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개인, 기업, 국가 등 전세계 모두가 지금까지 누리던 일들을 멈춰야 한다. 간단히 개인의 생활 패턴을 떠올려보면 아침 출근길에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고, 인터넷 쇼핑을 통해 옷, 신발, 식료품 등을 주문하고 택배로 받는다. 주말에는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고, 일 년에 한두 번쯤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한다. 기업은 상품을 만들고 유통시켜 재화를 벌기 위해 원자재를 수입하고 가공하여, 해외와 내수 시장에 유통 판매한다. 국가는 국가 간의 유·무상 차관을 통해 개발을 하거나 개발을 지원한다.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발전됐다고 평가되는 모든 국가와 기업과 개인의 패턴이다. 전 세계 산업과 소비시장이 거미줄처럼 얽혀 어느 순간 피부색과 인종은 다르지 만 지구촌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해졌다. 이런 패턴을 보이는 이유는 지금의 산업사회가 석유와 석탄을 기반으로 발전한 탄소문명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를 움직이는 근간은 석유와 석탄이다. 체감되지 않는다면 이렇게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석유에서 가공된 휘발유, 경유 없이 자동차를 탈 수 있는가? 석유에서 추출된 원료로 만들어지는 플라스틱 없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가? 석유, 석탄, 우라늄으로 발전된 전기 없이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가?
우리는 산업화, 개발,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착취당한 지구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유한한 지구를 무한히 사용한 결과 누적된 기후변화가 기후위기가 됐다. 2018년 미국은 같은 기간 섭씨 영상 46.6℃, 호주는 영하 48℃까지 떨어져 체감 온도가 100℃에 달하는 극한 날씨를 기록했고,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로 70만 평 (600에이커)에 달하는 산림이 소실됐으며, 50㎞에 걸친 아마존 불길은 서울 면적의 83%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는 몸길이 9.5m의 향유 고래 사체에서 1,000조각이 넘고 무게 6㎏에 이르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되었다. 충격적이지만 모두 2년 사이 전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다. 2030년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을 1.5℃로 억제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기후 조건에서 문명을 이뤘던 인류는 멸종위기종이 될 것이다. 이 거대한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뜨거운 감자가 된 플라이트 셰임

2018년 8월 20일, 혜성처럼 등장한 스웨덴의 16살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전 세계에 일침을 날렸다.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School Strike For Climate)라고 쓴 피켓을 들고 매일 국회의사당 문 앞에 앉아 1인 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이후 123개국 140만 명의 청소년들이 학교를 뒤로 하고 연대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이라 명명하고 매주 전 세계 청소년들이 자신의 나라, 도시의 광장에 모였다. 하지만 그레타 툰베리가 촉발한 강력한 연대의 메시지도 기성세대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녀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올해 다보스포럼에 모인 유명인사들은 기후변화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지만, 그들이 스위스에 오기 위해 탑승한 전용기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레타는 탄소 배출을 중단해야 하는 일은 삶과 죽음의 문제이며 우리 삶의 방식을 ‘지금 당장’ 변화시켜야 한다고 외친다. 실제로 그는 2015년부터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지금도 등교 거부운동이나 국제기구 연설을 위해 세계 여러 나라로 이동할 때는 기차를 타거나 아예 상을 거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2019년 8월 14일 태양광 요트를 타고 1달여의 기간이 걸려 2019년 9월 23일 미국에서 열린 UN기후행동정상회담에 참석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즈음에 스웨덴에서는 플뤄그스캄(flygskam), 영어 로 플라이트 셰임(Flight Shame)이라는, 비행기를 타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소비자 운동이 펼쳐지고 있었다. 2017년 스웨덴 가수 스태판 린드버그가 시작한 이 운동은 바이애슬론 선수 비욘 페리, 오페라 가수 말레 나 에른만,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까지 동참하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후 2019년 상반기 스웨덴 국내선 탑승객은 8% 줄어든 대신 철도 이용객은 2배가량 증가했는데 환경의 식이 높은 젊은 층 사이에 비행기 여행을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유럽환경 청(EEA)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 이동 시 승객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항공 285g으로 철도 14g에 비해 약 20배 높다. 철도를 이용하게 되면 95%의 CO₂를 절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프랑스는 내년부터 자국에서 출발하는 모든 항공기에 환경세를 물리기로 했고, 벨기에와 네덜란드도 비슷한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지구와의 상생을 위한 사회 정의 운동

플라이트 셰임 운동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대륙 내 철도 여행이 가능한 유럽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비행기를 타지 않는 것이 과연 실효성 있는 대책인가’와 같은 질문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플라이트 셰임 운동은 제로 웨이스트, 비거니즘 운동과 같이 개인 차원의 소비자 운동에서 확장된 사회 정의 운동이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세 운동의 공통점은 개인의 실천적 차원에서 시작된 행동이 사회와 산업의 형태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일순 극단적인 생활양식을 선택하라는 운동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본질은 소비자의 알 권리 운동이다. 소비자는 제품 제공자가 선택적으로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소비할 수밖에 없다. 제공자는 주로 기업으로, 이 상품이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과정에서 어떤 환경 영향력을 끼치는지 밝히지 않는다. 비행기 티켓을 구매할 때 탄소배출량이 기재되어 있다면 한 번쯤 멈칫하지 않을까? 테이크아웃잔에 플라스틱을 먹고 죽어가는 거북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도 사용할까? 깨어 있는 시민은 그동안 간과된 문제를 수면위로 끌어올릴 힘과 의지가 있다. 진실을 원하는 시민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변화한다. 국가나 기업의 최소 구성 단위는 개인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은 투표로서 정치인들을 압박해 정책을 바꿀 수 있고, 자본주의 시장에서 개인은 소비자의 구매로서 기업을 압박해 비즈니스의 뿌리를 바꾸게 할 수 있다. 실천적 개인을 넘어 소비자 운동으로, 또 사회 정의를 찾는 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선진 시민은 아무나 될 수 있다. 그저 아침에 내가 무엇을 먹고, 입고, 타고, 쓰는지 생각하고, 지금 당장 행동하자.

참고
2030에코리포트 ISSUE NO.4 COVER STORY
Michael Birnbaum | The Washington Post : Flight-shame movement sweeps Europe
European Environment Agency : CO2 Emissions from passenger transport 2014

김지은 님은 환경재단 커뮤니케이션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