여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과연 누구를 기준으로 정책을 만든 것인지 되묻고 싶다. 실제 소득에 따른 탄소배출량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2022년 한국의 탄소배출량을 소득계층별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1), 소득 상위 10%가 전체 배출량의 약 30%를 차지한 반면 하위 50%의 비중은 약 27%였다.
같은 수의 사람으로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상위 5%가 전체 배출량의 약 23%를 차지한 데 비해 하위 5%는 약 1%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들에게도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비용과 불편을 똑같이 감당하게 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걸까. 더구나 이들이 기후재난으로 인한 피해에 더 취약하다면 그 불평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이 아무리 효과적이더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과 부담이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집중된다면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개인의 노력이나 역량에 의존하기보다 누구나 탄소중립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것, 바로 그것이 인권에 기반한 탄소중립 정책이다. 예를 들면, 장기적으로는 패시브하우스처럼 적은 에너지로도 여름과 겨울을 안전하게 보낼 수 있는 공공주택을 늘리고, 지금 당장은 누구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이동의 장벽을 없애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혼자 막을 수 없다. 텀블러를 챙기고, 일회용품을 줄이며, 재활용품을 사용하는 것처럼 개인의 실천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실천을 누구나 선택할 수 있도록 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려면 국가는 인권의 관점에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사람들의 실천을 독려할 뿐 아니라 여러 국책사업과 기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도 더욱 엄격하게 살피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수많은 사람의 기후행동도 그 의미를 잃지 않는다.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면서도 손에 든 텀블러를 놓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다.

- 1) 「숫자로 보는 탄소 불평등…」, 프레시안, 2026. 4. 22. 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6042117492665714
글_ 박병은ㅣ모든사람_인권교육연구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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