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경찰 권고 일부불수용 공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는 2008. 5. 초부터 진행된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반대 촛불집회시위’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다수의 진정이 접수됨에 따라, 촛불집회시위 전반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 경찰이 촛불집회시위를 진압ㆍ해산하는 과정에서 과잉진압행위(과도한 공격행위, 과도한 장비사용, 투척행위에 대한 통제미비, 공격적인 진압작전 등), 과도한 통행 제한, 반성문 작성 강요, 경비업무 시 식별표식 미부착 등 일부 인권침해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했습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는 2009. 10. 27. 행정안전부장관에게 당시의 경찰청장을 경고할 것을 권고하였고, 경찰청장에게는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방어위주의 경비원칙 엄수, △2008. 6. 1.과 2008. 6. 28.의 과도한 진압작전에 대한 지휘 책임을 물어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기동본부장(당시 서울청 기동단장)과 4기동단장(당시 4기동대장)에 대해 징계조치 할 것, △시위진압경찰들의 투척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것, △시위진압용으로 살수차를 사용할 경우 최고 압력이나 최근 거리 등 그 구체적 사용기준에 대해 부령 이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 △소화기를 사람에 대해 사용하지 말고 소화용으로만 사용할 것, △집회시위현장 부근에서의 광범위한 통행 제한을 하지 말 것, △조사를 받는 피체포자에게 반성문이라는 내용과 형식의 자술서를 받는 관행을 중단할 것, △경비업무시 착용하는 의복에 식별표식을 하고 업무를 담당할 것 등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와 같은 권고에 대하여, 행정안전부장관은 2009. 10. 23. ‘사건당시의 경찰청장이 2009. 1. 21. 사직하였다’는 내용을 국가인권위원회에 통보하였고, 경찰청장은 2009. 10. 9. 및 같은 달 23. ‘식별표식 부착과 관련한 권고에 대해서는 향후 보호복 등에 개인 식별이 가능한 표식 부착 방안을 검토하겠다’면서 ‘일부수용’ 통보를, ‘살수차의 경우 물포운용지침에 따라 사용요건과 절차ㆍ살수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여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어 부령 이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이유가 없다’며 ‘불수용’ 통보하였으며, 그 외의 권고에 대해서는 수용한다는 취지로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2009. 10. 26. 경찰청장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수용’한다고 통보해 온 내용을 검토한 결과, 일부의 내용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수용’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우선,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중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인권침해 행위의 재발방지를 위해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방어위주의 경비원칙을 엄수할 것’을 권고한 것에 대하여 경찰청장은 ‘평화적 준법집회는 적극 보호ㆍ보장ㆍ지원하되, 불법폭력시위는 인권과 안전에 유의하여 법과 원칙에 따라 적정한 물리력을 사용하여 엄정 대응’하겠다고 통보하면서 이러한 입장은 기시행중이므로 권고를 수용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방어위주의 경비원칙 준수’의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난 해 촛불집회시위 때 경찰은 집회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후퇴하는 사람 ▷지켜보는 사람 ▷사진 촬영하는 사람 ▷폭행을 만류하는 사람 ▷넘어진 사람 ▷비무장상태의 여성과 청소년 ▷의료지원활동을 하는 사람 ▷평화적으로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 등에게까지 정당한 공무집행을 위한 범위를 벗어나 과도한 공권력의 행사를 한 사실이 확인되어 ‘방어위주의 경비원칙을 준수’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즉, 정당방위 내지 정당행위 상황과 무관한 상황에서 적법한 집회는 물론이고 비록 불법집회라 하더라도 위에서 열거한 경우에는 경찰관들의 일방적인 공격 및 폭행은 자제하여야 한다는 것이 권고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경찰청장이 준법집회와 불법집회를 분리하여 불법집회에 대하여는 ‘엄정 대응’하겠다는 취지로 통보한 것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취지와는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경찰의 집회시위에 대한 ‘엄정 대응’ 방침으로 인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는 위 권고를 하게 된 유사한 내용의 진정이 현재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경찰청장의 ‘엄정 대응’이라는 방침이 경찰청에서 통보해온 바대로 ‘인권과 안전에 유의한’ 적정한 물리력 행사가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듭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가 ‘2008. 6. 1. 아침 안국로타리 및 2008. 6. 28. 자정경 태평로와 종로 등에서 진행된 진압작전으로 인해 발생한 인권침해행위, 즉 집회해산을 위한 기습적인 진격명령과 쓰러진 여성을 폭행하는 등의 과도한 물리력 사용, 신체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수행위를 한 것 등 공권력 행사의 적정범위의 한계를 벗어나 필요최소한도를 넘는 진압행위를 한 현장지휘 책임자인 서울지방경찰청 소속 기동본부장과 4기동단장에 대해 징계조치할 것’을 권고한 것에 대하여, 경찰청장은 ‘2008. 6. 1.과 2008. 6. 28. 발생한 과잉 대응사례에 대해 가해자와 기동본부장 포함 지휘감독자를 문책 조치’하였다고 통보하며 권고를 수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일단 경찰청장이 촛불집회시위 관련 진압작전 과정에서 과잉사례가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취지에서 가해자 및 일부 지휘감독자를 문책 조치한 것은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경찰청장은 위원회가 대표적인 과도한 작전으로 지목한 위 양일간의 현장책임자였던 당시 기동단장에 대해서는 서면경고에 그치고, 2008. 6. 28. 태평로 작전의 과잉진압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던 부대 투입의 현장지휘자였던 서울지방경찰청 4기동단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중간지휘자들에 대하여만 경고하거나, 행위자인 일부 기동대원에게만 영창 등의 조치를 취하였을 뿐입니다. 따라서, 국가인권위원회는 2008. 6. 1.과 2008. 6. 28. 양일 간의 사건에 대한 지휘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은 경찰청장의 조치 또한 ‘수용’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불특정 다수의 광범위한 통행 제한을 하지 말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대하여 경찰청장은 ‘주변 시민 불편이 최소화되도록 홍보ㆍ안내 실시’한다며 권고를 수용하였다고 통보하여 온 것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위원회 권고취지를 수용했으나 여전히 시위와 무관한 일반 시민들에 대한 조치부분이 미흡하다고 판단하여 ‘일부수용’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 외, ‘시위진압용으로 사용하는 물포의 사용기준에 대해 부령 이상의 법적근거를 마련하라’는 권고에 대해서 경찰청장은 ‘현재 물포운용지침에 따라 사용요건과 절차ㆍ살수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여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어 위 권고를 불수용한다’고 통보하였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물포운용지침이 자체 내부규정에 불과하고 대외적 규범력이 없으며, 그 구체적인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외부통제를 받지 않으므로 법적 근거로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구체적 사용기준인 최고압력이나 최근거리 등의 요건에 대해 부령 이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경찰의 자의적 운영 및 남용의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물포 운용은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에 관한 기본권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경찰청이 내부지침이 아닌 부령 이상의 법적근거를 마련하여야 할 것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청장의 통보 내용을 검토한 결과 경찰청장이 권고를 수용하였다고 인정되는 내용은, 시위진압대원들이 투척행위를 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교양하겠다는 것과, 소화기는 본래 용도인 소화용으로만 사용하도록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 자술서는 자유의사에 의해 작성하되 피의자의 의사에 반하여 반성문 형식으로 작성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 등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경찰청장의 권고 수용입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향후 철저하게 이행되기를 바랍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민들의 집회시위의 자유가 부당하고 과잉된 공권력에 의해 훼손되지 않기를 희망하며, 이번 경찰청장의 권고 일부불수용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법 제44조 제2항 및 제25조 제4항에 따라 국민과 언론에 공표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