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16.02] 나비

글 정도경 그림 조승연

 

 

나비

 



옛날 옛적 어느 먼 나라에 조그만 마을이 있었습니다.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마을에 한 자매가 살았습니다. 언니와 동생은 서로 돕고 보살피며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하고 고된 살림살이에 가끔은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낯선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제복 차림의 그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총과 칼을 겨누고는 돈을 많이 벌게 해줄 테니 집집마다 모두들 일하러 가야 한다고 위협적으로 말했습니다. 언니는 그 사람들이 무서워서 어린 동생을 이웃집에 숨겨두었습니다. 이후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언니를 강제로 어디론가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총과 칼로 위협하던 낯선 사람들에게 끌려간 가족과 형제자매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생은 언니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직접 언니를 찾아나서기로 했습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온갖 고생 끝에 동생은 수도에 도착했습니다. 수도의 한복판에는 그 때 총과 칼을 들고 위협하던 낯선 사람들이 아직도 대궐같이 큰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바로 그 집 앞에 앉아 있는 언니를 발견했습니다.


동생은 너무 반가워서 뛰어가서 언니를 껴안았지만 언니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언니는 마을에서 끌려갈 때 어린 소녀의 모습 그대로, 주먹을 꼭 쥐고 발꿈치를 땅에 붙이지도 못한 채 얼어붙은 듯이 꼿꼿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언니의 등 뒤로는 그 오랜 세월 동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한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린 긴 그림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생은 언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이렇게 됐는지 알기 위해서 언니 곁을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마을 사람들도 함께 찾아와서 동생의 곁을 지켰습니다. 찬 겨울에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땅이 얼어붙어도 동생과 마을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 나를 끌고 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주먹을 꼭 쥐고 움직이지 못하는 언니의 목소리가 공중에 흩어졌습니다.
- 강제로 끌고 가서, 짓밟았다...
- 때리고, 위협하고, 고문하고, 죽였다...
“아니다!”
총과 칼을 든 낯선 사람들은 그때처럼 무섭게 위협하며 말했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너희들이 스스로 따라왔다! 너희가 스스로 몸을 팔았다! 모두 너희 탓이다!”


그리고 총과 칼을 든 못된 사람들은 이렇게 허공에서 흩어지는 목소리를 더는 듣지 않기 위해서, 주먹을 꼭 쥔 채로 긴 그림자를 드리운 언니를 완전히 부숴버리려고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동생과 함께 언니를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옛날 그때처럼 총과 칼을 들고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무섭게 위협하며 막았습니다. 그리고 망치와 삽을 든 사람들이 언니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눈이 내리고 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총칼을 든 사람들과 망치를 든 사람들이 언니를 둘러쌌습니다.


그때 차가운 바람 속에 눈송이가 휘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송이가 아니라 그것은 나비였습니다.
그리고 언니가 조용히 일어섰습니다.


나비 떼는 총칼을 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총칼을 들고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그대로 돌기둥으로 변했습니다. 망치와 삽을 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니는 일어섰습니다. 동생의 손을 잡았습니다.
동생은 오랫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언니를 껴안았습니다.
오색구름 같은 아름다운 나비 떼가 언니와 동생을 따스하게 둘러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언니와 동생을 데리고 나비 떼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총칼을 들고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그 추악한 모습 그대로 돌기둥으로 변한 채, 비바람에 씻기고 닳아서 저절로 무너질 때까지, 잔인하고 흉포한 악행을 스스로 증명하며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정도경 님은 소설가로 중편 <호(狐)>로 제3회 디지털문학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장편 <문이열렸다> <죽은자의꿈>과 단편집<왕의창녀> <씨앗>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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