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8 > 특집 > 초고령사회 재난 대응의 기준:
인권 관점에서 재난대응체계의 패러다임 전환

특집 [2026.7~8] 초고령사회 재난 대응의 기준:
인권 관점에서 재난대응체계의 패러다임 전환

 

초고령사회 재난 대응의 기준: 인권 관점에서 재난대응체계의 패러다임 전환

초고령사회 확산과 인권의 교차점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통계에 의하면 2024년 12월 말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0%를 넘어섰다. 고령인구의 급격한 증가는 재난 취약계층의 양적 확대를 의미한다. 2025년 영남권 산불 당시 사망자의 90% 이상이 60대 이상 고령층에 집중되었는데 대부분 미처 대피하지 못하거나 대피 중에 사망한 것이다. 이처럼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찾아오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구조적 불평등과 사회적 고립 속에서 특정 집단에 피해가 집중되는 재난의 불평등성은 초고령사회의 아픈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기존의 재난관리체계를 인간 존엄성과 안전권 보장이라는 인권적 관점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고령자 인권을 보장하도록 우리나라 재난 대응 체계를 혁신하여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고령자의 재난 취약성

고령자가 재난에 취약한 이유는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기능 저하, 디지털 리터러시 부족으로 인한 정보 소외, 주거환경의 열악함, 사회적 관계망의 단절 등 복합적 취약성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령자 가운데 신체적 기능 저하로 인하여 거동이 힘들거나 보조기구나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비율이 상당하다.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유병률이 높아 위험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인지적 취약성이 동반되기도 한다. 또한 1인 독거노인 가구 비율이 지속 증가하고 있어, 재난 시 외부의 즉각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립될 위험이 심화하고 있다. 나이가 증가할수록 일상생활수행능력(ADL)이 저하하면서 생활 자립도가 낮아질 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술에 친숙하지 못하여 재난 상황 시 자력 대피가 불가능하므로 직접적인 구조·구급 지원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초고령사회의 재난 대응은 시혜적 차원의 보호를 넘어 고령자의 신체적·인지적·환경적 특성을 반영하여 안전권을 실현하는 차원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권 기반의 재난대응체계 구축 기준

① 다각적 정보 접근

재난 상황에서 정보의 적시 전달은 생명권과 직결되는 인권 보장의 핵심 요소이다. 그러나 디지털 리터러시가 낮은 고령자에게 재난 경보와 대피 정보가 스마트폰이나 QR코드 등 디지털 매체 위주로 제공되면서 디지털 소외가 심화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스마트폰과 동시에 마을 방송, TV 자막, 유선 전화 등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결합한 융합 채널을 제공해야 한다.

재난 문자 크기를 확대하고 전문 용어를 배제하고 그림 문자(Pictogram)나 쉬운 우리말을 활용하는 고령자 친화적 매체를 가동하여야 한다. 아울러 독거노인을 위해 가족, 이웃, 지역사회 단체를 연계한 비상 연락망을 확충하여 정보 접근의 다각화를 기하거나 떨어져 사는 가족 또는 보호자에게 재난 방송을 동시 전송하여 고령자의 피난을 촉구할 수 있는 대리 알림 시스템 도입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② 돌봄 공백 방지

기존의 돌봄 서비스(노인맞춤돌봄, 장기 요양 등)가 재난으로 인해 중단되면 고령자는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재난 상황에서도 필수 돌봄 서비스가 끊기지 않도록 각 지자체는 돌봄 연속성 계획(Continuity of Care Plan, CCP)을 마련하여야 한다. 지역사회 지원체계 기준을 수립하여 재난 발생 시 고령자가 고립되지 않도록 지역 중심의 상호 돌봄 체계가 작동해야 한다.

고령자가 고령자를 돌보는 노노케어시스템을 구축하거나 지역 주민 간 호혜적 관계망을 구축해 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재난 현장에 투입되는 돌봄 인력풀을 미리 구성하는 것도 고려하여야 한다. 아울러 돌봄 인력의 안전 및 보상에 대해서도 사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돌봄 공백 방지

③ 의료 및 건강 보장 기준

고령자는 만성질환 보유율이 높고 신체적 기능이 저하되어 있어 재난 발생 시 직접적인 외상뿐 아니라 기존 질환의 관리 중단으로 인한 2차 피해(종속적 사망)에 극도로 취약하다. 따라서 재난 상황 속에서도 보건의료 서비스의 연속성은 중단 없이 유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고령자 신체적 건강 특성을 고려한 구조·구급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먼저 지병이나 복용 약, 치매 여부를 시스템에 사전 등록하여 구조·구급 시 고령자 맞춤형 조치가 즉각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 위험 상황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인지 저하 노인을 위한 구조 요청 자동 인지 기능과 노인성 질환자 이송체계 개선이 수반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고령자 친화적 피난소가 운영되어야 할 것이다. 대피소에 고령자 친화 공간 및 만성질환자 맞춤형 의약품과 전문 의료진의 상주가 보장되어야 한다. 정신적 트라우마 및 고립감 해소를 위하여 심리적 응급처치 등 심리 건강도 보장해야 한다. 피난소를 벗어나 거주지로 복귀하였을 때도 의료, 간호, 생활 지원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의료 및 건강 보장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④ 개별 피난 계획 및 지역사회 공조 체계

각 지자체는 개개 고령자와 협의해 구체적인 대피 경로와 대피 도우미를 지정하는 개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고령자들도 주민자치회나 자율방재조직 활동에 참여해 자신의 병력이나 상황을 사전 공유하는 협력 문화가 정착되도록 애써야 할 것이다. 스스로 피난이 곤란한 요양 필요 고령자의 정보를 사전 파악하여 명부로 관리해야 하며 이 명부는 평상시 꾸준하게 갱신되어야 한다. 재난 발생 시에는 개인정보보호 조치를 전제로 하되 본인 동의가 없더라도 이웃, 민생위원, 자율방재조직 등 피난지원 관계자에게 즉시 공유되어 안부 확인과 대피 지원에 활용되어야 한다.

⑤ 고령자 재난 대비 행동 가이드라인

재난을 대비하여 고령자 스스로 위험 대응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야 한다. 낙상사고나 추락을 방지하고자 가구 고정, 장애물 제거 등 실내 안전을 점검해야 한다. 중요 의료 기록 및 신분 서류는 방수 봉투에 보관하도록 한다. 구조 활동이 집중되는 재난 직후 72시간을 자택에서 버틸 수 있도록 식품·연료 등 비축품을 구비해야 한다.

동시에 급히 피난할 때를 대비해 상비약, 마스크, 간이 화장실, 물티슈, 조리가 필요 없는 영양식 등을 배낭에 넣은 비상용 휴대품을 항상 꺼내기 쉬운 곳에 준비해 둔다. 재난 시 일반 통신망 마비에 대비하여 공중전화 활용법, 재해용 음성 메시지 다이얼(171) 사용법, 타 지역 친척을 통해 안부를 전하는 삼각 연락법 등을 평소 익혀두어야 한다.

돌봄 공백 방지

초고령사회 재난 대응의 기준: 인권 관점에서 재난대응체계의 패러다임 전환

향후 과제

초고령사회에서의 재난 대응은 단순히 인적·물적 피해의 규모를 줄이는 기술적 과정을 넘어 사회의 가장 취약한 구성원의 인권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가치론적 질문이다. 따라서 고령자를 시혜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전환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는 시급한 국가적 과제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향후 정책적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법제도의 정비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등 관련 법령에 재난 취약계층으로서 고령자의 권리를 명시하고, 재난안전 관리계획 수립 시 고령자 인권 영향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통계의 세분화이다. 재난 통계 작성 시 나이, 가구 형태, 기저질환 유무 등을 바탕으로 데이터를 세분화하여 축적함으로써 과학적이고 정밀한 고령자 맞춤형 대책을 수립하는 데 기초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셋째, 예산의 우선 배정이다. 고령자 친화적 재난 인프라(대피소 개선, 맞춤형 경보 시스템 등) 구축을 위한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재난관리는 모든 국민이 재난 앞에서도 자신의 인간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돕는 고귀한 책무이다. 고령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인권 중심의 재난 대응 체계를 구축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어떤 재난에도 흔들리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안전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으며 인권의 관점에서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안전(Leave No One Behind)'을 실현하는 데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인권」

글_ 배화옥ㅣ경상국립대학교 사회복지학부 명예교수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