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 이하 “국가인권위”)는 19일 투표구 내에 투표소를 설치하기에 적당한 장소가 없는 등의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종교시설 내에 투표소를 설치하지 말도록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권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가인권위는 공직선거 시 종교시설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것은 헌법 제20조가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아울러 국민 중 일부라도 종교상의 이유로 투표를 위해 종교시설에 들어가는 것을 심리적 부담으로 느끼거나 나아가 투표행위 자체를 꺼리게 된다면 이는 국민의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권고는 올 2월 A씨가 종교시설 내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것은 투표행위 자체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종교시설 내에 투표소를 설치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지로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해 온데 따른 결정입니다.
1. 진정내용
A씨는 진정서에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서 특정 종교시설에서 투표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며 “종교시설 천장과 벽면에 부착해놓은 대형 선전물을 보면서 투표할 차례를 기다렸으며, 이는 종교를 강요하거나 권유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것을 보면서 투표를 하는 것이 유쾌하지 않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투표행위가 자유롭게 행사되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A씨는 또 “투표소가 설치된 종교시설에서 불과 50m 거리에 노인복지시설이 있어 종교시설 보다 찾기도 쉽고 접근성도 용이했다”며 종교시설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2. 종교시설 내 투표소 설치 현황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총 투표소 13,178개소 가운데 1,050(8.0%)개소가 특정 종교시설 내에 설치되었습니다.
또한 종교학자・법조인 등으로 구성된 종교자유정책연구원(공동대표 길희성 등)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1) ①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당시 총 투표소 12,932개소 중 1,087(8.4%)개소, ②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총 투표소 13,178개소 중 1,172(8.9%)개소가 각각 종교시설 내에 투표소가 설치되었습니다. 지역별로는 ① 서울시 2,210개 투표소 중 종교시설 투표소가 511개소(23.1%)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고 ② 부산시가 856개소 중 116개소(13.6%)로 그 다음, 인천시가 599개소 중 77개소(12.9%)로 종교시설 내 투표소는 대도시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또한 서울 서대문구(39.3%), 은평구(36.3%), 용산구(35.6%), 마포구(31.3%), 동대문구(31.1%) 등에서는 종교시설 내 투표소가 전체의 30%를 넘었습니다.
3. 공직선거법 규정
「공직선거법」 제147조 제2항은 투표소를 “투표구 안의 학교, 읍・면・동사무소 등 관공서, 공공기관・단체의 사무소, 주민회관 기타 선거인이 투표하기 편리한 곳에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당해 투표구안에 투표소를 설치할 적당한 장소가 없는 경우에는 인접한 다른 투표구 안에 설치”하도록 했습니다. 특정 종교시설내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것은 해당 종교시설과 다른 종교를 가진 선거인과 종교가 없는 선거인에게 편리한 투표장소는 아닐 것이기 때문에 공직선거법 제147조 제2항의 취지에 반한다 할 것입니다.
4. 위원회의 판단
선거관리위원회가 주민의 접근성 등 공익상의 요청을 충족하기 위하여 종교시설에 투표소를 설치하였으며 또한 투표소 설치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확보로 인해 학교 등의 공공시설을 빌리기가 어려운 현실적인 고충이 있으리라고 충분히 이해합니다. 한편 투표소로 지정된 종교시설도 신도들의 불편함이나 시설관리 등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선의로 이러한 공익상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투표소의 개설에 협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종교시설 내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행위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기본권(종교의 자유)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첫째, 우리 헌법 제20조가 보장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 가운데 하나인 종교적 행위의 자유에는 국민이 종교상의 이유로 출입하기 원하지 아니한 특정종교시설에 출입을 강제당하지 아니할 자유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종교시설 내에 투표소를 설치할 경우 다른 종교를 가지거나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유권자가 투표를 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특정 종교시설에 출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경우 종교상의 이유로 특정 종교시설에 출입하기를 원하지 아니한 유권자는 특정 종교시설이 아닌 그 밖의 인근투표소에서 투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아니한 이상 자신이 원하지 아니한 특정 종교시설에 출입을 강제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 헌법이 보호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둘째, 종교시설 내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것은 선거관리위원회의 행정효율성, 다른 유권자들의 접근용이성 등의 공익상의 요청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로 인하여 유권자의 일부가 투표권의 행사를 꺼리거나 거부하게 된다면 이러한 사태는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하여 교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시설 내에 투표소를 설치함으로써 충족할 수 있는 공익상의 요청보다 이로 인하여 발생될 수 있는 투표권 행사의 제한이 더욱 더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문제입니다.
국가인권위는 투표구 내에 종교시설 이외에는 투표소를 설치할 적당한 장소가 없다는 등의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선거관리위원회가 특정 종교시설을 투표소로 지정함으로써 인하여 국민들의 일부라도 종교상의 이유로 민주주의 실현에 가장 기본이 되는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끝 designtimesp=15381>
1)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청구(접수번호 2008-1469)를 통하여 수집한 자료를 분석하고, 그 자료를 근거로 헌법소원 및 진정을 제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