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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톺아보기 [2024.01~02] 분쟁지역과 우리는 어떻게 연결돼 있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건설된 콘크리트 장벽_사진 출처 : 한톨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건설된 콘크리트 장벽_사진 출처 : 한톨

 

18년의 기억 속, 점령이 없는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던 2차 인티파다1가 끝나가는 2005년 12월, 팔레스타인을 처음 방문한 필자에게 현지 사람들은 매번 같은 걸 물어본다.

 

현지 사람 : “어디에서 왔어?”
나 : “한국에서 왔어”
현지 사람 : “남한이야 북한이야?”
나 : “남한이야. (계속되는 질문에 궁금하여), 북한사람 만난 적 있어? 왜 자꾸 북한인지 남한인지가 궁금해?”
현지 사람 : 남한 정부와 사람들은 미국 말만 듣잖아. 미국은 이스라엘 편만 들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수십 년째 점령하고 있어, 그리고 우리는 저항하고 있지. 이 곳(팔레스타인)에 남한 사람이 온 게 신기해. 그리고 네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여기에서 보고 들은 걸 (한국)사람들에게 알려줬으면 해.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것도 꼭 이야기해줘”

 

 

이스라엘 군이 마을을 공격하면 일반인들은 속수 무책

 

약 10년의 시간이 흐른 2014년 6월, 다시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다. 첫 방문 이후 1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팔레스타인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10년 전 왕래가 가능했던 가자지구는 2007년 이후 완전히 막혀 있었고, 이미 2008년과 2012년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으로 많은 피해가 누적된 상황이었다. 팔레스타인의 또다른 지역인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 역시 지속적으로 건설되는 이스라엘 정착촌과 높이 10미터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인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 계속 축소되고 위협받고 있었다.

 

2014년 6월

재방문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은 자국의 10대 3명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살해된 사건을 빌미로 또다시 가자지구를 폭격하고 서안지구를 공격했다. 세상은 이 군사공격을 3차 가자전쟁이라 명명했다. 당시 2개월동안 서안지구에 머무르며 현지 상황을 기록하며 힘이 닿는 만큼 국내에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소식과 직접 경험한 현실은 큰 차이가 있었다. 가자지구는 육지, 바다, 하늘까지 온통 막혀 있어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할 방법이 없었고,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역시 이스라엘 군이 도로를 막고 이동을 통제하여 외부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나마 마을과 마을 정도만 옮겨 다닐 수 있었고, 이스라엘 군이 마을을 공격하면 소수의 무장세력만 교전하고 일반인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언론은 이 현실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라 부르며 이스라엘에 의해 수십 년째 지속된 ‘군사점령’이라는 가장 중요한 본질을 다루지 않았다. 결국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에 진격하여 2천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후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휴전에 합의했다. 세상은 휴전을 반겼지만 점령은 계속됐다.

 

2022년 10월

2022년 10월, 다시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다. 2020년부터 국내 가톨릭 재단의 후원을 받아 3년간 현지 여성활동가 육성에 힘썼던 아디의 ‘팔레스타인 여성지원센터’ 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기에 마지막 행사인 졸업식에 참여하고, 현지 여성활동가들을 인터뷰하고자 했다.

 

콘크리트 장벽 너머로 건설되고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과 건물들, 사진출처: 한톨
콘크리트 장벽 너머로 건설되고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과 건물들, 사진출처: 한톨

 

하지만 팔레스타인 방문 이틀만에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도시를 봉쇄했고, 주요 마을에서 군사작전을 벌였다. 사람들은 마을 밖으로 움직일 수 없었고,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마을에선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다. 상황을 파악하고자 주변 마을로 이동하던 중 도로 한복판에 커다란 흙더미를 발견하고 잠시 차에서 내렸는데 근처에 있던 이스라엘 군이 최루탄을 발포하여 황급히 도망치기도 했다. 도저히 졸업식과 인터뷰를 진행할 상황이 아니었다. 부득이하게 모든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이스라엘의 도시봉쇄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빠져나와 귀국했다. 2022년은 2차 인티파다 이후 서안지구에서 가장 강도 높은 봉쇄와 군사작전이 있었고 그로 인해 사상자가 가장 많았던 해라고 유엔은 밝혔다. 적어도 2023년 10월 7일 이전까지는 그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동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 군대가 도로에 쏟아놓은 흙무더기, 사진출처_아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동을 막기 위해 이스라엘 군대가 도로에 쏟아놓은 흙무더기, 사진출처_아디

 

10월 7일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올리브농장에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10월 7일 이스라엘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올리브농장에 불을 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10월

지난 2023년 10월 7일, 그날은 ‘팔레스타인 평화여행2’ 4일차로 필자와 여행참가자들이 서안지구 올리브 수확에 참여한 날이다. 올리브 농장으로 향하던 길에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가는 당일 새벽 하마스의 기습공격 소식을 전하면서, 이스라엘의 장벽이 무너졌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필자는 올리브 수확 중에 이스라엘 정착촌 인근 팔레스타인 소유의 또다른 올리브 농장에서 시커먼 연기와 함께 거대한 화재를 목격했다. 함께 일하던 팔레스타인 농장주인은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들이 당일 새벽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보복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소유의 올리브나무에 기름을 부어 불을 지른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번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이스라엘 피해가 큰 만큼 이스라엘 정착촌민의 폭력도 훨씬 거세질 거라고 예상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무장한 이스라엘 정착촌민은 나블루스 인근 후와라(Huwarah) 마을에 난입하여 팔레스타인 10대 소년을 살해했다. 다시 급히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대해 전세계는 경악했고 한 목소리로 하마스를 비난했다. 소속된 단체 역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과 납치는 동의할 수 없으며 용납할 수 없는 행위임을 밝혔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급진 무장세력인 IS 또는 짐승으로 비유하며 지구상에서 절멸시키겠다고 공언했다.

 

 

75년동안 지속된 팔레스타인 조각난 평화

 

그 결과, 12월 27일 기준3 2만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사망했고 5만 5천명이 부상당했다. 실종자가 7천명을 넘었고 이 중 다수가 건물의 잔해에 깔려 있다고 현지 언론은 밝혔다. 사망자 중 아동과 여성의 비율이 70%에 이른다는 팔레스타인 보건부의 발표는 이스라엘 공격대상에 하마스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간인도 포함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이스라엘은 지금도 잔혹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집단학살적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현재

팔레스타인에 첫 발을 내딛었던 18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기억 속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은 늘 군사점령과 함께였다. 그들의 일상은 이스라엘 군인들과 무장한 정착촌민에 의해 차별받았고 통제당했다. 현실은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절망 같은 감옥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10월 7일 이스라엘이 공격받고 이스라엘의 평화가 깨지자 경악하며 한 목소리로 평화와 안보를 위한 전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반면 10월 7일 훨씬 이전인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75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한 1948년부터 지금까지 75년동안 지속된 팔레스타인의 조각난 평화와 안보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무관심했다. 한국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18년 전 이스라엘과 미국편에만 서는 한국 정부를 지적했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생각은 안타깝지만 현재도 대체로 정확하다. 압도적인 비대칭적 피해가 이어짐에도 여전히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라며 피해를 중화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언론의 태도 또한 여전하다. 그럼에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늘었고 이제 이들의 관심은 다른 지점으로 이동해야 한다. 2021년, 팔레스타인에서 만났던 21세 현지 여성은 “이스라엘의 점령은 감옥과 같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가두는 감옥 말입니다. 언젠가는 제가 살고 있는 이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와 책임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했다. 이제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이스라엘 분리장벽에 쓰여진 낙서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사진출처_한톨
이스라엘 분리장벽에 쓰여진 낙서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사진출처_한톨

 

1) 인티파다(Intifada)는 아랍어로 ‘민중봉기’라는 뜻으로 2차 인티파다는 이스라엘 전 총리 아리엘 샤론이 이슬람의 성지인 ‘알 아크사 모스크’ 방문을 계기로 촉발됐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발생했다.
2) ‘팔레스타인 평화여행’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분쟁의 실상을 경험하고 평화와 연대를 강구하기 위해 2018년부터 사단법인 아디에서 추진중인 여행 프로그램이다. 주로 팔레스타인 마을과 단체를 방문하여 현지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일상을 경청하고 교류함을 목적으로 한다.
3) 12월 27일 알자지라 뉴스 기사, https://www.aljazeera.com/news/liveblog/2023/12/27/israel-hamas-war-live-israel-vows-to-intensify-gaza-fighting

 

글쓴이 이동화 활동가는 사단법인 아디의 창립 멤버로 현재 상근이사로 재직 중이며 아디에서 팔레스타인 현지사업과 미얀마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글 | 이동화(사단법인 아디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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