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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보기 [2024.01~02] #2 언론은 전쟁으로 장사하고 있지 않나요?

 

 

10월 7일 하마스에 의한 이스라엘 남부 공격 이래 팔레스타인 문제는 전 세계 언론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됐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언론들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며 전쟁 스펙터클을 반복적으로 전시했고, 이스라엘과 미국 당국 발표와 SNS에 떠도는 주장을 검증 없이 보도했다. 이런 미디어 환경 속에서 대중은 관전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단편적인 사실을 둘러싼 즉각적인 반응들은 언론의 트래픽 장사의 동인이 되고, 역사적 원인에 대한 분석과 해설은 희생된다. 그러는 사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가짜뉴스들이 SNS와 언론에 확산됐다.

 

 

가짜뉴스의 무분별한 유포

 

가장 뜨거운 뉴스는 하마스 군대가 이스라엘 어린이들까지 참수했다는 헤드라인과 함께 유포됐다. 첫 발신지는 이스라엘 TV채널인 i24NEWS가 희생자의 시신을 수습한 군인들의 말을 인용한 보도였다. 이스라엘 남부에서 발생한 약 1000명의 사망자 가운데 약 40명의 어린이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끔찍하고 슬픈 일이다. 지난 3개월 간 죽은 팔레스타인 어린이 1만여 명의 죽음 만큼이나 말이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뉴스의 확산은 서구의 주류 언론들에 의해 반복됐다.

 

미국에서 가장 선정적인 TV채널 폭스뉴스는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이 아기들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미국 내 유일한 팔레스타인계 정치인 라시다 틀라이브에게 ‘테러리스트들이 아기들의 머리를 자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추궁했다. 하지만 뒤이은 다른 보도들에 따르면, 이런 주장에는 정확한 근거가 드러나지 않았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니르 디나르는 <비즈니스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시신 상태를 조사하지 않을 것이며, 조사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참수 사실 확인은) 죽은 자에 대한 무례한 행동이기 때문에”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탐사보도 전문지 <인터셉트>와의 인터뷰에서 디나르 대변인은 “어떤 군인 한 명이 기자들에게 ‘내가 봤다’고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 이스라엘군은 이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영국 <가디언>의 이스라엘 특파원 베단 맥커넌은 자신의 계정에 이렇게 말했다. “오늘 신문을 보니 ‘하마스에 의해 40명의 아기가 참수당했다’는 헤드라인으로 장식됐는데,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물론 많은 아이들이 살해당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확인되지 않았고 완전히 무책임한 것이다.” 뉴욕타임스 기자 셰라 프렌켈 역시 자신의 소셜미디어에서 “기자들이 이러한 주장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출처를 확인한 후 다른 방법으로 확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의 보복’

 

만인의 관심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야만:문명의 구도로 사태를 전달하는 사이 76년 동안 지속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불법적인 군사 점령과 식민 지배는 은폐됐다. 이스라엘군은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붕 없는 강제수용소’ 가자지구를 향한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요아브 갈란트는 “우리는 인간 동물들과 싸우고 있다”고 발언했고, 10만 명의 지상군을 가자지구에 투입했다. 안 그래도 240만 인구의 80퍼센트가 원조에 의존하던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에 완전히 봉쇄됐고, “피의 보복” 앞에 파괴됐다. 언론의 검증 없는 보도는 이 ‘피의 보복’에 기회를 줬다. 지금도 가자 지구에서는 매일 200여 명의 주민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우리 언론들은 주로 영·미 언론의 주장을 받아쓰며 “팔레스타인인의 사망은 하마스의 ‘인간방패’ 전략 탓”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전개된 상황을 보면, 이는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난 3개월간 이스라엘군은 병원과 학교마저 아랑곳하지 않고 폭격을 가했다. 2024년 1월 3일을 기준으로 했을 때 가자 지구에서 사망하거나 건물 잔해에 파묻힌 실종자는 이미 3만 명을 초과했는데, 이 중 절반은 어린이들이다.

 

지난 12월 23일 미국의 온라인 탐사보도 매체 <인터셉트>는 이스라엘 정부의 ‘가자학살 보도 언론 검열지침 문건’을 폭로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발행한 이 문건은 이스라엘군이 사용하는 무기, 하마스에 인질로 잡힌 사람들, 이스라엘군의 로켓 공격과 사이버 공격 등 8가지 주제에 대한 보도를 금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작전 ‘철의 검’ : 이스라엘 언론에 대한 최고검열담당 지시」라는 제목의 이 명령서에는 날짜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현재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에서 벌이고 있는 군사 작전명이 명시돼 있는 것으로 볼 때, 10월 7일 이후 발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 정부의 언론 검열은 노골적인 사실로 보인다.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의 가이 루리 연구원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된 이후 6,500개 이상의 언론 보도가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완전히 검열되거나 부분적으로 검열됐다. 이 수치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보다 약 4배 증가한 것이다. 물론 이는 자발적인 자기 검열을 제외한 숫자다. 권력에 의한 검열과 보도 통제가 심화되면 기자들은 스스로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이스라엘 진보 언론 <+972매거진>의 전임 편집장 마이클 오메르만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일은 이스라엘의 일반인에게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 11월 23일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의 통신부 장관은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하레츠>가 “반애국적”이라면서, 폐간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극우 정부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살해한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2022년 5월 아랍권에서 가장 인기있는 저널리스트 시린 아부 아클레는 서안 지구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저격됐다. 미국의 비영리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전쟁 이전에 그녀처럼 살해된 기자는 최소 30명이었다. 2023년 11월 22일 국경없는기자회(RSF)는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군에 의해 가자 지구에서 총 48명의 언론인들이 살해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현지의 이런 끔찍한 조건은 왜곡되고 편향된 뉴스를 서방 언론에 전달하고, 우리 언론은 다시 서방 언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쓴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지극히 통제된 보도, 일방적인 주장만 전달되는 것이다.

 

 

전쟁과 미디어

 

전쟁에는 그것을 알리고 이를 해석하는 미디어가 언제나 존재해왔다. 한데 인터넷 등 기술 발전은 전쟁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고, 전쟁 전개 과정에서 미디어의 위력은 달라졌다. 가령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위력적인 보도망을 갖춘 미국 CNN은 1991년 걸프전쟁에서 위성통신을 활용해 전쟁 이미지를 전달하면서 성장했다. 전쟁을 미디어로 접한 대중은 마치 게임 화면을 보듯이 폭격 장면을 시청하고, 전쟁의 참혹상에 대한 거리감을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일상적인 현실에서 200여 명의 동료 시민들이 죽는 참사는 매우 충격적이지만, 지금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매일 200명씩 죽는 최악의 참사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국제분쟁 상황에서의 언론 보도는 각국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동시에 정치인들은 미디어를 통해 전쟁에 대한 여론을 독해한다.

 

2003년 당시 미디어에 비춰진 이라크 전쟁은 두 개였다. 하나는 서구 미디어에 보도된, 정의롭고 정당한 침공(?)의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랍권의 방송에 나타난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학살 전쟁의 모습이었다. 이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언론 보도를 접하냐에 따라 전쟁은 스펙타클한 게임이 되기도 하고, 혹은 끔찍한 제노사이드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어떤 서사를 따라가도 폭력은 2023년 10월 7일에 시작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76년간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지속적으로 공격해왔다. 이스라엘 점령 당국이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을 학살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바꾸는 오도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 학살을 자국의 방어권 행사라 주장하지만, 유엔과 국제법에 따르면 점령국가가 자신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 주민을 상대로 벌이는 전쟁은 방어권의 영역이 아니다. 이 점은 이미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가 이스라엘에 대해 판시한 내용이기도 하다.

 

 

글쓴이 홍명교는 플랫폼C 동아시아팀에서 활동하면서 언론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사라진 나의 중국 친구에게」 등을 썼다.

 

글 | 홍명교(시민운동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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