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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이야기 [2025.01~02] 비상계엄하에서 자유권의 일시적 제한은 정당한가?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계엄사령관 명의로 포고령 제1호가 발표되었다. 포고령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상계엄하에서 자유권의 일시적 제한은 정당한가?

포고령 제1호


1.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 및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한다.
2.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며,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지한다.
3.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4.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지한다.
5.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에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6.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한다.

 

국제사회는 전쟁, 자연재해, 대규모 테러, 또는 심각한 사회적 혼란과 같은 공공의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법질서를 유지하고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권리를 일시적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으나 이러한 조치는 엄격한 조건 아래에서만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인권협약 제15조와 미주인권협약 제27조는 이러한 비상상황에서의 권리 제한 요건을 명시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이 비준한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ICCPR, 자유권규약) 제4조 또한 비상사태 시 권리 제한의 요건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공공비상사태의 경우 그리고 그러한 비상사태의 존재가 공식으로 선포된 때에는 이 규약의 당사국은 해당 사태의 긴급성에 의하여 엄격히 요구되는 한도 내에서 이 규약상 의무로부터 이탈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조치는 해당 국가의 그 밖의 국제법상 의무와 불합치하지 않아야 하고,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또는 사회적 출신만을 이유로 하는 차별을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
2.
이 규정에 따르더라도 제6조, 제7조, 제8조(제1항 및 제2항), 제11조, 제15조, 제16조 및 제18조로부터의 이탈은 허용되지 않는다.
3.
이탈할 권리를 행사하는 이 규약의 당사국은, 자국이 이탈한 규정 및 그 이유를, 국제연합 사무총장을 통하여 이 규약의 다른 당사국들에게 즉시 통지한다. 당사국은 그러한 이탈을 종료한 날에 동일한 경로를 통하여 그 내용을 추가로 통지한다.


 

위 조항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도 계엄 선포로 인해 자유권규약의 일부가 제한되었다는 사실과 그 이유를 유엔에 통보해야 할 의무가 있다. 국제사회에서 국가 비상 상황 시 권리를 제한하는 것과 관련하여 유엔에 통보할 의무를 규정한 이유는 권리 제한의 예외 조건과 절차를 명확히 함으로써 남용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특히 생명권(제6조), 고문 금지(제7조), 노예제 금지(제8조), 양심의 자유(제18조) 등은 어떤 상황에서도 제한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자유권규약의 이행 여부를 감시하는 자유권위원회는 일반논평 제29호를 통해 국가 비상사태에서의 유예조치를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의 비상사태는 반드시 법적·공식적으로 선언되어야 하며, 권리를 일시적으로 제한할 때에도 이는 위기 상황 해결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이어야 하고(비례성 원칙), 특정 집단에 차별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상사태 선언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사전에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해 실제 국가 생존을 위협하는지를 평가해야 하고, 선언 이후에도 국제사회, 특히 자유권위원회는 남용 여부를 평가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국제사회는 어떤 상황을 비상사태라고 규정하고 있을까? 1984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가 채택한 시라쿠사 원칙(Siracusa Principles)은 공공의 비상사태를 국가의 생존이나 기본적인 사회 체계의 붕괴를 초래할 만큼 심각한 위기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경제적 어려움, 정치적 긴장, 내부 분열 또는 일반적인 범죄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판례를 통해 공공의 비상사태를 “전체 인구의 조직적 안보와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정의하고(Lawless v. Ireland) 단순한 위기 상황이나 불안 요소는 비상사태로 간주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A and Others v. United Kingdom).

 

현재까지 국가 비상사태 선포로 인해 권리가 일시적으로 제한되었다는 사실을 자유권위원회에 통고한 국가는 태국, 아르헨티나 등 약 40개국이다. 비록 정부가 통고하지 않았다고 해도 시민들이 개인진정 등을 통해 해당 사실을 자유권위원회에 알릴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Silva et al. v. Uruguay를 들 수 있다. 1966년과 1971년, 우루과이에서 특정 정당의 후보로 출마한 5명에 대해 우루과이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이유로 해당 정당을 불법화하고 15년간 모든 정치 활동 참여를 금지하였다. 이에 해당 정치인들은 자유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였다. 1981년, 자유권위원회는 우루과이 정부가 주장한 정치적 불안과 내란 위험이 ‘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공공의 비상사태’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우루과이 정부의 조치가 비례성과 필요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결정했다. 나아가 위원회는 우루과이 정부가 비상사태로 인한 권리의 제한을 유엔에 통고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대한민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해제된 지 약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자유권규약을 비준한 한국 정부에게도 규약 제4조에 따라 비상사태 시 일시적으로 권리를 유예한 것을 유엔에 통고할 의무가 있다. 자유권위원회는 통고 여부와 상관없이 당사국의 법과 관행이 자유권규약 제4조와 양립하는지를 감시할 수 있지만 성실한 통고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유지하고 인권 보호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는 중요한 행위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6시간의 비상계엄 중 일시적으로 제한된 시민들의 권리에 대해 이제 국제사회의 평가를 받을 시간이다.

 

 

자유권위원회는 통고 여부와 상관없이 당사국의 법과 관행이 자유권규약 제4조와 양립하는지를 감시할 수 있지만 성실한 통고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유지하고 인권 보호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는 중요한 행위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글 | 백가윤(국가인권위원회 국제인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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