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가 말한다 [2021.06] ② 임신한 청소년도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글 최혜령(국가인권위원회 성차별시정팀장)
벌써 12년 전의 일이 되었다. 2009년 4월 말 ○○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A학생이 임신하였고, 이를 알게 된 학교 측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자퇴했으나 학업을 계속하고 싶다며 A학생이 어머니와 함께 인권위를 찾아와 진정하였다. A학생은 자퇴를 하지 않더라도 ‘불미스런 행동으로 학교의 명예를 훼손한 학생 또는 불건전한 이성교제로 풍기를 문란하게 한 학생’에 대해서는 퇴학 조치 할 수 있도록 정한 ○○여고의 생활규정에 따라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처지였다. 무엇보다 출석 일수 미달로 유급되지 않도록 조사를 서둘러야 했다. 학교 측의 입장은 완강했다. 학교로 가서 학교장 등을 조사하였는데, 학교운영위원장, 학부모 임원 등 10여 명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교장실로 들어와 “풍기문란한 학생이 스스로 자퇴한 것인데, 뭐가 문제라고 조사하는 거냐”, “학생이 임신한 게 잘했다는 거냐”며 거세게 항의하였고, 학교장은 ○○여고의 ‘순결하고 유구한 역사’를 강조하며 A학생의 복교를 반대하는 지역주민의 서명용지 꾸러미를 보여주었다.
인권위 조사결과 ○○여고는 임신했다는 이유로 A학생에게 자퇴를 강요한 사실을 인정하고, 이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임신을 이유로 한 교육시설 이용 차별이라 판단하고, 해당 학교장에게 A학생을 재입학시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할 것, 해당 교육청 교육감에게 재학 중 임신한 학생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여 시행할 것 등을 권고했다. 이후 학교가 인권위 권고를 수용하여 A학생은 학적을 회복하고 그해 12월 출산한 후 다음 해 학교를 졸업했다.
학습권은 삶의 질을 위한 기본권
인권위는 이 사건 조사과정에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임신·출산을 이유로 학교로부터 자퇴, 전학, 휴학을 강요받거나, 학교의 징계가 두려워 스스로 학교를 떠나고 있는 현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청소년 미혼모[1] 학습권 보장을 위한 정책검토를 통해 청소년 미혼모가 차별 없이 자신의 능력과 적성, 처한 여건에 따라 교육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형태를 마련할 것, 청소년 미혼모에게 낙인을 찍는 교육 방식을 지양하고 청소년 미혼모를 대상으로 한 별도의 대안학교 설립 등의 분리하여 교육하는 방식보다는 통합교육 형태를 지향할 것, 학교에서 임신이나 출산을 이유로 자퇴나 휴학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관련 규정을 마련할 것, 청소년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방안을 동시에 마련할 것을 정책의 기본원칙으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여성가족부장관, 보건복지부장관 및 각 시도교육청 교육감에게 청소년 미혼모를 위한 다양한 방식의 학습기회 및 학업유지를 위한 방안, 청소년 미혼모가 양육을 선택한 경우 실질적으로 학업을 지속하도록 지원하는 방안, 청소년 미혼모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의 효율적인 전달 방안, 청소년의 임신과 재임신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 마련 등을 권고하였다.
「아동권리협약」은 아동 및 청소년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사회의 성원이 될 동등한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특히 발달 과정 중에 있는 아동 및 청소년에게 학습권은 전면적인 발달을 보장함으로써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권리로, 국가는 이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청소년기의 임신 및 출산으로 인한 학업 중단은 대학 진학률이 89.1%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적절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여 일생을 통해 실업상태나 잠재적 실업에 놓일 가능성이 높아 장기적인 빈곤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실제로 청소년 미혼모 문제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대두된 미국의 경우를 보면 2002년 15~17세 사이의 십대 미혼모 가운데 10%만이 고등학교를 마쳤으며, 출산 이후 33%만이 학교를 졸업했는데, 십대 미혼모의 약 80%가 복지수급 대상이 되며, 이 가운데 75% 이상이 출산 후 5년 이내에 복지수급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청소년 미혼모가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미혼모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미혼모와 그 자녀의 빈곤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사회적 과제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권위 권고를 받은 기관들이 모두 수용하여 현재는 학생이 재학 중 임신할 경우 퇴학 등 징계의 근거가 되는 일선 학교의 학교생활 규정은 개정되었고, 미혼모 보호시설에 교육기능을 부여해 청소년 미혼모가 입소 기간 동안 받은 교육을 정규 교과과정으로 인정하도록 했으며, 학생 대상으로는 임신 예방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교사에게는 연수 등을 통해 청소년 미혼모를 징계의 대상이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을 전환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인권위는 이후에도 청소년 미혼모 학습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을 권고하였는데, 2019년 교육부장관에게 학생이 임신·출산 시 산전 후 요양 기간을 보장하고, 그 기간 동안의 학업손실에 대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하였다.
미혼모에 대한 편견 해소 병행돼야
이 글을 쓰는 지금 당시 발표한 보도자료와 결정문을 보니 그때 일이 뜨문뜨문 떠오른다. 이 사건을 조사할 당시 학교장은 “임신한 여학생을 학교에 다니게 할 경우 같은 사례가 폭증할 텐데, 인권위가 책임질 것이냐”, “배불러서 학교 다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은 다른 학생의 학습권은 무시해도 좋느냐”, “점점 배가 불러오면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울텐데, 유산이라도 되면 학교에 책임을 물을 것 아니냐”와 같은 이유로 인권위 조사에 대해 반발하며, 인권위가 시정권고를 하여도 이행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학부모들이 인권위 앞에서 규탄시위를 하여도 어찌할 수 없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학교를 나와 인근에서 A학생의 엄마를 만났다. 학교 주변에 조용히 이야기할만한 장소가 없어 인적 없는 골목 계단에 노트를 깔고 앉아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애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을 내치는 게 능사일까요? 학교에서 내쳐진 애들이 어디로 갈지, 어떻게 살지 우리 다 알잖아요. 문제를 일으킨 애들을 잘 가르쳐 제 앞가림은 하게 만드는 게 학교가 할 일 아닐까요?”
사실 임신 또는 출산한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유사사례가 급증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실증적 근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편견에서 비롯한 부정적 인식에 가깝다. 인권위가 정책권고를 했던 당시만 하더라도 청소년 미혼모가 한해 약 5천~6천 명으로 추산(2006년 국가청소년위원회 국정감사 발표자료)되었으나 통계청이 실시하는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십대 출산건수는 총 1,300건 수준이었다. 청소년 미혼모를 퇴학 등 징계하지 않을 경우 폭증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실제로는 현저히 그 수가 줄어든 것이다. 이는 인구의 감소 등도 영향이 있겠으나 성교육(피임교육) 등의 효과도 클 것이다.
A학생은 백일을 맞은 딸아이의 사진을 보내주기도 하고 가끔 연락을 하다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보낸 후 더는 소식이 없다. 대부분의 청소년 미혼모가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조용히 학교를 그만두던 시절 어떻게든 학교에 다녀야겠다고 인권위의 문을 두드리고 관련 제도를 고치도록 추동한 그이니 어디서든 씩씩하게 잘 살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 당시 ‘청소년 미혼모’라는 용어가 갖는 사회적 낙인의 문제 때문에 ‘10대 엄마’, ‘10대 한부모’, ‘리틀 맘’ 등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정부 및 교육현장에서 통용되는 ‘청소년 미혼모’라는 용어를 사용함. ‘청소년 미혼모’는 법적으로 미혼의 상태에서 임신 중이거나 출산을 한 19세 이하의 여성’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