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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바로미터 [2024.05~06] 요람에서 무덤까지 제노사이드 당하는 사람들

 

‘지구상에서 가장 박해 받는 소수민족 OOO’ 라는 문구가 있다. 미얀마 서부 라까인 주(Rakhine State)를 본향으로 하는 로힝야 사람들에 대한 유엔의 묘사다. 지난 반 세기 로힝야들이 직면해 온 극심한 차별과 박해, 학살과 축출(혹은 탈출)의 현실은 미얀마의 법과 제도, 공권력을 비롯한 국가기구가 총 동원되어 체계적으로 자행된 국가폭력의 과정이자 결과다. ‘한 커뮤니티 전체 혹은 부분을 말살시키려는 의도(intent)를 지닌 범죄’라는 제노사이드(Genocide) 정의는 로힝야를 겨냥한 국가폭력과 그에 부역해 온 ‘공동체 폭력’(Communal Violence)에 적확하게 부합한다. 필자는 로힝야 사례가 제노사이드 교과서의 중요한 챕터를 채우고 있다고 단언한다.

 

책 「로힝야 제노사이드」
책 「로힝야 제노사이드」

 


 

세계의 시민들이 ‘로힝야’라는 이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건 2016년~2017년 로힝야 대학살 즈음일 것이다. 2017년 8월 25일, 미얀마 군은 로힝야 무장단체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 Arakan Rohingya Salvation Army)이 군경 초소 수십 곳을 공격했다며 기다렸다는 듯 대대적 학살을 감행했다. 작전명 ‘청소작전’(Clearance Operation)하에 마을을 불지르고 여성을 강간했으며 아이들을 불에 던지는 등 살육과 아비규환의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국제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처참한 모습의 탈출 행렬 이미지가 쏟아져 나왔고, 방글라데시 영토에 쓰러지듯 닿은 많은 이들이 학살 현장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그 해만 무려 70만명 넘는 로힝야들이 이웃한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일대로 탈출했고 학살당한 인구는 약 2만여명으로 추산됐다. 그 전년도인 2016년 10월에도 1차 ‘청소작전’이 있었으니 두 번의 학살로 두 해 동안 사지를 탈출하여 방글라데시로 내몰린 난민이 80만명에 이른다. 이미 70년대부터 축출당하고 반 영구적으로 머물던 난민 수를 더해 백만명은 족히 넘는 세계 최대의 난민 캠프가 형성됐다. 2차 대전 이래 가장 심각한 난민 위기 사태로 불렸던 그해 대학살은 로힝야 제노사이드의 마지막 단계 즉 ‘대량살상의 단계’로 악화되었다.

 

뉴욕타임즈 기사
“아라칸 무슬림”(로힝야)들이 벵골지방(당시 ‘동파키스탄, 오늘날 방글라데시)로 3년간 약 25만명 넘어왔다며 파키스탄 정부가 버마에 경고했다는 기사 <뉴욕타임즈> 1951년 12월 20일자 기사.

 

 

제노사이드는 단기간 벌어진 학살 사건이 아니다. 대량살상 마지막 단계가 끝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로힝야 제노사이드가 살상과 절멸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1978년 1차 대축출로 약 20여만명이, 1990년대 초 2차 대축출로 또 다시 20여만명이 방글라데시로 강제이주 당했다. 대축출이 벌어진 뒤엔 어김없이 방글라데시의 난민 송환이 이어졌다. 안전하고, 자발적이며, 존엄한 난민 송환이 아니다. 사실상 ‘강제 송환’이다. 송환된 로힝야들이 다시 박해를 피해 미얀마-방글라데시 국경을 끊임없이 오가고, 이중 다수는 콕스바자르의 슬럼 지대인 ‘미등록 난민캠프’로 흘러 들어간 채 비참한 삶을 이어갔다. 그리고 2016-2017년의 청소작전이 전개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건 미얀마가 송환된 난민들을 대응하기 위해 구축한 ‘제노사이드 인프라’다. 특히 90년대에는 이동의 자유 제약과 결혼 허가제 도입, 그리고 두 아이 초과 출산 금지 등 로힝야만을 겨냥한 제노사이드 정책들이 속속 도입됐다.

 

아르헨티나 출신 저명한 제노사이드 연구자인 다니엘 파이어스타인(Daniel Feierstein)의 제노사이드 6단계론에 따르면 제노사이드 1단계는 타깃 그룹에 대한 낙인찍기(Stigmatisation), 그리고 비인간화(Dehumanization)로 시작된다. 미얀마 대중들의 로힝야를 향한 호명들 예컨대 “벵갈리”(Bengali,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 이주자라는 의미를 담은 호명), “칼라”(Kalah, 피부색이 어두운 인도계 외모의 사람들을 부르는 말. ‘니그로’, ‘깜둥이’ 정도의 경멸적 뉘앙스), “불법 이주민” 등은 낙인 찍기의 언어들이다. 이 같은 용어들이 스스럼없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제노사이드는 특정 그룹에 대한 혐오가 대중화된 사회에서 발생하고, 그런 사회여야 제노사이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5년 미얀마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윈 므라(Win Mra)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로힝야를 ‘이방인’이라 칭한 적이 있다. 미얀마쪽 맥락에서 이는 로힝야의 토착성을 부인한 ‘불법 벵갈리 이민자’의 전형적 표현 중 하나다. 그런가 하면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라까인족 출신 역사학자 에이 찬 교수는 로힝야를 ‘바이러스’에 비유한 적이 있다. 특정 커뮤니티를 “바퀴벌레”나 “바이러스” 등으로 ‘비인간화’ 하는 방식, 전형적인 제노사이드 레토릭 중 하나다. 이 같은 낙인찍기는 곧 로힝야를 철저히 무력화시키는 단계로 이어지고 로힝야들은 고립되고 격리되었다.

 

 

일간지 돈(Dawn) 기사
1978년 나가민 작전 당시 파키스탄 일간지 돈(Dawn) 기사. 마지막 문단에 버마 군이 로힝야 여성의 가슴을 난도질 했다는 묘사가 나온다. (Maung Zarni 제공)

 

제노사이드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시시각각 경고등을 만난다. 로힝야의 경우 2016-2017년 대학살의 전주곡은 2010년대 초 중반 계속됐다. 2012년 라까인주에서 발생한 안티-로힝야 폭력 사태로 로힝야 약 14만명이 시트웨시 외곽으로 축출됐다. 낙인찍기와 무력화 단계를 지나 분리와 격리가 완성된 경우였다. 2013년 필자는 로힝야 취재의 첫 현장으로 이 게토부터 찾았다. 공식적으로는 ‘국내 피란민캠프’(IDPs, Internally Displaced Persons’ Camp)라 불리는 곳이었지만 사실상 수용소나 다름없었다. 경찰의 총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찾아갈 병원이 없었다. 필자가 그곳에서 본 건 피란민 캠프가 아니라 견고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였다. 최근 발행된 필자의 <로힝야 제노사이드>(정한책방, 2024)는 이때의 충격과 영감에서부터 기획된 책이다.

 

부상 입은 로힝야 청년
2013년 8월 9일 미얀마 라까인 주 시트웨 외곽 로힝야 수용소 캠프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부상 입은 로힝야 청년. 부상 당일 경찰이 이동을 허락지 않아 하루가 지난 뒤 이웃들의 ‘트라쇼’(자전거류 이동 수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 이유경 2013

 

부상당한 로힝야 청년
2013년 8월 9일 시트웨 외곽 수용소 캠프에서 경찰 총에 맞아 부상당한 로힝야 청년. 심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전혀 없는 자선단체 설립 ‘클리닉’ 뒷 마당 트럭안에 속수 무책 누워 있다. 사건 당일과 다음날 구호단체들은 치안 불안을 이유로 캠프에 오지 않았다. © 이유경 2013

 

 

익히 알려진대로 로힝야 제노사이드는 군부독재 시대의 개막과 관련이 깊다. 1962년 네윈(Ne Win) 장군의 군사 쿠데타 이전까지만 해도 신생국가 ‘버마 연방(옛 국호)’은 ‘의회 민주주의’에 기반한 나라였다. 1947년 독립하기 1년 전 치뤄진 제헌의회 선거에서는 로힝야 정치인 모하메드 압둘 가파르(M.A.Gaffar)와 술탄 아흐메드(Sultan Ahmed)가 각각 라까인 주 부띠동 타운십과 마웅도 타운십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로힝야 커뮤니티는 신생국 버마의 국가건설 여정에 함께 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늘 로힝야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시민권(국적)부터 박탈당한다. ‘권리를 가질 권리’ 시민권을 박탈당함으로써 출생과 동시에 제도권 밖으로 던져지고 존재감을 삭제당하고 있다. 이어 그들을 옥죄는 차별과 억압, 국가폭력으로 고통이 극대화된 삶을 살다 죽음에 이르는 구조물로 던져진다. 로힝야에게 삶은 곧 ‘슬로우 데쓰’다. 로힝야 제노사이드는 계속되고 있다.

 

1) “Rohingya survivor : The army threw my baby into a fire”, 2017, Aljazeera, 10/13/2017, https://www.aljazeera.com/news/2017/10/13/rohingya-survivor-thearmy-threw-my-baby-into-a-fire (최종접속일 : 2024.4.12)
2) 라까인족은 미얀마 전체로 보면 소수종족이지만 라까인 주에서는 다수 종족이다.
3) U Shw zan and Dr. Aye Chan, 2005, “Influx Viruses. The illegal Muslims in Arakan, Arakanes in United States, 다음의 링크에서 PDF로 다운 로드 가능하다. https://www.burmalibrary.org/docs21/Aye-Chan-2015-08-Influx_Viruses-The_Illegal_Muslims_in_Arakan-en-red.pdf

 

 

글쓴이 이유경은 인권 이슈를 화두로 취재해 온 국제분쟁전문기자로, 최근 「로힝야 제노사이드」를 썼다.

 

글 | 이유경(국제분쟁전문기자, <로힝야 제노사이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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