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6.9~10] 기후위기에서 사람을 지키는 방법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 온도계는 섭씨 35도를 가리킨다. 하지만 냉방이 잘되는 사무실과 뜨거운 아스팔트 위 일터에서의 35도는 전혀 다르다. 열악한 환경일수록 기후위기는 더 매서운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기후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누가 더 위험한 곳에서 살고 일하는지, 누가 극한의 환경을 피할 수 있는 돈과 정보를 가졌는지를 묻는 순간 인권 문제가 된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기후위기가 생명권·건강권·식량권·주거권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주므로,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을 국가의 기본적 의무로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위험을 알고도 내버려두지 않을 의무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기후변화가 생명, 물과 위생, 식량, 건강, 주거 등의 권리를 위협한다고 설명한다. 국가는 예측할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하고, 특히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적응하고 구제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IPCC에 따르면 세계에서 약 33억~36억 명이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한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같은 재난이라도 가난하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사람에게는 피해가 더 크게 돌아간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폭염이 심해지면 야외노동자와 냉방 사용이 어려운 가구가 먼저 위험해진다. 집중호우는 반지하와 저지대 주민을 먼저 찾아간다. 가뭄과 이상기후는 농어민의 생계와 서민의 먹거리 가격을 흔든다.
기후위기는 깨끗한 공기와 물과 같이 생존의 가장 근원적인 요인에 영향을 미친다. 안전한 집과 일터처럼 사람의 사회경제적 기본 조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여러 요소를 동시에 악화시킬 수 있다.
인권위는 2022년 「기후위기와 인권에 관한 의견표명」을 통하여 기후위기가 인권의 문제임을 명확히 하였다. 정부에 취약계층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고용·주거·건강·위생 등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며,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국제기준에 맞도록 높이라고 요구했다. 다양한 당사자의 참여와 기후정보 공개도 강조했다.
2024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기후가 인권의 문제임은 더 분명해졌다. 헌법재판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정량적 감축기준을 두지 않은 것은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에 어긋나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감축목표는 미래세대와의 약속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NDC)는 한 국가가 “온실가스 배출을 언제까지 얼마나 줄이겠다”는 국제적 약속이다.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은 5년마다 진전된 목표를 제출하고, 가능한 가장 높은 수준의 감축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인권위는 2025년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수립에 대한 권고」에서 정부에 세 가지를 요구했다.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감축 목표,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는 감축경로, 기업과 산업의 전환을 뒷받침할 제도적·재정적 지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목표연도뿐 아니라 그곳까지 가는 길이다. 이산화탄소는 대기에서 자연적으로 없어지지 않고 차곡차곡 누적되는데, 이미 누적되어 있는 온실가스를 고려한다면 처음에 많은 양을 줄여야 지구 온도 상승을 막는 효과가 있다. 매년 같은 양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면 지구 온도 상승폭도 비례하여 줄어들 것 같지만, 이미 대기에 누적되어 있는 온실가스로 인하여 감축 효과는 미미하다.
정부는 2025년 11월, 2035년을 목표로 하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에 제출했다. 인권위는 이에 대해 상한 61%는 권고 취지에 부합하지만 범위형 목표만으로는 실제 달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며 권고가 ‘일부 수용’됐다고 판단했다. 규제와 이행계획이 하한 기준에 맞춰지면 충분한 감축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
기후정책은 우리 동네에서 완성된다
버스와 건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관리하고 줄여나가는 일, 침수지역 관리와 폭염 쉼터 운영 등 감축과 적응 분야에서 중요한 일들이 모두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다. 주민의 위험을 가장 가까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정부도 바로 지방자치단체이다. 인권위가 2025년 내놓은 「지방자치단체의 기후위기 취약계층 대응에 관한 제도개선 권고 및 의견표명」은 기후위기가 주민의 생명과 건강을 직접 위협하므로 지방정부도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인권위는 기후위기로 인해 누가 어떤 위험에 놓였는지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후위기 환경에서의 ‘취약계층’은 기존의 취약계층과 같지 않을 수 있다. 소득이 같아도 사는 곳, 건강상태, 이동능력, 정보 접근성에 따라 폭염과 침수의 위험은 달라진다. 보유재산이 많다고 해도 재난 대피 경보를 인지하고 신속히 이동할 수 없다면 기후위기 취약계층에 해당할 수 있다. 이처럼 기후위기 취약계층은 기존의 사회경제적 요인에 더하여 생물학적, 지리적 요인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기후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이러한 기준은 계속 변화해야 한다.
이렇게 기후위기 취약계층을 발굴하는 이유는 꼭 필요한 사람에게 기후위기 위협에 따른 보호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폭염이 심한 동네에는 그늘과 녹지, 쉼터와 방문 건강관리가 필요하고, 침수지역에는 배수시설과 주거개선, 신속한 경보와 대피지원이 필요하다. 장애인·고령자·이주민에게는 이동능력과 사용언어를 고려하여 대피계획을 수립하고 재난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같은 메뉴얼을 똑같이 적용하는 것이 아닌, 지역의 위험과 주민의 조건에 맞춰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인권에 기반한 대응이다.
목표에서 실천으로
우리나라의 기후인권 논의는 빠르게 진전됐다. 2022년 인권위가 기후위기를 인권 문제로 공식화했고, 2024년 헌법재판소는 온실가스 장기감축경로의 부재가 환경권 보호의무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2025년 인권위는 2035 NDC와 지방정부의 대응에 관해 각각 권고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선언보다 이 결정들을 실제 정책과 예산으로 옮기는 일이다.
인권의 눈으로 기후정책을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충분히 줄이고 있는가, 가장 위험한 사람을 먼저 찾고 있는가,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을 남기지 않는가 등을 묻는 일이다.
기후위기 시대의 국가는 탄소 감축은 물론, 폭염 속 노동자, 침수를 걱정하는 주민, 일자리 변화를 앞둔 노동자, 앞으로 더 긴 세월을 살아갈 어린이와 청소년이 안전하게 살 조건을 만들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은 이미 대기에 쌓여있는 양을 고려해 초기에 최대한 많은 양을 줄이고,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 위험에서 사람을 지키며, 그 과정을 시민과 함께 결정해 나가는 것. 이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가 인권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기후위기 대응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도 이것일 것이다. 「인권」
첫째, 법제도의 정비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 관련 법령에 재난 취약계층으로서 고령자의 권리를 명시하고, 재난안전 관리계획 수립 시 고령자 인권 영향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통계의 세분화이다. 재난 통계 작성 시 나이, 가구 형태, 기저질환 유무 등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세분화하여 축적함으로써 과학적이고 정밀한 고령자 맞춤형 대책을 수립하는 데 기초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셋째, 예산의 우선 배정이다. 고령자 친화적 재난 인프라(대피소 개선, 맞춤형 경보 시스템 등) 구축을 위한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재난관리는 모든 국민이 재난 앞에서도 자신의 인간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돕는 고귀한 책무이다. 고령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인권 중심의 재난 대응 체계를 구축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어떤 재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안전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으며 인권의 관점에서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안전(Leave No One Behind)'을 실현하는 데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인권」
글_ 조홍래 | 국가인권위원회 사회인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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