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26.7~8] 초고령 사회의 재난 피해자 권리

재난 피해자의 권리, 노인에게도 닿고 있는가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재난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304명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국가가 주는 지원을 조용히 기다리는 데 머물지 않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했고, 진상규명 과정에 참여하기를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는 중요한 질문을 마주했다. 재난 피해자는 단지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하는 대상인가, 아니면 진실을 알고 조사에 참여하며 회복의 방향을 함께 결정할 권리를 가진 주체인가.
세월호 이후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반복되는 동안 피해자와 유가족은 권리의 언어로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2026년 5월, 세월호 참사로부터 12년 만에 「생명안전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은 국민이 안전하게 살 권리를 명시하고, 수색·조사 참여·구제·추모와 공동체 회복사업 참여 등 재난 피해자의 여러 권리를 법률로 규정했다. 이는 분명 중요한 진전이다. 그러나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재난 피해자의 권리는 과연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닿고 있는가. 권리가 법에 적혀 있다고 해서 모든 피해자가 그 권리를 똑같이 누리는 것은 아니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누가 더 크게 다치고 더 많이 죽고 더 늦게 회복하는지는 모두에게 같지 않다. 나이, 장애, 건강상태, 소득, 가족관계, 거주지역, 정보 접근성에 따라 피해의 크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재난 피해자의 권리는 모든 사람의 삶의 조건을 출발점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한국에서 그중 가장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바로 '나이'다.
통계청의 「2025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25년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의 20.3%로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인 사회가 되었다. 이 비율은 2036년 30%, 2050년에는 4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이 노인 인구 중 상당수는 혼자 살고 있다. 가구주 연령이 65세 이상인 고령자 가구 중 1인 가구는 37.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재난은 바로 이런 삶의 조건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재난 피해는 모두에게 같지 않다
여러 국내외 사례는 노인이 재난에서 더 큰 위험에 놓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의 허리케인 카트리나에서는 사망자의 절반가량이 75세 이상 고령자였다. 그 연령대가 지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크게 웃도는 수치였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서도 일본 경찰청 집계를 분석한 보도에 따르면 나이가 확인된 사망자 중 65세 이상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2025년 경북 영덕 산불에서는 사망자 10명의 평균 연령이 84세, 최고령자는 101세였다. 2023년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도 사망자 14명 중 70대가 5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러한 통계는 단지 "노인이 많이 죽었다"는 사실만을 말하지 않는다. 재난 경보를 제때 이해했는지, 대피할 교통수단과 도움이 있었는지, 혼자 사는 노인을 확인하는 체계가 작동했는지, 몸이 불편한 사람을 전제로 한 대피계획이 있었는지를 함께 묻게 한다. "그 지역에 원래 노인이 많이 살았기 때문 아닌가?"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노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면 재난 대비도 당연히 노인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 거동이 느린 사람, 혼자 사는 사람,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미리 고려했어야 한다. 노인의 높은 피해는 우연이 아니라, 예견할 수 있었지만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다.
이 불평등은 사망과 부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재난 이후에는 노인 생존자뿐 아니라 배우자나 자녀를 잃은 노인 유가족, 재난을 목격한 노인도 피해자로 남는다. 이들은 정보를 얻고, 지원을 신청하고, 심리적 회복을 이어가고, 조사와 회복 과정에 참여하는 데서 또 다른 장벽을 만난다. 노인의 재난 피해를 권리의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대피와 구조의 순간만이 아니라 재난 이후 회복과 참여 과정까지 함께 살피는 일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노인을 어린이, 장애인, 저소득층과 함께 '안전취약계층'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법에서 취약계층이라 부르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권리가 보장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202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재난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도 재난 이후 모든 단계에서 피해자의 평등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두에게 같은 절차와 지원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나이·건강상태·장애 여부·가족관계 등 각자가 처한 조건을 살펴야 어떤 피해자가 어디서 권리를 더 쉽게 침해받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노인을 보호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노인은 자신의 안전과 회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주체다. 재난 정책이 노인을 위해 만들어진다면서 정작 노인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면, 그것은 온전한 권리 보장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노인의 재난 피해를 살펴보면 세 가지 권리가 특히 중요하다.
재난 정보를 이해하고 대피 여부를 스스로 판단할 정보권과 자기결정권, 재난 이후 고립되지 않고 돌봄과 건강 지원을 받을 권리, 그리고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조사와 회복 과정에 참여할 권리다.
디지털 벽 앞의 노인: 정보와 자기결정의 권리
재난이 발생하면 우리는 긴급재난문자, 뉴스, 앱 알림 등을 통해 정보를 받는다. 산불, 지진, 폭염 같은 상황에서 빠른 정보는 생명과 직결된다. 하지만 노인에게 디지털 중심의 정보 전달 방식은 높은 벽이 될 수 있다. 문자는 왔지만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고, 앱 설치 방법을 모르며, 지원금 신청 절차를 따라가기 어렵다. 가족이나 이웃이 곁에 있다면 도움을 받지만, 혼자 사는 노인에게는 이 과정 하나하나가 장벽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디지털 격차로 인한 노인의 인권상황 실태조사」는 디지털 격차가 노인의 정보 접근과 권리 행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재난 상황에서는 이 격차가 더 직접적인 위험으로 이어진다. 몇 분의 차이가 생사를 가르는데, 위험을 가장 빨리 알아야 할 사람이 가장 늦게 알게 된다면 그것은 정보 전달의 실패다.
재난 이후에도 복구 지원금·임시주거 신청, 피해 접수가 온라인 중심으로 이루어질수록 노인 피해자는 권리가 있어도 행사하기 어렵다. 따라서 재난 정보는 디지털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긴급재난문자와 앱 알림뿐 아니라 유선전화, 라디오, 마을방송, 방문 확인, 이웃 돌봄망이 함께 작동해야 하고, 혼자 사는 노인에게는 정보가 실제로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또한 "대피하십시오"라는 문구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는지, 이동이 어려우면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가 함께 안내될 때 정보권은 비로소 실제 권리가 된다.
잃어버린 관계, 끊어진 돌봄: 회복의 권리
재난 이후 노인의 피해는 몸의 상처나 재산 피해에만 그치지 않는다. 집을 잃고 임시주거지로 옮겨가면 익숙한 동네, 이웃, 병원, 복지관, 시장, 산책길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젊은 사람에게도 큰 변화지만, 노인에게는 삶의 기반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다.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연구들은 주거 피해와 사회적 고립이 재난 이후 우울과 건강 악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인 피해자에게 회복은 집을 고치고 보상금을 받는 일을 넘어, 다시 사람을 만나고 익숙한 일상과 돌봄의 관계로 돌아오는 일이다. 관계가 끊어지면 회복도 끊어진다.
재난 피해자가 유가족이 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노년기에 배우자나 자녀를 잃은 사람은 깊은 슬픔과 함께 일상의 돌봄 공백을 겪는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도 자녀를 잃은 노년기 부모가 처음에는 유가족 모임에 참여했지만 정서적 고통이 커져 더 이상 나가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지원체계가 신청자 중심으로만 설계되어 있다면, 가장 힘든 사람이 오히려 지원 밖에 남게 된다. 돌봄이 필요한 시점에 돌봄이 먼저 다가가야 한다. 노인 피해자에게 회복은 개인의 의지로 버티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관계망을 회복하고 필요한 돌봄과 건강 지원을 안정적으로 받는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재난피해자 권리보호를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은
재난 피해자를 수동적 지원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보고,
진상규명과 회복 과정에서 피해자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노인 피해자의 권리는 노인의 삶의 조건에 맞는 정보전달,
돌봄과 건강의 안정적 제공, 재난 대응과
회복과정에서의 참여가 가능할 때 보장된다.
결정하는 자리에 노인은 있는가: 참여의 권리
재난 대응과 회복 과정에서 노인 피해자는 자주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정책은 노인을 위해 마련된다고 하지만, 전문가나 행정기관, 가족이 노인을 대신해 말하고 정작 노인은 결정의 자리에 초대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물품이 필요한지, 어떤 주거지원이 적절한지, 어떤 정보 전달 방식이 이해하기 쉬운지는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당사자가 말할 기회가 없다면 정책은 쉽게 빗나간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재난피해자 권리보호를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 도 재난 피해자를 수동적 지원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보고, 진상규명과 회복 과정에서 피해자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모임이나 공청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정보가 앱이나 포털로 공유되면 노인 피해자는 참여의 출입구를 찾기 어렵다. 이동이 불편하거나 거주지가 멀면 오프라인 회의 참여도 쉽지 않다. 결국 참여권은 형식적으로는 열려 있어도 일부 사람에게만 접근 가능한 권리가 된다. 참여할 수 있는 방식 자체를 노인의 조건에 맞게 만들고, 재난대비·대응·회복의 모든 단계에서 노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될 때 권리는 선언에서 실천으로 옮겨간다.
권리가 모두에게 닿으려면 「생명안전기본법」의 국회 통과는 중요한 진전이다. 그러나 권리가 법에 적혀 있다고 자동으로 모든 사람에게 닿는 것은 아니다.
권리가 실제 권리가 되려면, 그것을 행사하는 방식이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맞아야 한다. 재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피해의 크기와 회복의 속도는 피해자가 처한 조건에 따라 달라지며, 이 사실을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노인이 재난 앞에서 더 많이 죽고, 더 늦게 회복하고, 더 쉽게 잊힌다면, 재난 피해자의 권리는 아직 모두에게 닿지 않은 것이다. 초고령사회에서 재난 대응은 노인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노인을 권리를 가진 피해자이자, 자신의 안전과 회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주체로 볼 때, 재난 피해자의 권리는 비로소 일부의 권리가 아니라 모두의 권리가 될 수 있다. 「인권」
■ 참고 자료
이 글은 통계청 「2025 고령자 통계」(2025), 국가인권위원회 「재난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2024)·「재난피해자 권리보호를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 적용 권고」(2023)·「디지털 격차로 인한 노인의 인권상황 실태조사」(2022)를 주로 참고했다. 재난별 고령층 피해 현황은 영덕군 「산불피해현황」(2025), 대전일보(2023. 7. 18.)와 동아일보(2011. 4. 17.) 보도, 미국 루이지애나주 보건부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망자 분석(2008), 동일본대지진 이후 노인 사망 위험에 관한 국제 연구(Hikichi et al., 2017) 등을 바탕으로 했다.
글_ 정지연ㅣ'함께하는 연구'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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