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바로미터 [2025.07~08] 종이 위에 피어난 인권
문자는 인류 문명에서 가장 큰 발명 중 하나다. 인간의 생각과 지식을 시각화하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전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쇄술의 등장은 이런 문자의 영향력을 폭발적으로 확장시켰다. 단지 정보를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 지식을 나누고 권리를 자각하며 인류의 인권을 향상시키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5세기 중반, 독일에서 발명한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은 기술의 혁신을 넘어 인류의 역사와 문명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의 책들은 모두 필사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고가의 희귀품이었다. 따라서 지식은 소수의 기득권층만 누릴 수 있는 전유물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보와 교육의 기회를 누리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인쇄술의 등장으로 책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누구나 지식을 읽고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이는 곧 교육 기회와 확대와 사회적· 정치적 참여로 이어졌으며, 계층 간 지식의 격차를 줄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식이 올바르고 자유롭게 통용되는 사회는 더 이상 권력의 통제 아래 놓일 수 없었기에 이는 자연스럽게 시민의 인권 향상으로 이어졌다.
활자의 물결이 불러온 혁명
역사 속에서 인쇄술은 여러 혁명적인 사건에서 그 위력을 발휘해왔다. 먼저 1517년,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무분별한 면죄부 판매와 같은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비판한 <95개 조의 반박문>을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 문 앞에 붙였다. 이는 곧 수천 장으로 복제되어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그 영향력은 종교의 권위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기존 권위에 도전하고 새로운 생각을 퍼뜨리는 힘은 인쇄술을 통해 비로소 현실이 되었다. 이후 계몽주의 시기에도 볼테르, 루소, 칸트와 같은 사상가들의 저작이 인쇄술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퍼지며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인권의 개념이 확산될 수 있었다. 이는 프랑스 혁명(1789~1799)의 사상적 근간이 되었다. 이렇게 일어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의식은 세계 각국의 헌법과 인권선언문 작성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인쇄술은 단순히 책을 찍어내는 용도가 아니라 비판적인 사고로 토론하는 시민의식을 만들어냈고, 그들 스스로 인권을 지킬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아침을 깨우는 페이지, 인권의 목소리가 되다
신문은 인쇄술의 발달이 남긴 가장 위대한 산물이다. 이는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는 핵심적인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문은 지금까지도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 보장, 권력 감시 등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를 실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신문은 언론의 자유와 인권의 가치가 위협받던 순간마다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빛이 되었다. 1970년 발생한 전태일 열사 분신 사건 당시,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던 그의 유서와 진정서를 구체적으로 소개한 신문 기사가 보도되자 전국적으로 노동자의 인권을 조명하게 되었고, 이는 노동 운동과 노동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또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일부 언론인들은 정부의 철저한 언론 통제에 맞서 검열을 뚫고 해외 언론과 협력하거나 비공식 인쇄물(대자보, 유인물)을 활용해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했고, 이 기록들은 진상 규명과 역사적 책임을 묻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때도 검열에 맞서 진실을 보도한 기사들이 전국적인 분노와 저항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이 시기의 신문은 단순한 사건 전달을 넘어 억눌린 여론을 조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신문은 오늘날까지도 인권 감시자의 자리에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앞으로도 신문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 권력의 부당한 행위를 감시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인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글 |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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