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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 이야기 [2025.11~12] 디지털 장벽: 국경 통제 기술의 고도화와 이주민 인권

 

국경은 오랫동안 국가 주권의 상징이자 물리적 경계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감시, 생체인식, 드론 기술의 결합은 국경을 더 이상 단순한 공간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국경은 점차 보이지 않는 디지털 장벽이 되고 있으며, 이는 특히 이주민과 난민 인권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디지털 장벽: 국경 통제 기술의 고도화와 이주민 인권

 

AI 기반 영상 분석 시스템, 드론 정찰, 얼굴인식 기술, 생체정보 수집 장비 등은 미국, 유럽, 호주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국경 관리 체계에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육로 국경뿐 아니라 해상 접근 경로, 공항 출입국 구역 등 다양한 경로에서 감시 역량을 대폭 확장시킨다. 이동의 흐름을 기술적으로 추적·분석하고, ‘위험’으로 간주되는 이들을 선별하는 시스템은 이제 다수의 국경에서 일상화되었다.

 

이 가운데 유럽연합(EU)의 국경관리청 프론텍스(Frontex)는 상징적인 사례로 언급된다. 프론텍스는 유럽 외부 국경을 관리하고 회원국 간 협력 작전을 조율하는 기구로, 최근 수년 사이 권한과 예산이 급속히 확대되었다. 그러나 작전 수행 과정에서 난민과 이주민을 물리적으로 밀어내는 이른바 ‘푸시백(pushback)’ 사례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인권 침해 논란도 커지고 있다. 입국을 시도하는 난민이 적법한 비호 신청 절차를 거치기도 전에 차단되거나 강제 송환되는 상황은, 국제인권법의 핵심 규범인 강제송환금지 원칙(Non-refoulement)에 정면으로 배치될 수 있다. 국경 경계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물리적 조치는 점점 더 기술적 감시 체계와 결합되며, 인권의 사각지대를 확대하고 있다.

 

감시 기술의 고도화는 이주민의 생명권, 난민으로서 보호받을 권리, 개인정보 보호 권리와 밀접하게 충돌한다. 생체정보와 위치정보, 행태 데이터가 수집·분석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동의와 권리 보장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면, 이는 사생활 침해를 넘어 인종적·민족적 프로파일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또한 국경 지역에서의 실시간 감시는 불투명한 행정 권한과 결합될 경우, 법적 절차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구제를 더욱 제한할 수 있다. 출입국 심사대에서, 혹은 국경 경계의 비정규 루트에서 마주치는 이주자에게 기본적 정보조차 제공되지 않는 현실은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기술 기반 국경 관리 방식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와 특별절차 수임자들은 국경 감시의 투명성과 책임성, 난민 신청 절차 보장, 대체 가능한 대안 조치 등을 지속적으로 권고해 왔다. 특히 이주민 권리 특별보고관은 최근 보고서에서 기술이 국경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는 있으나, 동시에 법적·윤리적 기준 아래 운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기술의 불투명성문제는 인권 침해의 책임 소재를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AI 알고리즘이 ‘위험’을 예측하여 출입국 거부를 결정했을 때, 그 결정의 기준과 과정에 대해 이주민이 이의를 제기하고 법적 구제를 받는 것은 극히 어렵다. 이는 국가의 인권 보호 의무와 투명성 원칙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의미한다. 국경 통제 권한이 국가 기관 간의 협력은 물론, 감시 장비를 제공하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적 기업으로까지 확대되는 추세 속에서, 국제 인권 규범에 따른 실질적인 구제책 확보는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가 되고 있다.

 

한국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국가이지만, 국경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행정적 동기는 국제적인 동향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이러한 효율성 증대 과정에서 기술적 편리함이 인권적 고려를 쉽게 압도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이주민과 난민을 잠재적 위험 집단으로 인식하는 기존의 사회적 배경과 결합되어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

 

최근에는 공항 송환 대기실 운영, 특정 국가 대상 무사증 제도 일시 중단, 생체정보를 활용한 자동화 심사 시스템 확대 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행정적 효율성을 목표로 하지만, 동시에 출입국 대상자의 권리를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를 함께 묻는다. 국경 감시 기술이 점점 정교해지는 만큼, 그 기술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이주자·난민·비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는 더욱 정밀해져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사회도 국경 관리 체계의 인권 감수성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국경의 통제는 국가의 권한이지만, 그 권한의 행사 방식은 인권의 보편적 기준과 조응해야 한다. 기술적 효율성과 인권 보호가 상충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며, 두 가치를 조화롭게 연결할 수 있는 행정 설계와 법적 감시 체계가 요구된다. 예컨대 출입국 심사에 대한 이의제기 절차, 법률 지원 확대, 정보 접근권 보장 등은 기술이 아닌 제도로 보완해야 할 영역이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국경 감시 기술이 누구를 감시하고 누구를 보호하는지에 따라, 그것은 권력이자 통제의 수단이 될 수도, 혹은 안전과 존엄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국경 없는 감시의 시대, 우리는 기술이 아닌 인권 원칙에서 출발해야 한다. 국경의 이름으로 보이지 않는 권리를 지우지 않도록, 인권의 기준이 보다 섬세하고 단단하게 구축되어야 할 때이다.

 

디지털 장벽: 국경 통제 기술의 고도화와 이주민 인권

 

 

글 | 백가윤(국가인권위원회 국제인권과)
본지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우리 위원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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