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2016.02] 서로 기대다
글ㆍ사진 이강훈
서울 성동구 성수 1가의 어느 좁고 깊은 골목길 끄트머리.
여름 한낮에도 따가운 햇살 한 줄기 스며들지 않는 반지하 작은 방에는 두 어르신이 살고 계십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자식을 낳고 손자들 재롱에 웃음 짓는 그런 부부가 아닌, 혼자 된 두 사람이 살림을 합쳐 서로 의지하며 40여 년을 살아온 '사실혼'의 부부입니다.
┃ 일흔아홉 '임수란' 할머니와 여든여덟 '이계훈' 할아버지
임수란 할머니는 열아홉 살에 전라남도 남원에서 서울로 올라와 일하다가 만난 첫사랑인 남자와 결혼했지만 3년 만에 홀로 되었습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잠깐 집 앞에 나갔다 온다던 남편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언질도 없이, 이유도 모른 채 할머니의 결혼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간 할머니는 단골로 다니던 식당 주인에게서 이계훈 할아버지를 소개받았습니다. 이계훈 할아버지도 내쫓기듯 집을 나와 부산에서 홀로 살 때였습니다. 동병상련의 상처를 가진 두 분은 그때부터 여느 부부들과 다름없이 살갗을 맞대며 남은 인생을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일본어에 능통한 데다 과거 우체국 국장을 지낼 만큼 엘리트였지만 퇴직 후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린 데다 건강까지 잃어 경제활동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할머니가 식당 주방 일이며 건물 청소 등 온갖 궂은일을 다 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지금은 무릎 연골이 닳아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월세가 밀려 보증금까지 까먹은 두 분은 지인의 도움으로 3년 전 보증금 200만 원에 25만 원짜리 월세방을 겨우 구해 지금까지 살고 계십니다. 할머니는 가장의 역할을 거의 못하는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여러 번 집을 나가기도 했지만 함께 나눈 세월의 정 때문에 다시 할아버지 곁으로 돌아오곤 했답니다.
지금 두 분에게는 매달 정부보조금으로 받는 35만 원과 할아버지의 청각장애 연금 5만 원이 수입의 전부입니다. 겨우 연명하는 팍팍한 생활이지만 그래도 두 분이 함께라서 오늘도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고 계십니다.
이강훈님은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