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바로미터 [2025.07~08] #2 군인권보호관 3년, 병영 인권의 나침반이 되려면
군인권보호관 제도의 출범과 상징성
2022년 1월, 대한민국 군대 창설 후 인권 보호를 위한 역사적인 이정표가 세워졌다. 바로 군인권보호관 제도의 출범이다. 군대는 오랜 시간 폐쇄성과 위계 중심의 군대문화가 자리잡은 집단으로 부당한 명령도 참아야 했고, 가혹한 처우에도 말을 아껴야 했다. 특히 사망 사고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내부에서 조용히 덮여왔던 아픈 과거가 있다.
특히 2014년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 2021년 고(故) 이예람 중사 성폭력 사망 사건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며, 군 인권 보호를 외부에서 감시할 독립기구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 결과 국가인권위원회법이 개정되고,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단순한 법제 변화가 아니다. 피해자 중심 조사, 독립적 시정 권고, 외부 감시 강화 등 대한민국 군대 인권의 판을 바꾸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퍼졌고, 군 안팎 모두가 조심스럽게 희망을 품었다.
군인권보호관 출범식, 2022. 7. 1(연합뉴스)
제도 이후의 현실, 반복되는 상처
그러나 제도 출범 이후에도 병영 내에서의 인권 침해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윤승주 일병,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건은 ‘제도가 있다고 해서 현실이 곧 변하는 것은 아니다’는 아픈 교훈을 남겼다. 특히 윤승주 일병 사건에서 유족의 진정을 군인권보호관이 각하하면서, 공정성과 독립성에 대한 심각한 신뢰 위기가 발생했다. 유족은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않고 각하했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고, 인권단체들도 “보복성 판단”이라고 규탄하였으며, 국가인권위원회는 유족과 인권단체들의 요청에 따라 결국 해당 보호관에 대한 기피 결정을 내리기도 하였다.
윤일병 유족 진상규명 진정 각하 규탄 기자회견, 2023. 10. 18(SBS뉴스)
병영 현장 감수성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곧바로 변화가 이루어지진 않는다. 진정한 변화는 그 제도가 누구의 삶 속에,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출범한 지 3년이 지났지만, 현장의 병사들은 여전히 제도를 ‘그림자’처럼 느끼고 있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인권교육은 대체로 형식적인 강의, 상급자의 설명 중심으로 진행된다.
“인권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상황이 벌어졌을 때 누구에게 말하고 어떻게 조치되는지는 체감할 수 없다. 야전부대 현실은 ‘이론’보다 복잡하고 ‘규정’ 보다도 정교한 감수성을 요구한다. 장병들이 느끼는 두려움, 위축, 불신 그리고 기대 없는 무관심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제도도 살아 움직일 수 없다. 군인권보호관은 이제 단지 군 밖의 감시자가 아니라, 군 안에서 장병과 눈을 맞출 수 있는 동행자가 되어야 한다.
제도의 현재 성과와 한계
군인권보호관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설치된 군 전문 인권 조사 기구로, 군 내부 사건에 대해 독립적인 조사, 시정 권고, 제도 개선 권고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제도 도입 전까지 군 인권 문제는 대부분 군 내부 사법체계 또는 행정조직에서 처리되었기에, 외부의 감시 없이 은폐되거나 축소되기 쉬운 구조로 의심받아 왔다.
군인권보호관 제도 출범 이후, 군 성폭력 사건, 가혹행위, 자살 사건 등 중대한 인권 이슈에 대한 조사와 시정 권고가 이루어지면서, 일정 부분 병영문화 개선의 동력이 마련되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특히, 병사 인권교육 강화, 피해자 보호 절차 개선, 민간 연계 시스템 확대 등은 긍정적인 진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인권 침해는 은폐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피해자 보호는 미흡하며, 제도 홍보는 부족하다. 특히 군 조직 내 고유 권한이 강한 만큼, 보호관의 시정 권고는 쉽게 무시될 위험이 있다. 현행 군인권보호관은 권고에 그치며 자료 제출 강제 권한, 형사 고발 권한 등은 없다. 이로 인해 폐쇄적 군 조직의 벽 앞에서 그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장병들이 느끼는
두려움, 위축, 불신
그리고 기대 없는 무관심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제도도
살아 움직일 수 없다.
향후 제도 강화를 위한 제언
홍보 강화와 접근성 확대
현재 야전부대에서는 군인권보호관 제도의 존재를 모르거나 제도의 이름은 알지만, 그 안에 자신들의 보호막이 있다는 확신은 갖고 있지 못한다. 오히려 ‘신고=문제병사’라는 낙인이 찍히고, 그 이후 부대 생활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강하다. 부대 방문을 통해 장병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실사례를 중심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예컨대, 매달 군인권보호관이 부대를 순회하며 비공식 간담회를 진행하고, 보호관 사무실과 직접 연결되는 ‘비공개 상담채널’을 홍보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신고 이후의 절차도 장병들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방식’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단지 진정을 ‘접수했다’가 아니라, “당신의 말이 기록되었고, 누군가가 그것을 귀 기울여 듣고 있으며, 불이익 없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이 전달되어 “신고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보호관의 존재와 역할을 반복해서 알릴 필요가 있다.
피해자 중심 조사 체계 정착
피해자와 유족의 심리를 보호하고, 그들의 진술이 존중되는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 사건의 실체보다 절차의 형식에만 매몰되면 피해자 보호라는 인권의 본질은 실종된다. 사건조사에서 유가족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피해자나 유족의 진술에 대한 적극적인 경청이 우선시 되고, 심리적 안정 지원과 2차 피해 예방 등을 중심에 둔 대응 체계가 절실하다. 이를 위해선 민간 인권단체 및 전문가와의 협업이 필요하고 제도화되어야 한다.
시민사회와의 연계 강화
군 인권은 더 이상 ‘군대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의 문제이며, 그 감시자는 국민이다.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군 중심적이고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그룹, 학계와의 정기 협의회를 통해 군 인권 문제에 지대한 관심과 군인권보호관의 업무에 대해 감시와 응원을 통해 투명성과 민주성을 확보할 수 있다.
독립성 강화와 실질적 권한 부여
현행 체계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인권위 상임위원이 겸직하는 형태로 행정부에 지나치게 의존적이다. 이러한 형태는 군인권보호관 제도의 독립성에 근본적인 한계를 초래한다.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국회 추천이나 민간 추천이 포함된 위원회를 통한 임명 방식이 필요하며, 독립 기구화도 중장기 과제로 논의되어야 한다. 또한, 현재 보호관은 시정 권고에 그치는 한계를 가진다. 자료 제출 강제권, 행정명령권, 형사 고발 권한 등의 실질적 권한이 부여되어야 조직 저항을 넘을 수 있다.
병영인권을 기대하며
3년이 지난 지금, 군인권보호관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장병에게 ‘신뢰의 이름’이 되었는가.”
“나는 유족에게 ‘진실의 창구’가 되었는가.”
“나는 아직 살아 있는 누군가에게 ‘버틸 힘’이 되었는가.”
진정한 인권 보호 제도는, 존재 자체보다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그 변화의 출발은 ‘현장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것이다. 변화는 언제나 천천히 온다. 어떤 제도는 시행착오 속에 흔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제도가 병영 한가운데서 누군가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군인권보호관은 단지 죽음을 막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그 제도가 생존을 지지하고, 존엄을 지키는 등불이 될 때, 우리는 병영 인권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군대의 인권은 사회의 거울이다. 병영에서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면, 그것은 민주사회 전체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으로 군 인권에 대해 우리 사회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2025년, 출범 3주년을 맞은 지금. 이제 우리는 제도의 ‘존재’가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이야기해야 할 시점이다. 더 이상 ‘상징’ 이 아니라 ‘신뢰’를 중심에 두고,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장병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지키는 방패이자 나침반이 되기를 기대한다.
글 | 박경철(세종사이버대 교수, 12대육군주임원사)
본지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우리 위원회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