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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보기 [2024.01~02] #3 무기로는 평화도 풍요도 얻을 수 없다

 

전쟁은 무기박람회에서 시작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국제 무기거래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2012~2016년 1.0%에서 2017~2021년 2.8%로 증가했다. 5년간 무려 177%의 증가율로 상위 25개 무기 수출국 중 가장 빠른 성장세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8위 무기 수출국 위치에 올랐다. 윤석열 정부의 목표는 2027년까지 세계 4대 무기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ADEX 2023 전시장 앞에서 전쟁과 기후위기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활동가들
ADEX 2023 전시장 앞에서 전쟁과 기후위기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활동가들

 

 

무섭게 성장하는 한국의 무기산업

 

한국 무기 수출액 추이
한국 무기 수출액 추이 (수주 기준) (단위: 억 달러) (자료: 국방부, 방위사업청)

 

한국의 무기 수출액은 최근 10년간 연간 30억 달러 근처에 머물다가 2021년 73억 달러, 2022년 173억 달러, 2023년 130~140억 달러(2023년 12월 20일 국방부 집계)로 급증했다. 과거 아시아와 북미 중심이던 한국 무기산업의 수출 시장은 중동, 유럽, 중남미,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수출 품목도 과거의 탄약, 함정 중심에서 전투기, 자주포, 전차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거대한 비극도 무기산업에는 호재다. 올해 산업연구원이 낸 보고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 같은 신흥 무기 수출국에게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표현했다.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방침이 무색하게, 한국은 이 기회를 적극 활용 중이다. 한국이 미국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우회 공급한 155mm 포탄의 수가 유럽 전체가 공급한 것보다 많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크라이나에 대량의 무기를 지원한 폴란드도 한국산 무기로 빈 무기고를 채우고 있다. 2022년 173억 달러 수출 중 폴란드 수출이 124억 달러를 차지할 정도다. 한국에서 생산하고 수출한 무기들은 예멘, 시리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무력분쟁 중이거나 인권 유린을 자행하는 국가들에서 사용되었다. 한국은 지난 10월 격화된 이스라엘-가자 지구 분쟁의 당사자인 이스라엘에도 계속해서 무기를 수출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월 “일부 사람들이 방위산업, 무기산업을 전쟁산업이라고 보고 산업 발전에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해왔다”며 “방위산업은 국제질서를 존중하는 우방국과 그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산업”이라고 주장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각국이 ‘전쟁부’를 ‘국방부’로 바꿔 부른 것처럼 ‘방위산업’은 전쟁산업, 무기산업의 어두운 면을 애써 가리려는 완곡어법에 불과하다.

 

무기산업이 죽음과 고통에 기생해 성장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더 많은 전쟁과 무력분쟁, 인권침해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평화산업’이라는 명칭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다른 나라 사람을 죽여 자국민을 지키는 것을 ‘평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무기산업이 전쟁과 무력분쟁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지만, 이미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무기거래는 무력분쟁의 발발 가능성을 현저히 높인다는 실증적 근거가 있다.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무기 회사, 특히 확산탄(집속탄), 대인지뢰 같은 비인도 무기 생산 기업들을 투자 배제 리스트에 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무기산업은 담배, 도박 산업과 함께 대표적인 죄악산업으로 여겨진다. 전쟁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지고, 전쟁수혜 활동이 정상적인 사업 활동으로 인정받는 한 전쟁은 사라질 수 없다. 무기를 사고파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인식이 당연시 될 때 전쟁은 비로소 끝날 것이다.

 

 

무기로 안보를 지키고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ADEX 2023 전시장 앞에 세워진 ‘대안 전시회’
ADEX 2023 전시장 앞에 세워진 ‘대안 전시회’

 

무기산업이 자국민과 우방국 국민의 안보에는 도움이 될까? 수출은 차치하더라도 한반도의 특수한 안보 상황에서 평화를 지키려면 무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윤석열 정부는 국방정책 기조로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우고 있다. 상대의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가 아닌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로 안보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9.11 테러와 최근의 이스라엘-가자 지구 분쟁에서 보았듯이 압도적인 힘으로는 평화를 만들지 못한다. 한국의 국방 지출은 2022년 기준 464억 달러로 세계 9위다.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총 GDP보다도 훨씬 많은 금액을 국방비로 지출해왔다. 한국이 재래식 전력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으니 북한도 핵무기, 미사일 같은 비대칭 전력 개발에 몰두하는 안보 딜레마가 초래된다.

 

사드(THAAD)와 F-35 등 한국이 큰돈을 들여 사들이는 첨단 무기체계는 더 공격적인 대북 정책을 부추길 뿐이다. 더 많은 무기는 효과적인 억지력이 아니며, 갈등 심화의 원인이 된다. 군비 경쟁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길은 선제적 위협감소 조치를 통한 상호 군축이다. 내가 먼저 선의의 본보기를 보일 때 상대의 선의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무기산업은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미래 먹거리 산업’ 내지 ‘신성장 동력’이라 불리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방 지출을 “비용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산업 발전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국방의 의미가 자산으로 바뀐다”며 “방위산업에 대한 투자가 우리 국내총생산(GDP)를 늘리고, 성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으로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방 지출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무기는 살상과 파괴가 유일한 목적인 상품이고, 무기를 사는 데 쓰이는 돈은 편익 없는 비용이다. 국방과 무기산업에 투자할 돈을 재생에너지와 친환경 사업에 투자해도 성장과 일자리는 창출할 수 있다. 전쟁 준비에 투자되는 돈은 불평등과 기후위기처럼 전쟁의 더 근본적인 원인들을 해결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ADEX 2021에 전시된 K2 전차에 올라가 무기산업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든 활동가들
ADEX 2021에 전시된 K2 전차에 올라가 무기산업에 반대하는 현수막을 든 활동가들

 

무기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무기박람회다. 한국에서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대한민국 방위산업전(DX KOREA),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국제치안산업대전(KPEX) 등 다양한 무기박람회가 정기적으로 열린다. 여기서 육해공 군사무기와 경찰무기가 일반 시민들에게 ‘멋진’ 볼거리로 둔갑된다. 더 큰 문제는 단순히 전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기박람회를 통해 세계에서 온 무기상인과 각국 군 관계자들은 서로 만나 수출 상담을 하고 실제 계약을 맺는다. ADEX 2023은 1,900건 이상의 비즈니스 미팅을 유치했고, 총 294억 달러의 수주 상담과 60억 달러의 현장 계약 실적을 기록했다.

 

한화, LIG넥스원, 록히드 마틴, RTX 등 많은 ADEX 참가 기업이 금세기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라 불리는 예멘 내전에 깊이 개입된 사우디와 UAE에 무기를 수출한다. 라파엘, 엘빗 시스템즈 등의 이스라엘 무기 회사는 팔레스타인 점령 지역에서 사용되는 무기를 팔아 수익을 올린다. 이를 “전장에서 검증된” 제품이라 강조하고 마케팅을 하기도 한다. 구매자도 문제다. 무기박람회에는 각국 군대의 무기 획득 권한을 가지고 있는 국방부장관 및 군 수뇌부, 방위사업청장급 인사들이 ‘VIP’로 참여한다. DX KOREA 2022에는 37개 대표단이 ‘VIP’로 초청됐다. 이중 14개 대표단이 사우디, 인도네시아 등 전쟁이나 무력분쟁에 개입된 국가고, 9개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국가다.

 

전쟁은 남의 나라에서 어느 한 순간 일어나지 않는다. 그 전쟁에 공급되는 무기가 만들어지고 거래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무기산업이 국제화된 오늘날 무기거래 없이 전쟁은 일어날 수 없고, 무기거래를 막으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영국 무기거래 반대 캠페인(CAAT)이 2021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된 사실은 이 운동이 가진 영향력과 잠재력을 보여준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2013년부터 ‘아덱스저항행동’이라는 연대체를 조직해 2년에 한 번 열리는 무기박람회 ADEX에 반대하는 활동을 해왔다. 올해(2024년)부터는 ‘무기박람회 저항운동’이라는 상설 연대체를 만들어 더 많은 활동을 하려 한다. 전쟁과 무기거래를 부추기는 무기박람회에 저항하는 것은 무기 수출 국가의 시민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글쓴이 쥬는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의 무기박람회 저항 캠페인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글 | 쥬(전쟁없는세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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