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기 [2025.11~12] #4 한국 사회에서 이주민으로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운다는 것
알파즈(가명) 씨는 2014년에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이주노동자이다. 고용허가제 비숙련 노동자로 경주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4년 넘게 일한 덕에 때마침 도입된 숙련기능인력제도를 통해 전문인력 취업 체류자격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가족 동반이 허용되는 전문인력 노동자가 되자마자 알파즈 씨는 본국에 있던 부인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알파즈 씨의 부인은 이듬해 쌍둥이를 임신했고, 알파즈 씨는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생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울산에 있는 중견기업으로 직장을 옮겼다.

부인이 임신한 쌍둥이는 남아와 여아 이란성 쌍둥이였다.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받은 산전 검사에서는 둘 다 건강에는 문제가 없지만 조산의 위험이 있다고 했다. 2019년 9월, 임신 8개월 만에 샤킬과 샤일라 남매가 태어났다. 둘 다 2kg를 갓 넘은 저체중이었던 터라 일주일 정도 인큐베이터에서 지내야 했다. 그런데 퇴원하기로 한 날이 되자 샤일라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병원에서 주는 분유를 곧잘 먹던 아기가 토를 하며 울음을 멈추지 않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병원에서는 대학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다며 119구급차를 불렀다.
대학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각종 검사를 받은 샤일라는 단풍당밀뇨증, 즉 단백질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질환을 갖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문제는 태어난 병원에서 그 사실을 모른 채 단백질이 들어있는 일반 분유를 먹였고, 샤일라의 몸에 소화되지 못한 단백질이 쌓이면서 뇌 손상까지 입게 된 것이었다. 대학병원에서는 단풍당밀뇨증은 음식만 조심하면 얼마든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질환이라며, 태어난 병원에서 소변 검사만 했더라도, 그래서 샤일라에게 일반 분유가 아닌 특수 분유만 먹였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수술을 통해서 몸에 쌓인 단백질은 제거했지만 샤일라의 뇌 손상은 회복이 불가능했다. 샤일라는 자주 입원을 해야 했고, 쌍둥이 형제 샤킬도 한참 손이 가는 신생아였다. 알파즈 씨는 그때부터 일을 야간 근무로 돌렸다. 밤새 일을 하고 아침에 와서 샤일라를 데리고 병원에 가거나 지친 부인을 대신해서 샤킬을 돌보다 쪽잠을 자고 다시 출근하는 고단한 일상이 이어졌다. 샤킬과 샤일라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면서 조금 나아질까 싶었지만, 그때부터는 샤일라의 재활치료가 시작되었다.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를 일주일에 두 번씩 데리고 다니다 보면 도무지 쉴 틈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알파즈 씨는 일을 그만두거나 줄일 수도 없었다. 샤일라의 재활치료비와 샤일라를 위한 저단백 식품 비용, 그리고 장애전문 어린이집 비용을 대려면 오히려 주말도 반납하고 특근을 해야 할 처지였다. 병원에 오가면서 샤일라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알파즈 씨에게 샤일라를 장애인으로 등록하라고 했다. 장애인등록을 하고 복지카드를 받게 되면 하루에 몇 시간씩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재활치료비를 지원받거나 특수 분유나 저단백밥을 보건소에서 무료로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샤일라가 갖고 있는 체류자격으로는 장애인등록을 할 수 없었다. 일반 외국인은 영주 체류자격을 가지고 있어야 장애인등록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알파즈 씨는 샤일라를 위해 영주권을 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영주권을 따기 위한 소득 요건은 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2배 이상으로, 아무리 알파즈 씨가 중견기업에 다니는 숙련 노동자라고 해도 충족시키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알파즈씨는 일은 일대로 하면서 여행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여 만에 영주권 신청을 위한 요건을 넘는 연소득을 벌게 되었다. 2024년, 한국에 온지 10년 만에 알파즈씨는 영주권을 취득했다. 출입국에서 미성년 자녀는 부모가 영주권을 받고 2년이 지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고 들었다. 내년이 되면 샤일라도 영주권을 따고 장애인등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파즈 씨의 바람대로 샤일라가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까.

할 수 없거나 해도 소용없는 장애인 등록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이주민 건강권 실태와 의료보장제도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인해 일상 활동이나 일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이주민의 비율은 5.0%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시기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통계에서 조사된 내국인의 활동 제한율 5.2%와 비슷한 비율이다. 그런데 장애가 있는 이주민과 내국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장애인으로 등록을 한 사람의 비율이다. 내국인 중 장애인등록을 한 사람은 5.1%이지만 이주민 중 장애인등록을 한 사람은 0.4%에 불과하다. 장애가 있는 대부분의 내국인이 장애인등록을 한 반면, 장애 이주민은 극소수만 장애인등록을 한 것이다.
장애인등록을 한 장애인들에게만 필요한 서비스와 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한국에서 이주민의 장애인등록 비율이 이렇게 낮은 이유는 장애인복지법이 장애인등록을 할 수 있는 외국 국적 이주민을 동포, 영주권자, 결혼이민자, 난민인정자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포도 결혼이민자도 난민인정자도 아닌 샤일라 같은 이주민은 영주권을 따야만 장애인등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이 영주권을 신청하기 위한 연소득 요건은 전년도 1인당 국민총소득의 2배 이상, 2025년 현재 9,990만원이 넘는다. 이는 알파즈 씨처럼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이주민들에게 닿을 수 없는 기준이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이주민은 장애인등록을 하더라도 장애인복지사업의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애인복지법이 외국인으로 장애인등록을 한 사람에게는 예산 등을 고려해 장애인 복지사업의 지원을 제한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샤일라가 필요로 하는 장애인 활동지원 서비스, 발달재활서비스, 장애아 보육료 지원 등은 영주권을 가지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제공되지 않는다. 장애 아동에게 어린 시절의 재활치료는 신체적·정신적 기능을 향상시켜 이후 삶의 질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지원하는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장애 이주아동이 꾸준한 재활치료를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보장제도에서도 배제된 장애 이주민
10년 전 한국으로 이주한 아냐 씨는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동포이다. 18살 딸 율리아를 홀로 키우며 인천에 있는 한 초등학교의 러시아어 보조 강사로 일하고 있다. 율리아는 모야모야병을 가지고 있는데 5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로는 신체활동과 언어기능에 문제가 생겼다. 여러 차례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으면서 몸의 움직임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말하기는 어렵다. 율리아를 돌보느라 아냐 씨는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했고 탄력 근무를 하기 위해 비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율리아의 치료비로 돈은 더 많이 드는데 수입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비율은 20.8%로 같은 시점 전체 인구 수급률 4.8%보다 4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장애인들의 높은 빈곤율을 반영하는 수치이다. 장애 이주민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아냐 씨처럼 한부모로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며 직장과 자녀 돌봄을 병행하다 보면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외국 국적 이주민 가운데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결혼이민자 중 일부와 난민 인정자로 제한되어 있다. 또, 소득이 낮은 장애인들에게 제공되는 장애인 연금, 장애인 수당, 장애아동 수당 등도 난민 인정자를 제외한 이주민들은 받을 수 없다. 사회보장의 사각지대에서 장애 이주민과 그 가족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냐 씨에게는 걱정이 하나 더 있다. 현재 아냐 씨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로 매달 15만 원이 넘는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 지금은 아냐 씨만 보험료를 내면 율리아는 미성년 자녀로 세대원으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내년이면 율리아도 성인이라 별도의 보험료가 부과될 예정이다. 결혼이민자와 영주권자를 제외한 이주민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에게는 전년도 평균보험료 이상의 보험료가 부과된다. 일부 체류자격 소지자는 경감을 받을 수 있지만 동포는 아니다. 2025년 기준 이주민 지역가입자에게 적용되는 전년도 평균보험료는 152,790원이다. 한편, 지역가입 세대주의 세대원으로 묶일 수 있는 가족의 범위는 내국인의 경우 같은 주민등록에 등재된 모든 사람이지만 외국 국적 이주민은 세대주의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로 국한된다.
게다가 결혼이민자나 영주권자, 난민인정자는 장애인등록을 한 경우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보험료 경감을 받을 수 있지만 동포로 장애인등록을 한 사람에게는 보험료 경감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형편에 내년부터는 두 사람의 건강보험료에만 매달 30만 원이 넘게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다르지 않은 부모들의 바람
“혼자 서는 거, 자기 손으로 밥을 먹는 거, 스스로 걸어서 화장실 다니는 거. 그런 거예요. 다른 건 다 괜찮아요.”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딸 샤일라에게 알파즈 씨가 바라는 것들이다. “앞으로 우리 딸이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나 없이 혼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그런 게 고민이에요.” 내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는 율리아를 보면서 아냐 씨가 하는 걱정이다. 아마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등록을 할 수 없거나 장애인등록을 하더라도 장애인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대부분의 장애 이주아동의 부모들에게는 기댈 수 있는 작은 언덕조차 없다.
아냐 씨는 4년 전부터 ‘고려인 장애인 가족 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전국 각 처에 흩어져 살고 있는 130여 명의 고려인 장애인 가족들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비록 받을 수 있는 공적 지원은 없지만 서로 정보를 나누고 어려운 마음을 달래는 역할을 해왔다. 2년 전부터는 고려인 장애인 가족 모임의 회원들이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즈음 열리는 장애인 차별철폐 대행진에 참석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고려인 장애인을 포함한 이주민 장애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한국 장애인들처럼 스스로 목소리를 내서 제도를 바꾸는 활동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주민들 중에서도 저처럼 아픈 아기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아주 많지는 않겠지만 좀 있을 거예요. 저희들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게 좀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도 사람이거든요. 외국인이지만 저희도 사람이잖아요.” 딸과 또 딸처럼 장애를 가진 이주아동들에게 동등한 장애인 복지 서비스가 제공되기를 희망하는 알파즈 씨의 호소가 외면당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글 | 김사강(이주와 인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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