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인권 [2025.11~12] 이주민, 난민, 낯선 이들과 마주하는 가장 좋은 방법

4년 전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재집권으로 혼란에 빠진 가운데 그동안 한국 사람들을 도와줬던 특별기여자들이 부역자로 처단될 위기에 놓이자 한국 정부가 그들을 가족까지 함께 구출했다. 이른바 미라클 작전. 기적처럼 391명을 데리고 오는 데 성공했다. 다들 환호했다. 이 가운데 29명이 울산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에 채용되면서 가족 등 157명이 울산에 정착하게 됐다. ‘미라클’은 순식간에 ‘충격’이 됐다. 난민이 내 이웃이 될 줄이야.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
학교에는 ‘난민 입학 반대’ 현수막이 걸렸고, 학부모들 시위에 시달리던 교사들은 학교를 그만두려 했다. <미래를 먼저 경험했습니다>(2024, 메멘토)는 시사인 김영화 기자가 울산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록한 책이다. 주민들이 왜 반발했으며, 누가 어떻게 갈등을 줄이려고 했는지, 무슬림 이웃이 생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해상도를 높여서 들여다봤다. 이방인을 마주하면서 당황한 이야기들 뿐만 아니라, 각자 최선을 다한 온갖 사연, 서로 다른 생각을 적대시하지 않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 이른바 공존의 노하우가 담겼다.
당시 교육부와 법무부는 공문 한 장 달랑 보냈다.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매뉴얼도 없었고, 준비도 없었다. 다만 누구 담당인지 불확실한 와중에 나선 좌충우돌 애쓰는 이들이 등장했다. 환대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혐오에 반박 댓글을 단 사람들도 있었고, 스스로 바닥 민심부터 확인한 이도 있다. 가게나 식당마다 대체 뭐가 문제 같냐고 물었는데, 다들 별 문제 아니라 했다.
다문화주의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아름다운 동화가 아니다.
책에는 울산시교육청의 관련 일지가 그대로 실렸다. 교육청은 지치지 않고 계속 자리를 만들었다. 학부모 분노와 걱정의 소리를 듣는 자리, 듣고 또 들었다. 학부모를 위한 다문화 이해 교육을 시작했다. 참가율이 저조했다. 그러나 실망하는 대신 관점을 바꿨다. 우리부터 선입견을 없애보자고, 교사들 상대로 이슬람 문화도 가르쳐보고, 스펀지에 물 스며들듯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아프간 가족과 1대1 결연도 해보고, 반대와 혐오를 넘어 무사히 등교하고 적응하는데 많은 이들이 애썼다. 취업자와 학생 외에 가정을 지키는 아프간 여성들도 사각지대에 놓여 도움이 필요했다. 은행이나 주민센터 이용법, 지하철 타는 법, 가르칠 건 너무 많았다. 당사자들에게도 어려운 도전이었겠지만, 담당자들도 마찬가지. 이들은 끝내 서로에게 위로가 됐다.
울산 이야기는 완성된 미담이 아니라, 고군분투라 의미가 있다. 다문화 국가로 진입할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비슷한 상황이 불거질텐데, 매도 먼저 맞은 것처럼 이 경험이 자산이다.
울산과 비교되는 것이 대구다. 이슬람 사원 짓다가 주민들과 벌어진 갈등은 2년 넘도록 해결이 안됐다. 원래 기도 공간으로 사용하던 공간에 사원 건축 허가를 받았는데, 주민들이 공사 중지 민원을 제기했다. 법적 다툼 끝에 대법원까지 가서 무슬림 유학생들이 승소했는데, 주민들은 무슬림 금기 식품인 삼겹살 파티에 돼지머리 고사까지 지냈다. 이토록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달은 것은 ‘정치와 행정의 부재’ 탓이란 걸, 울산을 보면 알 수 있다.

울산에는 아프간 학생들과 손잡고 등교하던 고 노옥희 교육감이 있었다. 더불어 함께, 아이들이 교육받도록 이분의 의지가 어떻게 변화를 만드는지, 이야기가 생생하다. 지자체장, 교육감, 누가 됐든, 의지를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다문화주의는 다양성이 존중되는 아름다운 동화가 아니다. 끊임없이 갈등하고 협상해야 하는 불편한 과정이란 걸 울산이 경험했다. 저자는 ‘갈등의 쓸모’를 말한다. 예멘 난민을 기억하는가? 500명 온다니까, 젊은 여성들이 가장 반대했다. 위협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들도 다 같은 사람이란 걸 알아가는 과정에는 진통이 불가피하다. 낯선 데 가거나 낯선 이들과 서로 접촉해야 새로운 배움이 일어난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이주민, 난민, 낯선 이들과 마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감이다. 나도 그 사람들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기후위기부터 전쟁 위험까지 우리라고 다를까? 이 마음을 영국 식으로 얘기하면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본다”는 속담이 있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2020, 다다서재)에서 영국에서 차별에 부딪친 중학생이 의젓하게 하는 말이다.
아일랜드인 아빠와 일본인 엄마를 둔 중학생이 영국에서 차별과 다양성 사이에서 자라는 얘기다. 엄마가 아이 경험을 시시콜콜 유쾌하게 기록했다. 초등학교 때는 점잖은 명문에 다니던 모범생 혼혈 주인공이 중학교는 집근처 백인 위주의 학교로 진학했는데 훨씬 거친 동네였다. 부유한 학교는 오히려 인종다양성이 있고, ‘구 밑바닥 중학교’라고 부르는 곳은 얼핏 보면 백인 뿐. 이민자로 뭉뚱그려도 온갖 인종에 출신 국가가 다르다보니, 흑인 차별 발언은 동유럽 이민자 아이가 하고, 그 아이는 동유럽 촌놈이라고 또 차별당한다.
가만 보면 또 계급이 문제다. 가난한 아이들, 약자에게 언제나 감정적 조롱 같은 게 배출되는 구조다. 근데 얘들 기말고사 문제로 ‘Empathy(공감)’ 뜻을 묻는 질문이 나온다. 엄마 아빠 보기엔 넘 어려운데 아이는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이라고 쿨하게 대답한다. 타인의 입장에 서서, 자신과 이념이나 신념이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상해보는 일이다.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
한국에 사는 이주민들 생존보고서 <당신은 나를 이방인이라 부르네>(2023, 후마니타스)는 전문가 22명이 이주민들을 각각 인터뷰했다. 이런 분들이 각자 손 보태는 응원부터 마음이 따뜻해지지만 내용은 서늘하다. 이주노동자는 ‘비자’라는 족쇄에 묶여서 노동3권 주장을 못한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거제에서도 규탄집회가 열리는데 사장님은 보내주지 않는다. 그런 집회 참여가 조직화로 이어질까 염려한다. 부리기 좋게 이주노동자를 사회와 괴리시키는 이유다.
“하루에 열한시간 넘게 깻잎 따요.
그런데 사장님이 월급을 안 줘요.”
(캄보디아 20대 여성 니몰)
정부의 외국인 인력 수급 정책은 고용 문제 해결이 목적이다. 파종기, 수확기, 일손이 집중 필요한 시기에 계절근로 도입 규모를 한시적으로 늘리거나 결혼이민자의 가족과 친척을 초청하는 방식으로 노동 공백을 메꿨다. 원칙적으로 사업장 이동을 허용하지 않고, 가족 동반을 허용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정주를 허용하지 않는다. 차별 없이 적용해야 할 근로기준법 조항들은 유예되고, 잠깐 부려먹고 내보낼거라 사회 통합을 고민하지 않는다. 정작 이주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일하러 왔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가 꿈꾸는 미래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소용이 다하면 국경 밖으로 내치고 새로운 노동자를 들여오면 그만이다.
작년 9월 기준 장단기 체류 외국인 비율이 4.89%다. OECD는 5% 넘어가면 다문화 국가로 분류한다. 우리는 초저출생 국가로 외국인 노동자들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간다. 현대중공업 협력업체 직원 1만 명 중 1500명이 이주노동자. 옛날에는 100명 규모 업체에 외국인이 10명 들어오면 일자리 빼앗겼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 10명이 들어와서 90명의 일자리를 지킨다고 한다.
“우리가 부른 것은 노동력인데, 온 것은 사람이었다” 1960년대 한국 파독 광부와 간호사 등을 대거 받아놓고도 ‘손님 노동자’로 대하던 독일에서 나온 비판이다. 독일은 이주민 언어교육, 사회통합교육, 직업교육, 기초생활비 지급 등을 통합 관리하는 기구를 만들었다. 국내 이주민 정책 주무 부처는 법무부인데 체류와 정착 과정만 관리한다. 근데 인구 5%다. 앞으로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괜찮을까?
글 | 정혜승(북살롱 오티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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