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기 [2025.11~12] #2 안전하게 꿈을 꾸며 살아가고 싶은 아이들

학교에서 아이가 사라졌다. 하굣길에 보이지 않던 아이를 찾기 위해 학교와 경찰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부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자식의 실종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경찰서에 진술하러 갔다. 그러나 아이가 무사히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전에, 경찰은 “미등록 이주민이기에 외국인보호소로 이송될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실종된 아이의 어머니가 곧바로 출입국에 신고된 것이다. 그날 저녁,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를 찾은 날이, 동시에 가족이 헤어진 날이 되어버렸다. 그 현장에는 나도 함께 있었다. 조사실 앞에서 어머니 곁에 있겠다고 했지만, 경찰은 나와 어머니를 분리했다. 경찰서의 문이 잠기고, 한국어가 서툰 어머니는 홀로 남겨졌다. 몇 시간 뒤 아이는 찾았지만, 어머니는 경찰차를 타고 외국인 보호소로 이송되었다.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단속’이라는 행정 절차가 한순간에 일상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다. 그날 밤, 아이는 집에서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울며 엄마를 찾았다고 한다.
체류권 보장이 권리의 시작이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이주배경 아동이 이 땅에서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교육권이 아니었다. 체류권의 보장, 바로 그것이 모든 권리의 출발점이었다. 비자가 없으면 학교에 다니는 것도, 병원에 가는 것도,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도 언제든 끊겨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와 국제사회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지적해왔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CRC)와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 역시 한국 정부에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권고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학교에 다니는 미등록 아동은 강제출국 시키지 않는다”는 비공식적인 관행만 유지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내부 지침에 아이들의 삶이 좌지우지되고 있었던 셈이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계기로 변화의 문이 열렸다. 2021년, 법무부가 처음으로 미등록 이주배경 아동에게 체류자격을 부여할 수 있는 임시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아이들이 법적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길’이 열린 순간이었다.
〈표 1. 법무부의 미등록 이주배경 체류자격 부여 지침 시행 현황〉
한국에서 자라고, 한국어로 꿈꾸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이
더 이상 ‘임시 체류자’가 아니라
‘함께 사는 우리’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이 땅은 진정한 의미의
통합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문이 열리자, 아이들의 얼굴이 달라졌다
지침이 시행된 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살던 아이들이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길에서 경찰을 만나도, 친구들과 여행을 가도, 더 이상 겁에 질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도 여기서 계속 살 수 있다”는 안도감이 생겼다. 그 감정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힘인지, 곁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학교생활도 안정되었다. 자격증 시험을 치르거나, 대학 입시를 준비하거나, 시·도 단위 대회에 참여하는 일처럼 다른 학생에게는 당연한 일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처음 겪는 자유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출국해야 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대학이나 취업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한국에서 미래를 상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의료 접근도 커다란 변화였다. 미등록 상태에서는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비가 일반 진료비의 몇 배였다.
아이가 아파도 참고, 약국에서 해열제만 사 먹이던 부모들이 많았다. 하지만 체류자격을 얻은 뒤에는 아플 때 병원에 갈 수 있고, 의사 소견서를 받아 학교 출결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변화는 ‘신분증을 가진 자신’으로 살아가는 경험이었다. 예전에는 은행 계좌를 만들 수도, 휴대전화를 본인 이름으로 개통할 수도 없었다. 이제는 자신의 이름으로 스쿨뱅킹을 등록하고, 영화표를 예매하고, PC방에서 본인 인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작은 변화들이 아이들에게는 ‘나도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감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벽 앞에 서 있다
그러나 그 문턱을 넘지 못한 아이들도 많다. 가장 큰 장벽은 범칙금이었다. 체류자격을 신청하려면 부모가 불법체류 기간에 따라 범칙금을 내야 한다. 장기 체류 가정의 경우 부모 두 명이 1,800만 원을 부담해야 했다. “이 돈을 내면 아이는 살 수 있지만, 우리는 빚더미에 오른다.” 한 어머니의 말처럼, 이 제도는 가난한 가정에게 여전히 너무 비싸다. 또 다른 문제는 가족의 분리였다. 지침은 아동이 성인이 되면 부모가 출국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아이의 체류권이 보장되었어도 “언젠가 가족은 헤어져야 한다”는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아이는 한국에 남지만, 부모는 떠나야 하는 구조. 체류는 허용하되 정주는 불허하는 제도, 그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학교 밖에 있는 아이들은 제도 밖에 그대로 남아 있다. 한국어가 서툴러 학업을 중단한 아이, 경제적 이유로 일터에 나선 아이, 공교육 진입이 어려워 대안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한국 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이란 자격 요건에 막혀 신청조차 못한다. 가장 취약한 아이들이 가장 멀리 밀려나는 역설이 반복되고 있다.
출생등록이 안 된 아이들은 여권이나 가족관계증명서를 낼 수 없어 서류 단계에서 막히고, 다국어 통역이나 안내가 없어 부모가 행정 절차를 감당하기 어렵다.
때로는 행정사에 의뢰하며 200만~300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절차의 접근성 문제가 아이들의 삶을 가로막고 있다. 무엇보다 이 제도는 여전히 ‘아동의 권리’보다는 ‘행정의 재량’에 의존하고 있다. 출입국 담당자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고, 같은 조건에서도 어떤 가정은 범칙금을 면제받고 어떤 가정은 면제가 거부된다. 아이들의 권리가 행정의 판단에 좌우되는 현실, 그것이 현장의 가장 큰 불안이다.
이 땅의 모든 아이는 평등하고 안전하게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변화가 남긴 희망은 분명하다. 체류권이 생긴 아이들이 보여준 변화는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가르쳐준다. 체류권은 단지 비자가 아니라, 존재를 인정받는 일이다. 그 인정이 있을 때 비로소 아동의 다른 권리들이 작동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임시 구제의 반복’이 아니다. 법률에 근거한 상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장기거주 아동에게 명확한 체류 근거를 보장하고, 범칙금 감면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다국어 안내와 원스톱 행정창구를 갖춰야 한다. 학교 밖 청소년도 신청할 수 있도록 학습 경로를 다양화하고, 성인 전환기에 가족 동반 체류와 자립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
이주배경 아동의 권리 보장은 단지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회가 다양성과 공존의 가치를 얼마나 진심으로 받아들이는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한국에서 자라고, 한국어로 꿈꾸며,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이 더 이상 ‘임시 체류자’가 아니라 ‘함께 사는 우리’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이 땅은 진정한 의미의 통합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침이 만든 작은 문을, 이제는 제도화하여 다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 다리가 아이들의 오늘과 내일을 이어줄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이 사안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 내주시길 바란다.

1) 법무부의 미등록 이주배경 체류자격 부여 지침의 신청 과정은 공식적으로 정리되어 발표된 적이 없음. 따라서 위 과정은 성공회 용산나눔의집에서 미등록 이주배경 가정의 신청 과정을 동행하며 자체적으로 정리하였음
글 | 강다영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이주인권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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