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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보기 [2025.07~08] #4 빛고을 광주, 20년 나이테에 물든 희망의 무지개

 

세계인권선언 65주년
세계인권선언 65주년

 

2005년 10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지역사무소(첫 공식 명칭)의 시작을 알리는 풍물 소리가 대인동 골목을 휘감았다. 지역 시민사회의 강력하고 오랜 요구에 인권위원회가 화답함으로써 부산과 광주 지역에 인권 전담 국가기구가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후 광주인권사무소로 명칭이 변경되고, 2014년엔 대인동 광주은행 건물에서 금남로5가 아모레퍼시픽 건물로 사무실을 옮겼다. 2015년에는 인권교육센터가 별도 공간으로 문을 열었고, 광주지하철 1호선 김대중컨벤션센터 역사에 인권테마역사가 조성되었다.지역인권사무소는 조사, 상담, 교육, 홍보, 협력 등을 담당한다. 조사 업무의 경우 개소 초기 교도소 등 구금시설 면전진정 업무를 시작으로 2008년부터 교정기관, 2009년 다수인보호시설, 2014년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까지 확장되었다. 현재는 차별 사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 내 진정사건 조사를 인권사무소가 맡고 있다.

 

교육협력은 권리구제만큼이나 중요한 영역이다. 광주시는 전국 지자체 최초로 인권조례를 제정했고 광주시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 제정 직후부터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기에 지역 내 인권 논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에 부응해 광주인권사무소가 시민사회 및 인권단체와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면서 지역 내 위상을 높일 수 있었다.

 

 

광주인권사무소 20년간의 성과

 

광주인권사무소는 2025년 6월 현재 3만 5천여 건의 상담과 3만 8천여 건의 민원, 그리고 1만 1천여 건의 진정사건을 처리했다. 인권사무소의 조사 범위가 확장된 2014년부터는 진정접수 건수 및 처리 건수가 이전보다 3배까지 급증하여 매년 1천여 건을 조사하고 있다.

 

광주인권사무소는 인권교육이란 말이 낯설었던 지역에서 인권교육의 토대를 닦았다. 특히 민간에서 접근하기 어려웠던 행정공무원과 교사, 학생,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기초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 대상 인권교육의 본격적인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광주인권사무소를 매개로 국가기관과 인권단체의 협력 거버넌스가 공고해졌다는 점에서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2025년 6월 현재 광주인권사무소가 직접 주관한 인권교육 참가자만 무려 14만 명에 이른다.광주인권사무소는 인권 현안을 발굴하고 지역의 공동 과제로 집중시키기 위해 ‘분야별 토론회’를 운영하였다. 분야별 토론회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격월로 15차까지 진행되었는데, 광주인권사무소 담당 지역인 광주, 전남, 전북지역(초기에는 제주지역도 관활이었다) 내 장애, 여성, 이주, 비정규직, 북한이탈주민 등 사회적 약자들이 처한 주요 인권현안을 공론화했다. 토론회의 기획 및 평가를 통해 관계기관 및 시민사회단체와의 협력관계도 자연스럽게 강화되었다.

 

분야별 토론회는 2011년 9월을 기점으로 현안별 인권전문가 및 관계자를 초청하여 구체적인 인권정책을 학습하고 토론하는 ‘인권정책라운드테이블’로 전환하였다. 인권 업무가 막막한 초보 담당자와 산전수전 다 겪은 인권활동가가 한 자리에서 토론하고 배우는 소중한 자리였다. 민·관·학이 공동으로 학습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자리를 잡으면서 광주지역의 인권공동체는 조금 더 단단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인권과 민주주의, 아시아적 가치와 인권의 보편성, 국가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와 치유, 인권정책라운드테이블은 2022년 12월 100회 차를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 100번의 만남을 통해 장애학을 통해 본 장애, 한국 사회 노동문제 바로 이해하기, 학생인권조례의 경험과 과제, 한국 다문화주의의 재모색, 남성성과 젠더, 어린이 청소년이 놀 공간과 도시, 광주 복지 기준선 가이드라인 잡기, 치료와 돌봄, 인권과 효율 사이 등 수많은 인권 의제가 논의되었다.

 

세계인권선언 67주년
세계인권선언 67주년

 

광주인권사무소는 ‘청소년과 함께하는 인권골든벨’을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인권골든벨은 광주인권사무소가 개소10주년을 기념하여 광주시교육청과 함께 특별사업으로 기획하였다가 지역 내 열기에 힘입어 올해까지 11년째 지속되고 있는 사업이다. 중학생 청소년이 참여하여 인권을 주제로 퀴즈 풀이와 부대행사 등으로 공감·소통하는 프로그램이다. 형식은 서바이벌이지만 경쟁 방식을 지양하고 놀이와 체험, 팀별 미션에 집중할 수 있도록 운영 방식도 매년 진화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대표적인 협력사업 중에는 광주의 인권조례 제정이었다. 이것은 전국적으로 선례가 없었으며 지역 내에서도 고민이 닿지 않았던 분야였다. 광주인권사무소는 2008년 시의원, 구의원,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법학 연구자 등 17명으로 ‘인권조례연구모임’을 구성하고 지자체 조례에 대한 인권적 접근을 시작했다. 활동가 워크숍, 시민사회단체 공청회, 시의원 간담회 및 지방의원 인권의식 실태조사 보고회와 국제포럼을 거쳐 드디어 광주광역시 인권조례가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광주인권사무소는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광주에서 태동한 인권조례 제정 운동은 이후 전국 지자체로 번져 오늘날 지역 인권 보장 체계의 기초가 되었다.

 

인권테마역사
인권테마역사

 

다만, 위원회의 인권 조례표준안 권고 이후 대다수의 지역에서 조례가 유명무실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인권조례가 단지 행정만으로는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위원회와 인권사무소에게 새로운 숙제가 주어진 셈이다.

 

그리고 매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기념행사를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다. 광주인권사무소는 해마다 지역의 다양한 인권 현장에서 수고한 동료들을 격려하고, 연대의 악수를 나누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그룹별 장기 자랑을 준비하고, 단체활동가들은 소속 단체와 상관없이 광주인권사무소가 모집하는 합창단에 지원하여 주말마다 노래와 플래시몹을 함께 모여 준비했다. 모두가 같이 세계인권선언문을 낭독하고, 지역에서 같이 풀어가야 할 현안을 공유했다. 어느 해는 인화학교 대책위원회가, 또 어느 해는 세월호 시민상주 모임이, 다른 해는 근로정신대시민모임 등이 함께했다. 그렇게 지역 내 주요 인권기관과 50여 개 단체 소속 구성원, 시민들이 4~500여 석의 행사장을 가득 채운다. 광주광역시 지하철 개통에 즈음하여 2008년 김대중컨벤션센터역에 인권테마역사를 조성했다. 유아부터 초·중등 학생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체험교육을 진행했다. 선감학원 사진전, 혐오차별 마주캠페인 포스터, 인권공모전 포스터, 기후위기 포스터 전시 등 다양한 특별전시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의 한계 등에 부딪혀 2025년 5월 ‘우리가 함께 알아야 할 세계의 민주주의’ 기획전시를 마지막으로 16년간의 동행을 마무리했다.

 

권리구제를 위한 진정 사건들을 살펴보면 광주인권사무소는 32개 국·공립고등학교의 기숙사 내에서 학생들이 휴대전화 소지 및 사용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는 개별 진정사건을 접수하고 인권침해의 내용이 중대하다고 판단하여, 관할구역 내 150개 국·공립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직권조사를 시행하였다. 인권위 아동권리위원회는 고등학교 기숙사 내에서 학생들의 휴대전화 수거 또는 사용 제한을 중단하고 학생들의 일반적 행동 자유권 및 통신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각 교육감에게는 권고가 잘 이행될 수 있도록 지도·감독할 것을 권고하였다. 인권사무소에 직권조사 권한이 부여된 뒤 권고 결정이 나온 첫 사건이었다.

 

더불어 특정 지방자치단체에서 상사가 부하직원의 신축 주택에 대해 특정색으로 지붕 등을 도색하도록 한 것이 인권침해라는 진정이었다. 인권위 침해구제제2위원회는 계약직 공무원이라는 진정인의 신분적 특성을 고려할 때, 상사의 권유를 자발적 동참을 유도하기 위한 취지로만 보기 어려운 점, 사회 통념상 개인 주택의 도색은 개인의 사생활 영역이라는 점 등을 종합하여 진정인의 일반적 행동 자유권이 침해된 것으로 판단하고 구제 권고를 결정하였다. 지역 언론은 물론 중앙 언론도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다.

 

그리고 장애인 단체에서 17개 군의 읍·면·동사무소(이하 ‘주민센터’)를 대상으로 ‘장애인차별금지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장애인 화장실이 남·여 공용으로 설치되어 있어 이는 장애인차별에 해당한다며 진정을 제기하였다. 광주인권사무소에서는 해당 17개 군을 대상으로 서면 및 현장 조사를 시행하였고, 그 결과 진정의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하였다. 이에 인권위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는 지자체 주민센터의 남·여 구분 없는 장애인 화장실이 장애인차별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장애인 편의시설 개선을 위한 예산확보 및 계획 수립을 권고하였고, 각 지자체들은 단계적 개선을 약속하며 위원회 권고를 수용한 바 있다.

 

 

광주인권사무소 지금까지의 20년 그리고 앞으로의 20년

 

광주인권사무소가 지역의 인권 거버넌스 구축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관이나 행정과의 접촉면이 확대되어 온 정도에 비춰 민간 영역과의 연대와 협력도 강화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협력사업이 중단되었고 소통 공간도 줄어들었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국가인권위원회 조직 개편 과정에서 지역사무소 폐지를 거론했을 때 가장 강력하게 저항했던 세력은 지역의 시민사회였다는 점에서 인권사무소를 축으로 한 지역 인권 보장 체계는 인권위의 매우 중요한 우군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지난 겨울 비상계엄 이후로 지역사회에서 인권위의 신뢰도는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제 시민사회가 언제까지 위원회의 손을 잡아줄지 가늠하기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 광주인권사무소가 개소 10주년 기념행사에서 던진 화두는 ‘인권사무소 10년, 다시 인권에 길을 묻다’였다. 다시 10년이 지난 오늘, 인원도 초기보다 2배 가량 늘었고, 조사팀과 협력팀을 구분하여 업무 집중성도 높였다. 2019년 10월부터는 제주지역 업무를 제주출장소가 담당하게 되었다.

 

하지만, 확대된 업무와 영역만큼이나 그 속에 담긴 요구들은 더 복잡해졌다. 속내가 파악되지 않는 각종 교육들이 인권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지역 단위에서 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리박스쿨’ 파문에서 볼 수 있듯이 인권을 악용하면 무서운 독버섯이 자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 스무 살의 광주인권사무소가 다시 인권에 길을 묻는다. 오랜만의 인사에도 반갑게 맞이해 주는 많은 현장에서 여전히 광주인권사무소에 대한 기대가 확인된다는 점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올해 광주인권사무소에는 열혈 청년 조사관들과 온기가 물씬 풍기는 일꾼들이 있다. 20주년, 다시 시작하는 길에 비친 무지갯빛 희망이 반가운 이유이다.

 

광주국제평화포럼_인권조례워크숍 / 2015 골든벨
광주국제평화포럼_인권조례워크숍 / 2015 골든벨

 

 

글 | 고애순(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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