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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024.11~12] “당장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기후위기는 눈앞에 닥친 문제 맞아요.”

 

기후위기 앞 당사자인 미래세대 김민재, 박해밀, 허윤나, 최은찬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10월 중순 토요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건물에서 만난 고등학생 김민재, 박해밀, 허윤나, 최은찬(왼쪽부터)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10월 중순 토요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건물에서 만난 고등학생 김민재, 박해밀, 허윤나, 최은찬(왼쪽부터)

 

박해밀 인천 옥련여고 2학년 “‘드디어 할 일을 했네’라고 생각했다.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 수준이 낮은 편이라고 알고 있는데 드디어. (헌법재판소가) 바꾸라고 했으니까 이제는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과 헌재 결정에 대한 반가움이 앞섰다.”

 

허윤나 남양주 덕소고등학교 3학년 “2030년까지의 국가감축목표(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는 그대로 유지해서, 이대로 둬도 되는 것인가 복잡한 감정이었지만, 이제 많은 변화의 첫걸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앞으로 더 (감축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0월 중순 어느 토요일 저녁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건물에서 만난 4명의 ‘미래 세대’는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의 기후위기 헌법소원 결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한국 정부에 기존 탄소중립 관련 법 조항이 사실상 위헌이라며, 2026년 2월까지 2031년~2049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새로 추가해 법제화하라고 명령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언급하며 이들은 기쁨과 실망, 기대와 우려를 모두 표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2년 말 기후위기문제가 인권 문제임을 선언한 데 이어 사법부에서도 기후문제가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인정한 것에 이들은 모두 반겼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에서 고등학교 2~3학년이란, 입시에 매몰돼 가장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을 것만 같은 나이라는 선입견은 단박에 깨졌다. 스웨덴의 2003년생 기후환경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보다도 3~4살 어린 이들에게 기후위기 문제는 “당면한 생애 최고의 문제”였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1~2년가량 기후변화 관련 소모임 활동을 하거나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프로그램 등에 참여한 이들에게 기후문제는 “눈앞에 닥친 위기, 당면한 과제, 모든 이들의 인권 문제”였다.

 

 

기후 전문 기자 최우리가 만난 사람

 

헌법재판소의 기후헌법소원 헌법불합치 소식에 기쁨, 아쉬움, 우려, 기대

 

언제 어떤 계기로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이 생겼나요.

민재  “지구는 내가 사는 토대다. 인간의 손에 달린 지구의 미래를 파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꼬마 시절에 쓰레기가 어디로 갈까 호기심이 생겼고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수업을 듣다가 온난화 문제와 환경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윤나  “중2때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때 환경문제를 알게 됐고 집에만 있다보니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있었고, 나중에 ‘기후우울’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사실을 깨닫고 적극 활동하기 시작했다.”

은찬  “시점은 명확하지 않지만, 왜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지에 대한 책을 읽고 환경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문제의식이 강해졌다.”

해밀  “깨끗한 물과 위생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기후위기 상황에 내몰린 다른 나라 아이들의 상황을 알게 됐다.”

 

 

민재

 

미래 기후위기 문제는 악화될까요.

민재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더 살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국제기구의 회의에서 감축 목표를 높이라고 하는 걸 보면, 거짓말 같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더위에 지쳐있을 것 같다. 국가적으로는 폭우나 폭염 피해로 이를 복원하고 회복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 것 같다.”

윤나  “이미 배출한 온실가스가 길게는 수백 년도 그대로 대기 중에 머물며 온난화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건 최악을 막는 것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삶이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 나는 지금처럼, 계속해서 기후위기 문제를 알리면서 살고 있을 것 같다.”

은찬  “기후 위기가 심화될수록 국제정세가 가장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바이러스 창궐이나 자원 고갈로 인해 강대국들이 국경을 봉쇄하고 탈세계화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미래 세대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폐쇄적이고, 국가 간 교류가 줄어들며, 문화적으로도 퇴보된 문명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더불어 한국같이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많은 피해를 볼 수도 있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요리나 미식에 관심이 많은데 한참 돈 벌어서 취미생활을 누릴 수 있는 나이가 되어도 지금과 같은 식재료들을 맛 보지 못 한다는 점이 너무 슬프다.”

해밀  “단기적으로는 자연재해가 많이 발생할 거 같다. 또 그럴수록 사회적 약자가 겪는 불평등 문제는 심해질 수 있어 보인다. 장기적으로는 대안을 찾아가지 않을까. 정말 먼 미래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다만 내 생애에는 아닌 것 같다(웃음).”

 

 

학교나 가정, 친구들과 지내면서 기후환경 관련 이야기를 나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민재  “환경 관련 수업은 거의 없다. 부모님, 남동생(초4)과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친구들과는, 시험 이야기만 한다.”

윤나  “학교 앞에 한강이 있는데, 하루살이 벌레가 날씨가 더워지니 일찍 나오고 그 수도 많아 앞을 가릴 정도다. 친구들끼리 장난스럽게 ‘재앙이 오는 것 아니냐’고 한다.

은찬  학교 친구들과 함께 기후정의행진에 매년 참가하고 있다. 학교 공식 교육과정에 농촌배움활동이라는 활동이 포함되어 있어 학생 개개인의 환경 감수성이 높은 편이다. 학교 내의 문제만 전문으로 고민하는 기구도 있어 비교적 기후 문제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도 옳고 그른 정도는 구별할 수 있는 능력들이 있다.”

해밀  “2학년 환경 과목이 필수로 있지만, 그 시간 동안 생활기록부에 쓸 수 있는 다른 활동들을 하거나 그냥 잔다. 내가 기후위기 이야기를 꺼내도 주변에서는 “와 우리 망했다, 우리 화성으로 갈래?” 이런 비생산적인 대화로 끝낸다. 대학 입시에만 관심을 가져서 아직 기후문제에 관심이 부족해 보인다.”

 

 

자연스럽게 스며든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 학교 교육은 아직 부족하다

 

민재는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사회운동을 포함한 공공영역에서 일을 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채식을 지향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 윤나는 심리학을 전공하고 언어심리학자가 되는 걸 꿈꾼다. 은찬은 정치외교 전공을 희망하고 국제기구에서 일해보고 싶다. 해밀도 지속가능성이나 국제개발협력 문제에 관심이 있어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 아직 확정하거나 확정된 미래는 아니지만, 이들은 자신답게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이들에게 기후문제란 너무 암담하고 커다란 숙제, 혹은 짐과 같다.

 

기후위기가 여러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나요?

해밀  “더위에 약해서, 아마 몸이 아플 것 같다. 그리고 집에만 있어야 할 것 같다.”

은찬  “저도 땀을 많이 흘리는데, 기후가 바뀌면 질병도 달라지고, 또 더 취약해질 것 같다.”

민재  “활동 범위가 줄어들 것 같다.”

윤나  “모기나 곤충이 늘어서 전에 없던 질병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미 모기가 늘어나서 뎅기열이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들었다.”

 

 

사회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요. 달라져야 할 건 뭐가 있을까요.

은찬  “정부가 기후 문제를 모두가 공감하는 주제로 만들 수 있는, 경각심을 주면서도 강압적이지 않은 활동이 많아지면 좋겠다. 또 생태감수성을 잘 키울 수 있는 환경교육도 정말 중요하다. 우리가 바뀌더라도 기후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는 인도, 중국 등의 국가들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런 사고는 우리를 지나치게 무력하게 만들고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마저 해결할 수 없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해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진짜 대응이 필요하다. 눈앞에 닥친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하는데, 기후위기가 우리 눈앞에 닥친 문제 아닌지? 기후위기로 경제위기, 인권침해 다 따라온다. 왜 무관심하고 관대한지 화가 난다.”

윤나  “우리 모임에서 뭐부터 할까 질문하면 나오는 답이 한두 개가 아니다. 기후위기는 외딴 섬이 아니라 경제, 인권, 외교 다 연결되는 문제이다. 사회·경제·정치적 차원에서 다루는 모든 문제들이 기후위기와 연결돼 있다. 남을 배려하는 게 당연하다고 배우듯,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당연히 배워야 한다.”

민재  “교육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이를 제도로 강제하는 것도 방법이다.”

 

해밀

 

 

기후환경활동가 그레타 툰베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은찬  “어린 나이지만 전문가들과 함께 기후책을 만든 것도 대단해 보인다.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해밀  “기성세대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가르쳐준 사람 같다. 4살 언니셔서. (웃음) 그린워싱 비판도 있었지만, 기성세대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건 대단한 것 같다.”

윤나  “환경에 대한 책임을 느끼게 해준 사람이다. 그런데 툰베리 같은 특별한 사람만 환경운동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아쉬운 지점이다. 그냥 평범해도 환경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민재  “본인의 미래를 지구의 미래와 같다고 생각한 사람. 기존의 틀을 깬 일종의 혁신가 같다.”

 

은찬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한 기후위기, 우울하다면 오히려 행동하자

 

툰베리처럼 여러분들도 기후환경 문제를 앞장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대학 가려고 일부러 목소리 내는 것 아니냐는 오해는 안 받나요?


윤나  “입시 기준을 잘 몰라서 오해하는 듯한데, 외부에서 하는 활동은 생기부에 적을 수도 없다. 그래서 이런 활동을 하는 건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다. 기후를 생각하면 우울했다. 이렇게 활동하는 게 우울을 극복하는 내 나름의 방법인 것 같다.”

해밀  “맞다. 정말 생기부에 이런 활동이 적히지도 않는다. 내 시간과 돈과 체력을 들여 고생한다. 그런 말을 들어도 화가 나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학생의 과업은 공부가 1차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는데, 나는 그래도 대화를 하다보면 나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서로 친구가 되는 편이다.”

은찬  “나는 오히려 이런 활동을 많이 해서, 이제 공부해야 하지 않나 이런 생각도 한다.”(웃음)

민재  “근거 없는 공격이라고 생각해 별로 상처받지 않는다.”(일동 웃음)

 

 

2시간 가량 이어진 인터뷰는 점점 깊어져갔다. 옷을 좋아하지만 패션산업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걸 깨닫고 구제샵만 가는 해밀, 학교 소모임 친구들 서너 명과 함께 학교를 더 녹색으로 가꾸기 위해 담쟁이덩굴을 학교 벽에 감아보려 했던 은찬, 채식을 지향하면서도 꼭 완벽할 필요가 없다고 깨달으며 너무 무겁지 않게 환경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윤나, 일상 모든 생활에서 환경 문제를 가까이 느끼고 실천하려는 민재는 기후환경 보도를 하고 있는 기자가 만난 누구보다 지구의 아픔, 이웃의 인권을 걱정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스스로의 인권 문제이자, 미래 모든 생명의 삶이 담보된 문제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부탁했다.

윤나

 

윤나  “우리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

해밀  “당신의 미래가 달려있다”

은찬  “혁명은 낮은 자부터 시작되어 왔다. 우리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우리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

민재  “지금 기후위기 문제를 알고 무력하다면, 일단은 그 감정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자.”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

 

 

글/사진 | 최우리(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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