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돌봄 [2025.07~08] 나와 전우의 취약함을 알아차리는 군인이자 시민
김희강 교수는 책 <돌봄민주국가>에서 ‘돌봄책임복무제’를 제안한다. 돌봄을 특정 누군가의 역할, 여성이나 가정 내 약자에게 떠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누구나 일정한 나이가 되면 돌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복무하자는 내용으로 구성된 제도다. 모두가 돌봄을 수행하기에 구성원 전체의 돌봄 역량이 올라가고, 돌봄이 국방, 납세, 근로, 교육과 같은 국민의 의무로 편입되며, 돌봄의 가치가 인정되며 서로 돌보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신선하고 흥미로운 제안이다.
“저는 이 제안 반대합니다.
어떻게 돌봄과 군대를 같은 급에 두나요?
돌봄과 군대는 정반대에요.
오히려 돌봄이 없는 곳, 폭력이 만연한 곳이 군대인데
같은 급으로 이야기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돌봄민주국가>로 독서모임을 하던 중, 해병대를 다녀온 한 남성 청년이 말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돌봄책임복무제라는 아이디어를 당위적으로만 보다가 그의 말 한마디에 현실 속에서 군대와 돌봄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그는 자신의 경험한 군대에서는 서로 취약함을 인정하고 의존하는 생활을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실제 군대는 돌봄의 정반대일까? 그러니까 군대에서 우리는 인간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서로 의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어쩌면 군인으로서 강인함이나 전투력, 전우애는 바로 이런 취약함을 배반하면서 얻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군대가 취약함을 포용하지 않을 때
과거에는 훈련이나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고문관’, ‘폐급’이라는 말을 붙였다. 2015년 ‘장병 병영생활 도움제도’로 시행되며 과거에는 이들을 관심 병사, 현재는 도움배려병사로 부르며 상담과 지원을 제공하며 적응을 돕는다. 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의 자살 시도나 집단적 가해 등이 자주 벌어졌기에 예방한다는 차원의 접근이었다.뉴미디어 언론인 ‘씨리얼’의 ‘군대 갔다와서 지금까지 트라우마 겪는 사람들을 모아보았다’ 편에서는 도움배려병사였던 이들을 모집할 때 댓글로 벌어진 설전을 소개한다. 일반병사였던 이들은 도움배려병사가 고의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자기 이익만 챙기며 공동으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을 기피했다고 말한다. 일반병사들이 역으로 피해를 봤다는 의견이었다.
도움배려병사와 일반병사 사이 정서적 간극이 좀체 좁혀지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둘 다 군대 내에서 취약함을 포용하지 않았기에 피해를 입은 것은 아닐까? 한 명이 실수하면 부대 전체를 얼차려를 시킨다. 한 명의 취약함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 그 한 명을 압박하고 전체가 그를 탓하게 하려고 말이다. 이런 경험은 누군가의 취약함을 혐오하게 만들고, 군대가 정한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죄악시하게 만든다.
군대 내 부조리와 가혹행위는 비단 군대 내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흔히 직장이나 대학 내 갑질, 기수문화가 있는 단체 등에서 보이는 폭력의 원인으로 병영문화가 꼽힌다. 어쩌면 전 사회적으로 인간의 본래 가진 취약함을 무시하는 데 군대의 병영문화도 한 몫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전쟁, 인간의 취약함을 전면에 드러내는 사건
취약함을 무시한다고 인간이 강인하기만 할까? 취약함은 인간 생의 조건이다. 우리는 누구나 취약했고 취약해진다. 아이나 장애인, 노인이 아니더라도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군인이 겪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 중 하나가 전쟁이다. 전쟁은 공동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트라우마를 남긴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군인들은 생각이 멈추고 일상적 활동이 불가능해지는 신경쇠약증을,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참전 군인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가벼운 노력으로도 강한 피로감을 느끼는 ‘노력증후군’을, 걸프전 참전 군인들에게도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소화 불량, 근육통, 관절통, 인지 장애 등이 ‘걸프전 증후군’을 주로 겪었다고 보고된다. 서로의 강함을 증명하려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은 인간의 취약함을 전면에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폭력이 아니더라도 군대의 상명하복과 감정의 통제, 자율성을 억압하는 경험은 심리적 외상을 남기기도 한다. 심리적 외상은 앞서 도움배려병사와 같이 군내 적응이 어려웠던 이들만이 겪는 문제는 아닐지 모른다. 군 생활을 잘 수행하는 이들에게도 정신 건강의 문제는 벌어질 수 있다.
해군 특수부대인 UDT 출신으로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는 방송인 덱스는 방송 중 합숙을 할 때마다 군대와 관련된 잠꼬대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소리하지 말고 뛰어내려”, “군기가 빠졌어. 열중 쉬어” 등을 내뱉는다며 함께 합숙을 한 방송인들이 우스갯소리처럼 증언한다. 제대한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몸 안에서 감정을 통제하고 누군가를억압하는 행위가 남아있고, 그 기억 속에서 시달린다는 건 웃을 일이 아닐지 모른다. 군대 내 취약함을 포용하는 방식이 단지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의 문제로만 축소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군대, 더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돌봄력이 필요하다
남성 청년들끼리 모여서 군대 이야기를 할 때 느끼는 순기능 중 하나는 바로 다름의 경험이다. 세상은 넓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많다는 걸 배웠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지역, 다른 학력,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섞이고 지내다 보니 내가 어떤 세상에 갇혀있었는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중산층으로만 살았던 세상에, 서울중심주의에 머물던 관점에, 대학 졸업을 당연하게 여긴 생각에 균열이 간다. 오히려 세상이 지나치게 단절돼 있어서 군대가 세상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 균열은 가진 이들의 변화다.
반대로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생기는 변화도 있다. 한 친구는 자신의 읽은 미국 노동계급 현실에 관한 책의 내용을 나눴다. 모병제 국가인 미국에서 가난한 이들이 군인이 되고 전쟁에 참전하는 양상을 비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군인 생활을 하면서 노동계급 가정에서 배우지 못했던 삶의 지식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단다. 외려 군인 생활을 하며 시민으로서 갖춰져야 할 덕목과 태도를 배웠노라는 증언을 덧붙였다. 군대의 경험이 시민성을 갖추는 바탕이 될 수 있다니.이런 순기능을 더 확장해볼 수는 없을까? 다름을 겪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서로의 취약함을 이해하고 응답하는 법을 배우는 군대는 불가능할까? 더 나아가 군 복무가 한 나라를 돌보는 일이라고 인식할 순 없을까? 해답이 없고 불가능할 것 같은 질문이지만, 어쩌면 군대가 더 강해지기 위해서라도 서로를 돌볼 수 있는 힘이 필요한지 모른다. 돌봄은 유약한 행위가 아니라 취약함에 응답할 수 있는 역량이다. 이를 돌봄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부조리와 가혹행위가 벌어진 후 구제하는 방식을 넘어, 사전 예방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취약함을 더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그 힘을 기르자.
돌봄력을 위한 작은 시작
그를 위한 작은 시작이 자기돌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단생활과 상명하복이 중심이 되는 군 생활에서 우리는 당연하게 감정을 억압하게 된다. 하지만 감정은, 특히 우울이나 무력함, 울분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억압하고 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외려 더 덩치를 키워서 마음을 장악할 때가 많다. 자기돌봄은 나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군 생활 중에서도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존중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나를 넘어 전우의 취약함도 알아차릴 수 있는 군인이자 시민이 된다.
글 | 조기현(작가)
본지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우리 위원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