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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이야기 [2024.07~08] 14년 만의 작은 승리, 유엔 중심부에서 외쳐보는 노인 인권!

 

14년 만의 작은 승리, 유엔 중심부에서 외쳐보는 노인 인권!

 

“현재의 국제인권체계가 노인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유엔 고령화실무그룹(OEWGA, Open-Ended Working Group on Ageing) 의장의 입에서 떨어진 2024년 5월 21일 오후, 유엔 뉴욕 본부 제2회의장은 환호와 박수로 가득 찼다. 2010년, 전 세계 노인 인권 보호 및 증진의 필요성을 검토할 목적으로 설립된 OEWGA가 출범한 지 14년 만에 드디어 노인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합의한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취약한 상황에 놓인 노인이 많다는 것은 대부분 인정하는 사실이다. 의학의 발전으로 노인 인구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면서 동시에 여러 사회적 어려움도 가져왔다. 특히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노인들이 처했던 여러 어려운 현실들, 그리고 빈곤하지만 일하기 어려운 상황, 학대와 방임, 무엇보다 일상에서 노인이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거나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점 등 많은 노인의 삶이 존엄한 삶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노인이 열악한 상황에 있다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노인의 인권이 더 특별히 보호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나 이 문제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유엔 인권조약기구만 해도 그렇다. 2023년 4월 4일 기준, 조약기구의 권고 또는 최종견해 98,095건 중 노인의 권리를 언급한 것은 826건(0.8%)에 불과하다. 노인 당사자들도 ‘노인이라면 응당 이러한 대우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할만큼 노년의 삶이 다른 연령의 삶과 다르다는 연령주의적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팽배하다. 국가인권기구들 사이에서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대한민국 인권위가 의장을 맡고 있는 세계인권기구연합 고령화실무그룹(GANHRI WG-HROP, Global Alliance of National Human Rights Institutions, Working Group on Ageing and the Human Rights of Older Persons)은 2023년 11월 개최된 GANHRI 집행이사회에서 노인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국가인권기구의 역할을 담은 ‘GANHRI 노인인권정책지침서’를 만들 것을 촉구하였다. 노인 인권 의제가 GANHRI 집행이사회 안건으로 다루어진 최초의 일이었다. 그리고 2024년 5월 초 개최된 GANHRI 집행이사회에서 GANHRI 고령화실무그룹이 작성한 ‘GANHRI 노인인권정책지침서’가 최종 승인되었다. GANHRI 내 노인 인권을 어떻게 보호할지에 대한 첫 공식 입장이 확정된 것이다. 지침서 내용에는 고령자가 겪는 차별이나 연령주의 철폐, 노인 관련 정책 또는 법안 입안에 노인 당사자의 참여, 그리고 유엔 노인권리협약 성안을 위해서 각 인권기구가 노력할 필요성 등이 담겼다. 무엇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국가인권기구들 사이에서 노인 인권 의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이 긍정적이라 할 것이다. 2024년 5월 말 개최된 제14차 OEWGA에서는 22곳(전체 A지위 인권기구의 25%)이라는, 역대 최대 숫자의 국가인권기구가 참가하였고, OEWGA에 참가한 국가들을 상대로 각 국가인권기구의 사례를 공유하는 최초의 유엔 회의 부대 행사도 개최하며, 국가인권기구 또한 노인 인권의 보호와 증진에 더욱 적극적으로 기여 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권위는 세계인권기구연합 고령화실무그룹 의장 자격으로, 국가인권기구 최초로 OEWGA 부대행사를 개최했다.
인권위는 세계인권기구연합 고령화실무그룹 의장 자격으로, 국가인권기구 최초로 OEWGA 부대행사를 개최했다.

 

5월 21일, 노인 인권 보호의 공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현장에서는 환호성이 나왔고, 시민사회단체와 인권기구들은 모두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했지만, 아무도 이것이 승리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후속 조치에 대한 논의는 유엔 총회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총회가 노인권리협약을 만들 필요성을 인정해주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은 그다지 순조롭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14년 간 한결 같이 노인 인권 보호 강화와 협약의 성안을 외쳐온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이 걸어온 그 긴 기간 동안, 아주 조금씩이지만, 더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더 많은 국가인권기구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많은 각국 정부들이 노인 인권 보호의 중요성을 공감하기 시작했고, 노인권리협약의 필요성을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속도가 너무 느려서, ‘내가 죽기 전에 꼭 협약을!’ 이라고 외친 한 70대 활동에게 협약 비준의 그날은 멀게만 느껴진다. 마크 트웨인이 “사람들이 절대 지켜봐서는 안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소시지 만드는 것과 법률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법을 만드는 과정은 그 내용보다는 이해관계가 얼기설키 엉켜 핵심을 잃을 가능성이 높은 데다, 유엔 193개 회원국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인권협약은 더욱더 그 과정이 험난할 것이다. 이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봐야 한다. 더 많은 노인들이 그리고 미래의 노인들이 ‘나이 듦에 따라 나의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외쳐야 한다. 왜냐하면 언젠가 꼭 만들어질 것이라 믿고 싶은 유엔의 노인권리협약은, 노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노인이 되는 모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글 | 박유경(국가인권위원회 국제인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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