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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6.9~10] 기후위기 앞에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

 

기후위기 앞에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닥치지만, 그 위험과 피해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어떤 집에 사는지, 어떤 조건에서 일하는지에 따라 폭염과 폭우는
생명권·건강권·주거권을 위협하는 전혀 다른 재난이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데서 나아가, 누군가를 더
취약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과 제도까지 바꾸는 일이다.

기후위기는 어떻게 주거와 노동의 불평등을 권리의 문제로 만드는가

폭염특보가 내려진 여름날, 모든 사람이 같은 기온을 경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열이 잘 된 집에서 에어컨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낮의 열기가 밤까지 빠져나가지 않는 집에서 전기요금을 걱정하며 더위를 견뎌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냉방이 되는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건설현장과 같은 옥외 작업장에서 뜨거운 햇볕 아래 일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태풍이나 폭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양의 비가 내려도 침수 위험이 높은 주택에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입는 피해는 다릅니다. 폭우로 집이 침수되어도, 당장 머물 곳을 구하거나 이사할 비용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회복 속도 역시 같을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의 인권 문제는 바로 이 차이에서 시작합니다.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위험에 누가 더 많이 노출되는지, 누가 위험을 피하거나 회복할 자원이 부족한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낮은 계층을 ‘기후위기 취약계층’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에는 대체로 저소득계층, 이동성 장애 집단, 취약 거주집단, 기후변화 정보와 서비스, 의사결정 구조에서 배제된 집단 등이 포함됩니다.

인권위는 2024년 「기후위기 취약계층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권고」에서 기후위기가 생명권과 건강권, 주거권 등 사실상 인간의 모든 권리에 영향을 미치며, 그 피해는 특정 지역이나 개인의 생물학적 특성,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따라 불평등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 의무를 법에 명시하고,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대한 정기적인 실태조사와 정보 접근, 정책 결정 과정의 참여 등을 보장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기후위기 시대, 어떤 집을 ‘적정한 주거’라고 할 것인가

오랫동안 주거 정책은 그들에게 살 집이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그러나 폭염과 한파, 폭우, 가뭄, 산불과 같은 기후재난이 반복되는 시대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 집이 기후위험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인가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기후위기 시대에서 주거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지붕과 벽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안전한 주거는 아닙니다. 같은 재난도 어떤 집에 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폭염이나 한파에도 실내온도를 적절히 유지할 수 있는지, 폭우나 산불이 발생해도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지까지도 적정 주거의 조건에 포함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위는 2025년 「기후위기와 주거권 관련 제도개선 권고」를 통해 기후위기에 취약한 비적정 주거의 개념을 정립하고 주기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기후재난 위험이 높은 지역과 비적정 주거 유형을 사전에 파악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이 빈번해지고 있으므로, 기후변화에 적응 능력이 부족한 사람을 선제적으로 지원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입니다.

기후위기 앞에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

재난이 발생한 뒤의 문제도 있습니다. 집이 침수되거나 파손된 사람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이들의 피해가 모두 회복되는 것은 아니며, 안정적인 주거로 이어질 수 있는 이주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전기나 가스 요금 등과 같이 에너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폭염이나 한파는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냉난방기가 있어도 요금 부담 때문에 충분히 사용할 수 없다면 기후위험을 피할 선택지가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즉, 에너지 빈곤은 소득의 문제인 동시에 건강과 적정한 주거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기후위기 시대의 주거권을 보호한다는 것은 위험한 주거를 미리 찾아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재난에 대비한 임시주거와 안정적인 이주 체계를 갖추며, 재난 이후 회복 지원과 냉난방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위험을 피할 선택지가 좁아지는 에너지 빈곤의 문제까지 함께 살피는 일입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취약계층의 생명권과 건강권, 주거권을 가장 크게 위협합니다. 따라서 국가와 지자체 등은 재난에 강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고, 모두가 적정한 주거에서 살 권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후위기 앞에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
기후위기 앞에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
폭염 속에서 일을 멈출 수 없는 사람들

집 밖으로 나가 일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데, 특히 건설노동자와 같은 옥외노동자에게 폭염과 한파는 위험 요소가 됩니다.

인권위는 2020년 「기후여건에 따른 건설노동자 노동환경 개선 권고」에서 건설현장의 폭염 대응 지침에 노동강도에 따른 체감온도의 차이까지 적절히 고려하도록 명시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건설노동처럼 신체활동이 많은 작업에서는 같은 기온이라도 노동자가 실제로 받는 열 부담이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폭염이나 한파로 작업을 중지하는 것은 건설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입니다. 그러나 일을 멈추는 순간 소득 역시 줄어들기 때문에, 노동자로서는 선뜻 선택하기 어렵거나 오히려 취약성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권위는 폭염이나 한파 등 기후여건으로 작업을 중지한 건설노동자에게 감소한 임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폭염에도 일을 계속해야 한다면 노동자에게 기후위험을 피할 선택권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기후위기의 건강권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늘과 물, 휴식시간을 제공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현실적 어려움을 고려해야 합니다.

기후위기 앞에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

취약계층 보호를 넘어, 이들을 취약하게 만드는 제도를 살피는 일로

기후위기를 인권의 문제로 본다는 것은 같은 위험이 누구에게 더 큰 피해를 주는지,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주거와 노동, 사회적 조건은 무엇인지, 그리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불평등이 만들어지고 있지는 않은지를 묻는 일입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되는 사람을 찾아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중요하나 거기서 질문을 멈춰서는 안되며, 그 사람이 왜 더 취약한지를 함께 물어야 합니다. 재난을 견디기 어려운 집에서 살기 때문인지, 냉난방비를 충분히 지불할 수 없기 때문인지, 위험한 날씨에도 일을 멈추면 당장 소득을 잃기 때문인지, 재난으로 집을 잃었을 때 회복할 능력이 없기 때문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기후위기 대응이 취약한 개인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이들을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기후위기 취약계층의 범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 폭염과 한파를 큰 어려움 없이 넘기는 사람도, 냉난방비 부담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오르거나, 살던 동네가 홍수와 가뭄, 산사태나 산불 위험지역으로 새롭게 지정되거나, 나이가 들어 더위와 추위를 예전만큼 견디기 어려워지면 취약계층에 새롭게 포함될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심화될수록 그 범위는 특정 계층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넓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인권위의 역할도 지금의 취약계층 보호에 그쳐서는 안 되며, 취약성을 강화하고 그 범위를 넓히는 원인을 찾아 이를 개선하는 데까지 확장될 필요가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 잘 마련되고 정착되었는지, 감축 정책의 편익과 부담을 불평등하게 배분하여 특정 계층에게 부담이 전가되지는 않은지, 그리고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 당사자들이 논의의 주체로 참여하였는지 등을 인권적 관점에서 검토하여야 합니다.

결국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은 두 가지 변화를 동시에 요구합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기후위기 자체를 완화해야 하고, 동시에 기후위기에 취약한 사람을 위한 적응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인권위는 앞으로도 기후위기가 만들어내는 불평등을 세심히 살피고, 이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제도개선 방안을 꾸준히 제시할 예정입니다.「인권」

글_ 양보경 | 국가인권위원회 사회인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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