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집단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에서 출발했던 혐오표현이 차별을 조장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끝없이 재생산되고 빠르게 퍼져나가는 혐오표현의 악순환은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양산되는 혐오표현, 혐오가 당연한 사회

‘김치녀’ ‘김여사’로 대변되던 우리 사회의 혐오표현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혐오를 내포한 특정 접사를 붙여 어떤 단어든지 혐오표현으로 탈바꿈시키는 ‘양산’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레를 뜻하는 ‘-충’을 붙여 집단 전체를 비하하거나 노인이 가진 부정적인 특성만을 함축적으로 강조하는 ‘틀-(틀니에서 유래)’도 혐오표현을 양산하는 의미로 쓰인다. 또 특정 종교에 대한 편견에서 유래된 표현은 단어가 지칭하는 집단뿐만 아니라 해당 종교에 대한 차별적인 고정관념까지도 동시에 표현한다. 이처럼 혐오표현이란 어떤 개인 혹은 집단에 대해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혐오하거나 차별·적의·포격을 선동하는 표현을 뜻한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의 몰상식한 행동을 비난하던 단어는 순식간에 집단 전체를 비하하고 낙인찍는 혐오표현이 되었다. 언어의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새로 태어난 언어는 아직 사회구성원 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다시 말해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언제든지 의미를 확장하고 새로운 단어로 자리매김하기 쉽다. 무분별하게 양산되는 수많은 혐오표현 또한 언제든 이 같은 의미의 확장을 통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차별을 조장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
문제는 혐오표현이 단순한 욕설보다도 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는 데 있다. 혐오표현은 피해자가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는 인종, 성별 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행위다. 이를 통해 피해자를 집단의 덫에 가두고 낙인을 찍어 사회적 차별을 재생산하도록 유도한다.
쉽게 양산되는 혐오표현의 두 번째 문제는 그것이 마치 재치 있는 풍자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풍자의 방향은 약자로부터 강자에게 향하고, 내용은 불합리와 불평등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주가 된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듯 표출되고 대상이 선택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무관용적인 비난이 핵심인 혐오표현은 풍자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우스꽝스럽게 합성된 혐오표현은 유머의 힘을 타고 SNS 등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며 재생산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혐오의 대상들이 생겨나고, 집단화된다. 심지어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진지충’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이렇게 유머의 형식을 빌린 혐오표현은 해당 표현들이 가지는 심각한 사회적 해악을 인지하기 어렵게 하고 결과적으로 혐오표현을 단순한 유머 혹은 유행어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무심코 던진 돌이 되어 개구리를 위협하게 되는 셈인데, 하나 다른 것은 우리도 같은 연못 안에 있는 똑같은 개구리라는 점이다. 결국 혐오표현이 야기하는 사회문제는 우리가 서로에게 돌을 던지게 만든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이 유머의 탈을 쓰고 돌이 아닌 척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혐오, 극단적인 이분법들

이처럼 혐오표현이 양산까지 이르게 된 배경에는 사회의 양극화와 극단적인 이분법의 논리가 숨어있다. 이전까지의 혐오표현이 오직 소수자만을 향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세대, 성별, 계급, 거주 지역, 외모, 정치 성향, 직업까지도 혐오표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극도로 혐오한다는 의미인 ‘극혐’도 이미 유행을 탄 지 오래다.
문제는 사회의 양극화가 혐오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혐오표현들이 양극화를 더 부추기기도 한다는 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취업 양극화,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간의 소득 양극화 등은 사회의 양극화가 혐오를 유발한 경우에 해당한다. 반면 젠더 양극화와 같은 경우는 양쪽의 업무가 서로에 대한 혐오표현을 경쟁적으로 주고받으며 양극화가 심화된 경우에 해당된다.
사회가 변화할 때 언어도 함께 변화하기 마련이다. 사회변화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언어를 변화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언어가 사회변화를 앞장서서 이끌어가기도 한다. 2017년의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뜻하는 단어로 ‘촛불’이 자리매김한 것처럼 사회변화의 과정 속에서 그 핵심을 담아낼 수 있는 언어는 그대로 새로운 사회질서의 규칙처럼 자리 잡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로 혐오와 혐오표현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이해 대신 배제가, 배려 대신 차별이 우리 안에 파고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그러므로 혐오표현에 대한 문제 제기는 단지 바르고 고운 말만 쓰자는 의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양극화와 극단적인 개인주의, 이분법 등에 의해서 유발되는 차별과 인권에 대한 문제다.

혐오표현은 인권 문제, 반드시 몰아내야

혐오표현의 핵심 메커니즘은 대상을 집단화하고 낙인을 찍는 데 있다.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 나와 다른 존재들로 대상을 타자화하면서 동등한 인간으로 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에 따르면 혐오표현의 대상자들은 나와 다른 존재이며 동등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인권을 누릴 수 없다는 결론에 닿게 된다. 따라서 혐오표현의 문제는 곧 기본적인 인권의식의 문제와도 직결된다. 성별, 종교, 민족, 장애유무 등은 우리가 본격적으로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 혐오표현은 주로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는 데 온라인상의 혐오표현은 익명성, 초국가성, 지속성을 가지고 있어 규제속도가 확산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심각한 혐오표현을 차단하고 발화자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혐오표현을 유발하는 구조적 요인을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먼저 혐오표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혐오표현이 피해자에게 심적 피해만 끼치는 단순 욕설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부정해 결과적으로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혐오표현이 소수자에 대한 공격이며, 차별행위의 일종임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심각한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새로운 법적 규제 방안도 마련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혐오표현은 대상을 집단화하는 것이 특징이므로 개인과 특정집단만을 대상으로 하는 현행법의 모욕죄와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머의 탈을 쓰고 유행어처럼 번져나가는 혐오표현은 이제 대상을 가리지 않고 횡행하고 있다. 이해와 배려가 있어야 할 자리를 배제와 차별이 가득 채운다면 혐오표현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이 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에서 혐오와 혐오표현을 몰아내기 위해 온 사회가 나서야 할 때다.

한아성 님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재단 및 재단법인의 문화예술 부문에서 자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