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기 [2025.11~12] #1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에 맞선 인권 수호자들

왼쪽부터 이완(아시아 인권문화연대 활동가), 김지림(공감 변호사), 권영실(동천 변호사)
지난 4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심의에 참여한 3명의 인권 운동가를 만났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제20·21·22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심의와 함께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 실태를 점검하고, 해외 이주민에 대한 문제를 세밀하게 되짚으며 국내 이주민의 권리 보호 강화와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방향성을 확인했다.

Q 올해 4월에 제네바에서 열린 인종차별철폐위원회 대한민국 정부보고서 심의에 다녀오셨는데요. 직접 참여하신 소감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완
이번 심의는 지난 7년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현황과 관련 사항들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자리였습니다. 보통 4월에 진행되는 심의 대응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준비 과정에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매우 고된 일이었습니다.
김지림 변호사
그동안 몇 차례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번 심의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위원회의 시민사회 비공개 브리핑 시간에 영상, 사진 등의 자료를 제시하면서 서면으로는 충분히 위원들에게 닿기 어려운 상황들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나누었던 내용들이 심의 과정에서 질의되고, 최종견해에 담기는 것을 보며 그간의 노력이 의미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Q 2018년 심의와 이번 심의를 비교하여 달라졌다고 느낀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이번 최종견해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김지림 변호사
최종견해의 영문본을 보면 조금 더 잘 느껴지는데, 이번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최종견해는 2018년보다 훨씬 강했어요. 정부가 반복된 권고에 성과를 보이지 못한 부분, 또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답변하지 못한 점, 특히 인종차별금지를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보편적 출생등록제 같은 사안에서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강한 질책이 있었죠.
권영실 변호사
사회보장 분야 특히 건강보험 제도는 구조가 복잡하고, 다른 나라들과 비슷한 점도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차이가 많아 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위원들이 한국의 제도를 비교적 잘 이해하고, 세부적인 내용까지 충실히 담아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완
이번에 좀 달라졌다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독립성, 전문성에 대한 우려를 많이 표했던 점이었어요. 이를 통해 ‘이미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국내 실황에 대한 내용들을 다 알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리고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중국 동포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 문제를 비롯해 혐오 표현 문제가 심화·확산되면서 혐오 범죄까지 벌어지는 상황, 특히 이제 자국민 보호연대 같은 인종차별 단체들이 사적으로 이주민을 체포하는 등 폭력으로 발전하는 문제에 대해서 잘 짚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평가는 한국의 현실을 비춰주는 객관적 지표인데, “인종차별이 심화됐다”라는 지적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김지림 변호사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인종차별을 정의하고 범죄화해서 통계를 내지 않느냐는 지적을 계속하고 있는데, 2018년 심의 때 대한민국 담당 위원분이 한국의 인종차별 실태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이 문제를 그대로 두면 국가의 위기가 될 거라는 경고를 하셨습니다. 최근 이주민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정부도 늘리려는 상황에서 이번 심의에서도 위원회가 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지적했다고 합니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는 인종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런 주장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 완
한국 사회에 ‘인종차별이 없다’라고 인식되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정부가 법적으로 인종차별의 개념을 명확히 정의하지 못했고 둘째, 신인종주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생물학적 인종 구분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를 이유로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낙인찍는 것도 인종차별입니다.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다 어떻다’하는 식으로 특정 집단을 인종화해서 차별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것이죠. 중국 동포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대표적인 예죠.
‘국민과 비국민’의 구분이 아닌,
이주민도 함께 사는 시민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해요.
Q 지난번 심의와 이번 심의에 최종 견해를 비교해 보면, 항목과 내용들이 좀 더 상세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권영실 변호사
이번 권고에는 한국 사회의 이주민 구성이 한층 다양해졌다는 점이 잘 반영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가 있는 이주민이나 고령 이주민 등이 언급된 것은, 과거에 주로 젊은 이주노동자 중심이었던 것에서 벗어나 인구사회학적으로 다양한 이주민들이 늘어났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들이 오랜 기간 한국에 거주했음에도 불안정한 체류 자격에 머무르거나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들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이라고 생각하는데, 위원회가 이번에 적절히 지적해 준 것 같습니다.
이 완
‘정규화 경로(Regular Pathway)’를 분명하게 지적한 것은 의미가 큽니다. 미등록 이주민 증가 문제는 개인의 잘못된 선택보다 이주민이 미등록 상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정부의 잘못된 이주정책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고 상세한 권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지림 변호사
이주구금 부분도 2018년보다 더 상세하게 나왔는데, 새우꺾기 고문이라든지, 헌법재판소 결정 등의 구체적인 사안들을 위원분들이 다 알고 이 주제를 별도 단락을 낼 만큼 상세히 다뤘다고 느꼈습니다.
Q 심의 후 최종 결과가 나오고 나면 이후에 후속적인 작업이 중요하죠. 유엔의 권고가 실질적으로 이제 정부의 제도나 정책 변화로 이어지려면 어떤 조건들이 필요하고, 행정부뿐 아니라 사법부, 입법부 등 각 영역에서 어떤 노력들을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이 완
지난 9월, 국회에서도 최종견해 이행에 대한 정책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이제 한국은 해외 이주민 270만 명 시대를 맞은 상황인데요, 현실에서 세부적인 충돌과 제도가 미비한 부분도 있지만 저는 한국 시민들이 이주민들과 함께 살 준비가 되어 있고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위원회의 권고는 한국 사회가 나아갈 로드맵을 제시한 것이고, 다른 나라들이 겪었던 문제들을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성을 알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차근히 무엇부터 해결할지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권영실 변호사
국민 중심으로 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모든 제도를 혁신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법부는 지금보다 국제인권조약을 보다 적극적으로 판결에 원용해야 하고, 변호사들 역시 국제인권기준을 더 많이 인용하고 주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시민사회 역시 이주 영역만의 문제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장애·아동·빈곤 등 다른 영역과 연대하고 협력할 때 더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김지림 변호사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입니다. 한 지역 내 갈등은 지역 정부가 주도하는 분위기로 인해 새롭게 발생하거나 혹은 심화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생활 속에 녹아있는 수많은 정책들뿐만 아니라 교육 방향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대한민국이 인종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한 지 약 50년이 된 지금까지도 “한국 사회에는 인종차별이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정책과 교육 체계 속에 인종차별을 인지하고 예방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최종견해는 특히 한국 정부의 인종차별금지 노력에 대한 형편없는 성적표라고 생각합니다.
Q 국내에서 인종차별에 기반한 증오 범죄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최근 이런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 선고가 있었는데요, 이것이 상황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김지림 변호사
최고법원의 단호한 판단은 당연히 큰 의미가 있지만, 한 사건의 판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혐오 표현·증오범죄·인종차별 정의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아직 시작되지 못했습니다.
이 완
최근 이주민을 사적으로 체포하고 폭행했던 인종차별 단체인 자국민보호연대 대표에게 1년 2개월 실형이 선고됐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이주민에 대한 혐오 표현은 ‘표현의 자유’로 포장되고 혐오 범죄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는 아직 혐오 표현에 관한 규정도, 인식도 없습니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한국 사회에서 혐오 표현이 왜 심각한 범죄행위고 인종차별인지에 대해서 자각할 필요가 있어요. 혐오 표현을 제지·단속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시급합니다.
Q 이번 최종견해에서는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내용들이 있었는데요,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지림 변호사
이번 위원회 권고에는 코로나19·이태원 참사 등 재난 및 보건비상상황에서 이주민 피해자와 외국인 유가족의 인권 보호가 처음 포함되었습니다. 심의 과정에서 코로나19, 이태원 참사, 아리셀 참사 등의 구체적인 사례와 그 속에서 차별받은 이주민 피해자, 유가족의 권리가 논의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이 완
인종차별 개념에 있어서 우리의 일상적인 개념의 수준과 국제사회에서 보는 인종차별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이번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차별 부분도 생물학적 인종주의뿐만 아니라 특정 집단을 인종화 시켜서 차별하는 문제로 보는 맥락에서 인종차별로 규정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Q 이주 인권의 증진을 위해서 앞으로의 과제가 있다면요?
이 완
‘국민과 비국민’의 구분이 아닌, 이주민도 함께 사는 시민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해요. 더불어 한국으로의 이주 경로가 사설 브로커 중심으로 바뀌며, 송출 비용으로 수 천만 원의 착취와 인권침해 구조가 형성된 게 핵심 문제입니다. 공공성 강화를 통해 이주노동자 송출과 노동 및 체류 구조에서 이주민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혐오 표현과 혐오 범죄를 규제하는 방안도 시급히 마련되길 바랍니다.
권영실 변호사
비슷한 맥락에서 아동은 아동으로, 장애인은 장애인으로서 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가장 취약한 상황에 놓인 사람에 대해서 국민과 비국민을 구분하여 기본적 지원에서 배제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긴급복지지원법의 개정은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Q 이야기를 마치며
이 완
7년마다 한 번 있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심의이기에 책임감과 부담감이 매우 컸습니다.
단어 하나라도 빠지면, 현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압박이 컸죠. 함께한 시민단체분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위원회의 최종견해가 적절하게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인권위에서 앞으로 이주인권 문제를 더 중요하게 다루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인력 보강이 대폭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권영실 변호사
최근 경기도에서 이주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난민 지원·미등록 아동 발굴·인종차별 방지 등 3건의 조례가 통과된 것은 큰 진전이었던 것 같아요. 지연되는 국가의 정책을 기다리기보다 지역사회 일원의 권리적 관점에서 이주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이 변화의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
김지림 변호사
최종견해가 나온 순간부터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최종견해를 어떻게 이행하는지를 감시하고 독려하는 과정의 시작이라는 의미죠.
협약 심의를 준비하는 국가인권위원회 내부 과정에서도 ‘한국에는 인종차별이 없다’라는 발언이 오고 가기도 하였는데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명확한 차별·혐오 대응 기준과 내부 심의 절차 마련 등 인권위의 역할 강화가 필요합니다. 유엔 인권협약의 심의에서 한국 사회의 실태를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계속 협력해야 합니다.
정리 | 편집실
사진 | 전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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