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인권 [2025.07~08] 『군, 인권 열외』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해마다 100명이 군대에서 목숨을 잃는다. 20대 남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군대에 갈까? 국방의 의무를 고귀하게 여기고 나라를 위한 충성에 자부심을 느낄까? 그렇게 믿고 싶은가? 아들이 군대를 힘들어했던 이유 중 하나는 ‘삽질’이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굳이 해야만 하는 삽질.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하지만 요즘 청년들이 원래 삽질한다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원래 그런 군대’에는 일상적 폭력과 가혹행위도 포함되어 있었다. 청년들이 왜 그런 것을 감수해야 하지? 해마다 돌아오지 못하는 100명 중 70%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벼랑 끝에 내몰리다가 비극이 쌓인다. 이런 세상에서 원래 그렇다고, 한국 남자들은 다 그렇게 지내왔다고 해도 될까?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의 [군, 인권 열외]는 ‘지켜야 하지만 지켜지지 못한 사람, 군인’에 대한 보고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면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끔찍하다.
드라마 <D.P> 시즌2(한준희 감독, 2023)에는 군대 내부의 조직적 학대로 인해 총기난사 사건을 벌였던 군인이 등장한다. 군인은 조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일탈로 몰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렇다고 증거 조작이 이토록 조직적으로 이뤄지다니.
책은 2014년 윤승주 일병의 사례로 시작한다. 군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음식을 먹다가 기도가 막혀 숨졌다는 사건이다. 알고보면 갓 입대한 신병에게 온갖 트집을 잡아 때리고 때렸다. '더 고참인 선임이 시켜서 때리고, 짜증나서 때리고, 절뚝거려서 때리고, 잤다고 때리고, 심심해서 때렸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핥아 먹다가 끝내 맞아 죽었다. 다들 가혹행위를 부인했지만 포대장은 폭행 정황을 확인했다. 가장 나쁜 것은 다 알고서도 진실을 감춘채 질식사로 조작한게 군이라는 점이다. 몇개월 뒤 군인권센터가 진실을 폭로하지 않았으면 묻혔을 사건이다.
2021년 강제추행 사건 이후 끝내 자살한 이예람 중사도 이런 군의 행태가 결정타였다. 그는 살려고 애썼다. 상급자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절차에 따라 보고했다. 일상을 회복하려고 필사적이던 그에게 군은 잔인했다. 가해자 감싸기와 2차 피해, 회유, 협박, 부실수사가 이 중사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이 중사 사건이 특이한게 아니다. 유사 사건이 주기적으로 벌어져서 매번 피해자가 죽어야 끝났다.
사건들은 모두 지옥도를 보여준다. 2016년 사건에는 음식 고문이 등장한다. 가령 급식을 먹고 나서 치킨 두 마리, 초코파이 한 상자, 과자 세 봉지, 빵 세개, 음료 1.5리터를 강제로 먹이는 식이다. 2019~2020년에는 잠자리를 산채로 먹이려 한 사건, 후임에게 개 흉내를 내며 네발로 걸어다니게 한 사건, 치약으로 후임 머리를 감긴 사건 등이 벌어졌다. 극한의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추행 사건도 여럿이다. 사람들 앞에서 자위행위 강요하기, 강제로 음모 깎기, 성기 때리기,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유사 성행위 강요하기. 이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저자는 “피해자가 어찌할 도리가 없고. 거부하지 못할 것이고 신고도 못할 것이고 처벌도 없을 것이란 감각이 조직에서 통용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인권침해를 고유의 군 문화라고 묵인하고 넘어가는 풍토는 대낮에 공개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가혹행위에 눈감는다. 선임들은 말한다. “나도 당해봤어”. 원래 그런 곳이라는 이야기는 신고해봐야 소용없다는 절망과 함께 ‘너도’ 언젠가 ‘짬이 차면’ 후임을 괴롭힐 ‘권리’를 업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군기’를 잡는 것이라고 가혹행위를 용인하고, 그렇게 ‘진짜 사나이’가 된다는 판타지는 가스라이팅이다. “군대 가야 사람된다”는 식의 경험담은 폭력적 군대문화를 부추길 뿐이다. 대책 중에 “성폭력을 근절하자”고 아침마다 구호를 외치는 방식이 거론됐다고 한다. 개인의 정신상태로 책임을 돌리고, 군기를 세우면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가?
"국방부와 육·해·공군이 앞다퉈 인권 전담기구를 신설하고 상담창구를 열지만 인권침해 사건은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돌아봐야 한다. 저자는 “계급 질서의 장막 속에서 암암리에 크고 작은 형태의 폭력이 대물림되는 구조”라며 “폐쇄된 계급사회에서 ‘폭력’은 언제나 ‘문화’가 될 채비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보호장치를 겹겹이 갖춘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인권 옹호의 핵심은 매순간 섬세한 노력과 관심을 어떻게 상시적인 시스템으로 구축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약자와 소수자 인권 문제를 고민해온 사회에서 나라 지키는 장병의 인권이 이토록 취약하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가장 강하고 단단할 것만 같은 군의 이미지 아래 너무 오래 방관했다.
병사를 소모품 만도 못하게 다뤄온 세월도 돌아봐야 한다. 군인을 끌려가서 고생하는 존재로만 여겨왔다. 병사 처우도 오랫동안 상식 이하였다. 병장 계급이 생긴 것은 1957년 이승만 정부 시절이다. 당시 병장 월급은 720환이었고, 대장 월급은 9만환이었단다. 125배다. 박정희 군사정권에서 이 격차는 더 벌어졌다. 병장 월급은 200원, 대장은 4만720원으로 203배였다. 이 격차를 확 줄여준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군인의 월급인상률은 문민정부 17.7%, 국민의정부 73.7%, 참여정부 322.1%, 이명박 정부 32.9%, 박근혜 정부 66.7%, 문재인 정부 150.4% 였다. 군은 군인을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았다. 계급과 신분제를 혼동해 공관병을 노예처럼 부리고 학대한 박찬주 대장 사건이 2017년 일이다. 서로 사랑했을 뿐인데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상대에 대한 추행’ 으로 처벌하려고 했던 것도 그 무렵 일이다.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기까지 5년 여 군의 동성애자들은 너덜너덜하게 털렸다. 막판에 “누군가 이러한 행위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고, 윤리적으로 비난할 수도 있지만 검찰 내부 논의 결과 합의된 성관계를 법의 영역에서 다루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이를 법의 영역으로 가져온 것은 국방부의 잘못된 판단이므로 무죄를 구형하고자 한다”는 검사의 무죄 구형이 나오기까지 진통이 길었다.
군인권센터는 가혹행위를 없애고 억울한 사건을 파헤치는 일만 하지 않았다. 그저 군인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상식을 되찾는데 애써왔다. 군은 모든 걸 촘촘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인간 구실을 못할 거라는 불신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다. 군은 나름 진지했다. “평일 외출을 실시할 무렵엔 평일에 외출을 내보내주면 너나없이 부대를 비우고 술에 취한 병사들이 부대로 복귀하지 않아 탈영병 잡으러 다니느라 분주해질 거란 우려가 많았다. 생활관을 침상형에서 침대형으로 바꾸고, 동기 및 근기수 생활관을 운영할 무렵엔 부대 단결이 저하되고 계급 질서가 무너진다는 걱정도 많았다.” 모두 기우였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허용하면 보안사고가 발생하고 도박, 유해 사이트에 빠져들 것이라던 군의 걱정도 이같은 과잉통제의 연장선에 있다. 병사가 주체적으로 자기통제와 사리분별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인가. 하나씩 바꿔나간 일들이 돌아보면 어이 없지만, 모두 어렵게 싸워야 했다. 군인의 인권도 열외가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놓고 현실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투쟁이 이어진다. 남자들만 입대하는 것이 차별이라는 문제 제기도 군인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정글이라 심각해진다. 군 문제는 여러가지 차원에서 정색하고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군인권보호 전담 조직이 등장하게 된 것도 시대적 소명이다.
글 | 정혜승(북살롱 오티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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