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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브릿지 [2024.07~08] 대학이 더 이상 우리를 설명해 주지 않을 때 까지

 

대학이 더 이상 우리를 설명해 주지 않을 때 까지

 

학력주의는 차별입니다

 

지난 2021년 발의된 차별금지법안 ‘제3조 금지대상 차별의 범위’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학력·학벌을 이유로 고용, 재화·시설 이용, 교육훈련, 행정서비스 이용 등에서 차별하면 안 된다’는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교육부는 이에 대한 검토의견으로 차별의 금지 대상에서 학력을 제외하자는 의견을 낸 바 있다. 학력은 성, 연령, 국적, 장애 등과 같이 통상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 정도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합리적 차별 요소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교육부의 말대로 정말 학력은 개인의 선택과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인가? 만약 개인의 노력에 따라 성취 여부가 달라진다고 해도, 개인을 능력에 따라 판단하고, 차별하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1999년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가 대학에 재학하는 비중은 증가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비중은 감소했다. 나아가 부모에게 대학 졸업까지 경제적 지원을 기대한 사람일수록 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높게 나왔다. 경기도교육청과 경기도교육연구원 교통통계센터의 2016년 연구에서는 월평균 가구소득이 높은 가구의 자녀의 수능 점수는 소득이 낮은 가구의 자녀보다 평균 43.42점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부모의 소득이 높을수록 대학 진학률이 높아진다는 연구는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사실 굳이 연구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1년에 천만 원에 가까운 사립대학교의 학비를 생각해보면 양육자의 지원 없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학력에 따라 차별을 받는 것은 곧 계층에 따라 차별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학력에 따른 차별은 이 사회의 계층화를 가속하고 고착시키는 악습이며, 가족의 지위에 따라 계급이 세습되던 사회로의 퇴보를 부추기는 꼴이다.

 

 

능력이 없으면 생존이 어려운 사회

 

많은 사람들이 투명가방끈에 되묻는다. 일터에서 사람을 능력에 따라 선별하지 않으면 어떻게 일할 사람을 고용하냐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에 앞서 한국 사회에서 과연 인간답게 살 권리가 지켜지고 있는지 말이다. 능력에 따라 적임자를 뽑는 경쟁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사회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사회권은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국가에 대해 일정한 보호나 생활 수단의 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생존권적 기본권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사회권 안에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 노동자의 단결·단체 교섭·단체 행동을 할 권리, 주거권, 건강권 등이 있다. 사회권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경쟁만이 정당화된다면 그것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와 무엇이 다를까?

 

 

2020년 대학/입시 거부선언
2020년 대학/입시 거부선언

 

입시 경쟁 교육을 반대합니다

 

투명가방끈은 2011년 대학/입시 거부 선언자들이 함께 만든 학력·학벌주의와 능력주의에 저항하는 인권운동단체이다. ‘투명가방끈’이라는 명칭은 사람들이 흔히 학력을 칭할 때 쓰는 ‘가방끈’이란 표현에 착안하여, 학력으로 사람을 평가, 차별해선 안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처음에는 대학/입시 거부 선언자들과 대학비진학자들을 부르는 호칭이었지만, 이제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인간으로 존중받는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두 ‘투명가방끈’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한다. 투명가방끈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청소년 인권법’ 제정을 위해 모인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구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대학무상화-평준화 국민운동본부’ 등 다양한 연대체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처럼 투명가방끈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도 이 사회에서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해 경쟁과 서열화, 차별을 금지하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023년 대학비진학자 가시화주간의 피날레
2023년 대학비진학자 가시화주간의 피날레
<우리들의 실패, 실패자들의 연대>

 

대학비진학자 가시화 주간을 시작합니다

 

투명가방끈은 2022년부터 해마다 수능일까지 일주일간 ‘대학비진학자 가시화 주간’으로 선포하고 있다. 대학비진학자 가시화 주간의 마지막 날인 수능 당일, 2022년에는 대학 비진학자 차별과 입시 경쟁 교육에 반대하는 투명가방끈들의 오픈마이크를 생중계했고, 2023년에는 실패자들을 위한 축제를 주제로 ‘우리들의 실패, 실패자들의 연대 – 절망과 실패의 손을 잡고 춤을 추자’라는 제목으로 작은 축제를 열었다. 이처럼 투명가방끈이 누구보다 수능날에 진심인 이유는 수능일은 사람들을 모두 점수화하여 일렬로 세우는 날이자, 수능을 보지 않는 사람들을 숨죽이게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능일이야말로 투명가방끈이 가장 시끄럽게 놀아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평등하게 누려야 할 인권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사람을 줄 세우기 위해 시험을 보는 날은 얼마나 반인권적인가.

 

투명가방끈은 ‘대학/입시 거부’에서 나아가 ‘대학 가기 실패’, ‘대학 졸업 실패’를 연결고리로 만나는 실패자 연대체를 눈덩이처럼 굴려 점점 더 키우는 꿈을 꾼다. 성공한 사람들이 더 큰 네트워크를 가질 수 있다는데, 취약한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큰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취약한 사람들이 서로 기댈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투명가방끈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고민을 나눌 것이다. 실패한 자리가 가장 반인권적인 자리다. 투명가방끈은 성공하지 않아도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더 많은 실패자들을 만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글 | 연혜원 (투명가방끈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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