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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깊이읽기 [2022.11] ‘장애인 탈시설화’ 난제, 다른 나라는 어떻게 풀어냈나?

글 오욱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2020년에 발표된 보고서에 의하면 유럽연합(EU) 회원국 중에서 30인 이상 규모의 장애인 거주시설을 운영하지 않는 국가는 스웨덴이 유일하다.1) 그만큼 장애인 탈시설화는 정책 난제이다. 물론 많은 국가에서 장애인 탈시설화는 현재 진행형이라는 의미도 된다. 2021년에서야 장애인 탈시설화의 국가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탈시설 장애인을 지원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한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보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간 국가들의 경험은 시작 단계인 한국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장애인 탈시설화의 길을 우리보다 앞서 걸어간 미국, 영국, 캐나다, 스웨덴, 일본의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2011년 6월 20일. 옴스테드 판결 12주년을 맞아 사건 피해 당사자인 로이스 커티스(Lois Curtis, 가운데)가 오바마 대통령(오른쪽)을 만나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선물로 주고 있다.(출처:백악관)
2011년 6월 20일. 옴스테드 판결 12주년을 맞아 사건 피해 당사자인 로이스 커티스(Lois Curtis, 가운데)가 오바마 대통령(오른쪽)을 만나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선물로 주고 있다.(출처:백악관)


 

국가의 주도적 역할이 핵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장애인 탈시설화는 자립생활 이념을 추구하는 장애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요구를 국가가 적극 수용하지 않는다면 정책 실현은 힘들다. 미국, 캐나다, 스웨덴과 같이 적극적으로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진 사례에서 국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다만 핵심 역할을 한 주체는 달랐다.

 

미국은 사법부의 역할이 중요했다. 대표적으로 1999년 연방대법원의 ‘옴스테드 판결’은 시설 보호를 장애차별로 본 기념비적인 판결로 알려져 있다. 연방대법원의 판결 이후 행정부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대한 지원을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장애인 거주시설이 점차 축소되면서 16인 이상의 주립 장애인 거주시설은 2025년이면 소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2)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행정부가 앞장서서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이끌었다. 온타리오 주정부는 1977년 처음으로 발달장애인 지역사회 생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계획에 따라 시설 거주인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시설을 폐쇄해갔다. 주정부의 실행계획은 1982년, 1987년, 1996년, 2004년에도 발표되었다. 이러한 활동은 2009년 마지막 남은 주립 거주시설 3개를 폐쇄하고서야 마무리되었으며, 현재 온타리오주에는 장애인 거주시설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스웨덴에서는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이 핵심 역할을 했다. 대표적으로 1985년 제정된 「발달장애인 특별돌봄법」은 매우 강력한 조치를 담고 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서비스 형태는 본인의 선택만으로 결정하도록 하였고, 거주시설은 법적 보호 수단에서 제외하였다. 이에 따라 신규 입소와 신규 시설 설치가 금지되었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는 거주시설 폐쇄 계획을 수립하여 중앙정부에 제출해야 했다. 이후 거주시설은 급속히 축소되었는데, 스웨덴 의회는 1997년 「시설폐쇄법」을 제정한다. 이 법에 따라 모든 장애인 거주시설은 1999년 말까지 폐쇄되었다.

 

 

거주시설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은 필요조건

 

유엔(UN)을 비롯하여 많은 국제 인권기구와 장애인단체에서 탈시설화 핵심 요건으로 거주시설의 폐쇄를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캐나다, 스웨덴과 같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가들은 그러한 권고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미국은 사법부가 불법화한 거주시설에 대해 행정부가 재정 지원을 중단하고 폐쇄 및 용도 전환을 추진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행정부가 구체적인 거주시설 폐쇄 계획을 지속적으로 발표했고, 스웨덴은 법률로 지방정부가 거주시설 폐쇄를 이행하도록 강제했다.

 

거주시설을 폐쇄하는 것보다는 시설을 유지한 채 장애인의 지역사회 생활을 유도하는 정책을 제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행 국가들의 경험은 이러한 전략이 그리 성공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영국과 일본이 대표적이다. 영국은 정신병원에 대한 폐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거주시설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현재 영국에는 장애인 거주시설이 비교적 큰 규모로 남아있다. 일본 역시 거주시설 폐쇄나 신규 입소 금지와 같은 조치는 제외하고 지역사회 거주 전환을 지원하는 유도 전략을 채택했다. 정책을 추진한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시설 거주 장애인의 규모가 축소되는 속도는 매우 느리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휴로니아 지역센터’(Huronia Regional Centre, 1876~2009)의 1950년대 모습.<br>휴로니아 지역센터는 온타리오주 최초의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이자 마지막으로 폐쇄된 시설이며, 거주인이 가장 많았을 때는 2,600명에 달할 정도로 초대형 시설이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휴로니아 지역센터’(Huronia Regional Centre, 1876~2009)의 1950년대 모습.
휴로니아 지역센터는 온타리오주 최초의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이자 마지막으로 폐쇄된 시설이며, 거주인이 가장 많았을 때는 2,600명에 달할 정도로 초대형 시설이었다.

 

거주시설 축소와 지역사회 서비스 확충의 균형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에서 거주시설 폐쇄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서비스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한 국가들 역시 이러한 점에 주목했다.

 

캐나나 온타리오주는 모범적인 사례이다. 온타리오 주정부는 1977년 최초의 장애인 탈시설화 계획을 발표하기에 앞서, 1974년 「발달서비스법」을 제정했다. ‘발달서비스’는 시설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이주할 때 필요한 주거, 돌봄 등의 지원을 하나로 묶은 패키지 서비스이다. 미국도 2005년부터 시설을 퇴소한 노인·장애인에게 필요한 비용을 1년간 지원하는 ‘돈이 사람을 따라간다’3)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스웨덴은 특별히 탈시설 장애인에게 한정된 지원은 아니지만 1993년 제정한 「특정장애인지원법」에 따라 지역사회 장애인 서비스를 10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사회 서비스가 충분하지 못하면 정책 추진의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영국은 1988년부터 중앙정부가 ‘자립생활기금’에 의해 탈시설 장애인을 지원했지만 2015년 이를 폐지했다. ‘개인예산제’로 대표되는 커뮤니티케어 정책만으로 장애인 탈시설화가 달성되지는 않았다. 일본 역시 2012년부터 거주시설 퇴소 장애인을 위한 단계적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지원 규모가 수백 명에 그친다.4)

 

 

스웨덴 스톡홀름시 장애인 그룹홈의 공용공간 모습.<br>스웨덴에서는 지자체별로 장애인 주거지원(그룹홈, 서비스홈)에 대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시 장애인 그룹홈의 공용공간 모습.
스웨덴에서는 지자체별로 장애인 주거지원(그룹홈, 서비스홈)에 대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대안적 주거 지원의 재시설화 경계해야

 

거주시설을 폐쇄하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정착하는 것을 지원하려면 대안이 되는 주거 지원이 필요하다. 서구 국가들이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할 때 마련한 주된 대안은 ‘그룹홈’이었다. 지원인력이 상주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거주하면서 필요한 지원을 선택할 수 있는 ‘지원주택’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그룹홈은 운영 방식에 따라 소규모 거주시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그룹홈은 점차 대규모화되어 평균적으로 15명이 함께 거주하고 있고,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그룹홈 또한 시설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많은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는 장애인 그룹홈이 유엔(UN) 장애인권리협약에 따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스웨덴의 장애인 그룹홈은 개인의 사생활과 선택권이 보장되고 개별화된 지원이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스웨덴의 그룹홈은 3~5인의 장애인이 하나의 주택에 거주한다. 하지만 침실, 거실, 부엌 등 개인의 독립 공간이 확보되어 있으며, 거주인의 허락 없이 타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장애인, 노인 등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주택과 인접하지 않도록 설치해야 한다는 원칙도 갖고 있다.

 

 

갈등 없는 정책 전환은 불가능

 

지금까지 소개한 국가들은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갈등에 직면했다. 정치권 내의 갈등, 장애인단체와 시설 거주인 가족 간의 갈등, 정부와 거주시설 종사자 간의 갈등, 지역 주민들의 반발 등 그 양상도 다양했다. 그러나 정부가 갈등을 주도적으로 해소하려는 노력에 따라 그 성과도 달라졌다. 과거와 달리 유엔(UN) 장애인권리협약과 같은 국제 인권기준을 무기로 활용할 수 있는 지금은 정부의 갈등 해소 역할이 더욱 기대된다.

 

여기에 소개된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 추진 사례가 현재의 국제 인권기준에 모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 탈시설화에 대한 국제 인권기준이 제시되기 훨씬 전인 1970년대부터 이러한 정책들이 추진되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의 시행착오가 현재의 국제 인권기준을 확립하게 된 토대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한국의 입장에서 이들 국가의 과거 경험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오욱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인인권전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장애소득보장, 장애와 노동, 장애 정의와 판정, 장애차별과 인권법제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1) Šiška, J., & Beadle-Brown, J. (2020). The transition from institutional care to community-based services in 27 EU member states: Final report. Research report for the European Expert Group on Transition from Institutional to Community-based Care. European Commission.
2) Larson, S. A., Eschenbacher, H. J., Taylor, B., Pettingell, S., Sowers, M., & Bourne, M. L. (2020). In-home and residential long-term supports and services for persons with intellectual or developmental disabilities: Status and trends through 2017. Minneapolis: University of Minnesota, Research and Training Center on Community Living, Institute on Community Integration.
3) Money Follows the Person(MFP). 거주시설 퇴소자가 지역사회로 이동할 때 시설에 투입된 재정이 개인을 따라간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인 프로그램이다.
4) 일본의 지원은 탈시설 준비기의 ‘지역이행지원’, 지역사회 초기 정착기의 ‘자립생활원조’, 지역사회 중장기 정착기의 ‘지역정착지원’의 3단계 지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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