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8 > 지구인 이야기 > 군인의 인권, 명령과 양심 사이

지구인 이야기 [2025.07~08] 군인의 인권, 명령과 양심 사이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이 평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누린다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복무 중인 군인에게도, 병영 생활에 적응 중인 사람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복잡하다. 군이라는 공간이 ‘명령’과 ‘복종’이라는 고유한 질서를 기반으로 운영되며, 그 안에서 개인의 권리는 종종 후순위로 밀리곤 하기 때문이다.

 

군인의 인권, 명령과 양심 사이

 

국제사회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수십 년에 걸쳐 군인의 인권에 관한 기준을 정립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채택된 뉘른베르크 원칙은 "명백히 불법적인 명령에 복종할 의무는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단지 전쟁범죄 처벌의 근거가 아니라, 군인 개개인이 윤리적 책임의 주체임을 선언한 기준이었다. 그 이후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은 제18조에서 양심의 자유, 제19조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며, 군인도 이 권리의 주체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는 군인이 헌법과 국제법이 보장하는 '권리의 주체'라는 전제 위에서, 복종이라는 군대의 기능적 구조와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가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로 이어지고 있다. 모든 국가가 이 원칙을 동일하게 해석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국가의 사례는 이 기준들이 실제 제도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독일 기본법 제4조는 양심의 자유를 명시하며, 누구든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받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독일은 병역거부권을 제도화했고, 군 내에서도 명령이 명백히 위법하거나 양심에 반할 경우 복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원칙을 정립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군인은 단순한 국가 도구가 아니라, 책임 있는 시민이며, 양심의 판단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독일의 사례는 군의 조직성과 개인의 도덕성 간의 긴장을 법적으로 조율한 대표적인 예로, 군 내에서도 인간의 양심이 작동할 수 있도록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 또한 헌법에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현역, 예비역, 보충역의 복무를 대신하여 병역을 이행하기 위한 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최근에 도입된 대체역 제도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적 병역거부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에서는 큰 의의가 있다. 

 

미국은 군형법을 통해 명령이 ‘합법적일 경우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원칙을 명문화했다. 실제 법원 판례에서도, 군인의 판단력이 전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특히 미라이 학살 사건과 같은 사례를 통해, 국제사회는 군인이 '단순한 명령의 집행자'가 아니라, 도덕적 선택과 법적 책임을 지는 주체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현대 전쟁과 군사작전의 윤리적 통제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또한 영국 군법은 일반적으로 명령 불복종을 징계 사유로 보지만, 국제인도법(전시 국제법)에 명백히 반하는 명령은 예외다. 특히 전시 민간인 공격이나 고문 등 국제법 위반 명령에 복종한 경우, 복종한 병사 또한 형사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이 확립되어 있다. 이는 뉘른베르크 이후 형성된 국제형사법의 일반원칙과도 일치한다. 영국 사례는 국제 인권 및 인도법이 국내 군법체계와 어떻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며, 전시에도 인간의 권리가 전면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보편 원칙을 강조한다.

 

이처럼 국제 인권 기준은 군인들에게 ‘복종’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윤리적·법적 책임을 함께 지는 자율적 시민으로서의 군인을 상정하고 있으며, 국가들은 이에 부합하도록 시스템을 조정해 나가고 있다. 국제사회는 군의 특수성과 효율성을 존중하면서도, 그 속에서도 ‘인권의 공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발전시켜왔다.

 

특히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특별보고관들은 반복적으로 “군 내 권위주의가 인권침해의 토대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군인의 권리 보호가 인권 보장의 핵심 과제임을 환기시켜 왔다. 마틴 슈이나인 유엔 반테러 특별보고관은 군과 같은 안보기구의 권위주의적 구조가 폭력과 인권침해를 조장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앞서 살펴본 국제 기준은 단지 선언적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군대 안에서도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보편 가치의 구체적 실천 지침이다. 군인의 권리 보장은, 단지 병영 내 질서를 유지하는 문제를 넘어서, 한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특히 징병제 국가에서는 군 복무 경험이 청년 세대의 삶과 직결되기 때문에, 군대 내 인권 문제는 단순히 '특수한 조직'의 문제가 아닌, 시민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 감수성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올해로 출범 3주년을 맞는 한국의 군인권보호관 제도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탄생한 주목할 만한 국내적 실험이다.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앞으로 더 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국제 인권 기준에 대한 감수성과 정합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부당한 명령에 대한 문제 제기, 병영 내 차별 구조, 조직 내 인권 문화 정착 등은 모두 '군인의 권리'라는 이름 아래 연결되는 과제다. 이는 단순히 군 내부 문제 해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대라는 조직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원칙에 부합하도록 변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군인은 총을 든 시민이다. 그 시민이 ‘복종’만이 아니라 ‘양심’과 ‘책임’ 사이에서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인권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다. 그리고 그 임무를 수행할 제도가 바로 군인권보호관이다.한국과 같은 징병제 국가에서는 군인권보호관의 역할이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것이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이야기 해 온 ‘군인의 인권’을, 한국의 현실에서 온전히 실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글 | 백가윤(국민인권위원회 국제인권과)
본지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우리 위원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전 목록 다음 목록

다른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