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인권 [2025.03~04] 아동 인권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 『불안세대』
집집 마다 아이들 폰 때문에 난리다. 폰 좀 그만 보라고 잔소리는 해보셨겠지? 그런데 스스로 찔리기도 했겠지? 우리는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지만 스마트폰과 함께 한 세월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이폰이 국내에 처음 등장한 건 2009년이다. 불과 십수년 만에 우리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가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지 예상하지 못했다. 누구나 쓰는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불안과 우울을 키울 것이라고 상상 못했다. 평소 온갖 위험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느라 애쓰던 부모들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의 안전이 공격당하고 있다.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 미국 뉴욕대 교수의 <불안 세대>는 아동 인권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한글 부제는 ‘디지털 세계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병들게 하는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스마트폰과 SNS로 아이들 뇌를 망가뜨린 어른들의 직무유기를 고발한다”고 이 책을 추천했다.
아이들의 정신건강은 2010년 이후 급격히 나빠졌다. 청소년의 불안과 우울증이 국제적으로 동시에 늘어났다. 미국에서는 2010년 이후 10대 우울증 발생 빈도가 2.5배 증가했다. 모든 인종과 사회 계층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2020년 무렵 미국의 10대 여자아이 4명 중 1명은 우울증 에피소드를 경험했다. 이 시기 여자 청소년들의 자해 비율은 약 세 배 증가했다. 자살율은 167% 증가했다.
2023년 미국 대학생 상대 조사에서 37%는 “항상” 또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건가? 일단 어린 시절부터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바로 놀이다. 저자는
“수백 건의 연구에서 어린 포유류는 놀길 원하고, 놀 필요가 있으며, 놀이를 박탈당하면 사회적, 인지적, 정서적 손상을 입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고 지적했다. 다칠 수 있는 상황에서 놀이를 해보아야만 다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상처를 참고, 감정을 조절하고, 다른 아이의 감정을 읽고, 차례를 지키고, 갈등을 해결하고,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법을 배우는 것도 놀이의 효과다.
폰으로 노는 것도 놀이 아니냐고? 상호작용이 다르다. 폰에서는 비체화된 방식, 비동기화된 방식, 일대다 방식으로 혼자 놀거나, 참여와 이탈이 매우 쉽다. 폰은 아이들을 진짜 놀이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경험 차단제’란 얘기다. 폰 사용 시간이 늘어나면서 “거의 매일” 친구들을 만난다는 아이들 응답비율이 2010년 이후 역시 급격히 감소했다.
친구와 있어도 폰 ‘알림’이 울리면 대화가 중단된다. 친구는 알림보다 덜 중요한 존재다. 미국 10대는 깨어있는 동안 1시간에 평균 11개의 커뮤니케이션 알림을 받는다. 5분당 1개씩 알림이 온다. 게임이 우정에 도움이 된다고 얼핏 생각할 수 있겠지만 조사 결과, 미국의 12학년 남학생 중 외로움을 호소한 응답은 2000년 28%에서 2019년 35%로 늘었다.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미국 남성은 1990년대 3%에서 2021년 15%로 늘었다. 2021년 ‘지난 6개월 사이 중요한 개인적 문제로 대화를 나눈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젊은 남성 28%가 없다고 답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바깥은 위험하고 폰을 보면서 노는 것은 안전하다는 식의 사고다. 일단 부모들의 안전 지상주의가 강해졌다. 이게 아이에게 해롭다. 어떤 위험에도 노출시키지 않으면 아이가 불안을 극복하거나 위험에 대처하거나 자신을 관리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가 없다. 갈등과 좌절에 대처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다. 가상세계의 게임은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 필요한 종류의 위험을 배제한다.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아이는 방어 모드에 머무는 청소년이 되기 쉽다고 한다. 방어 모드가 되면 덜 배우고, 가까운 친구도 적으며, 불안을 더 많이 느끼고, 일상적 대화와 갈등에서 고통을 더 많이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 세계에서 자녀를 과잉보호하는 반면, 온라인에서는 과소보호하고 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어른들이 현실 세계 접근을 점점 차단하던 시기에 가상 세계는 접근이 더 쉬웠고 더 매력적으로.보였다. 하지만 아동이 성적 학대를 당하는 온라인 사진과 영상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아이들의 포르노 접근도 무방비 상태란 건 인정하자. 아이는 가상 세계의 바이럴리티, 익명성, 불안정성, 대규모 공개 모욕의 잠재성에 잘 대처하도록 진화하지도 않았다. 사이버 세상의 집단 괴롭힘은 2011~2019년 남자 고등학생 10명 중 1명, 여자 고등학생 5명 중 1명이 경험했다. 평일 소셜미디어 5시간 이상 쓰는 여자아이는 전혀 안쓰는 아이보다 우울증 걸릴 확률이 3배 높다. 소셜미디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저자는 소셜미디어가 심란함을 초래하는 원천이며 세상의 지혜로운 전통과 정반대 방식으로 사람들을 길들인다고 우려했다.
“자기 자신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라, 물질적이고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뽐내고, 옹졸하게 행동하라, ‘좋아요’와 ‘팔로워로 계량화되는 영광을 추구하라.”
이런 학습을 10대부터 하는 건 정말 괜찮을까? 소셜미디어가 가져온 번뇌는 여러가지다. 대다수 종교는 주관적 판단으로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는 너무 빨리 분노하고 너무 느리게 용서한다. 소셜미디어는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과거 불가능했던 속도로 남을 평가하고 심판하라고 조장한다. 영적 고양이라는 인류의 오랜 경험이 퇴화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강한 공동체는 뭔가가 사람들을 낮은 차원에서 끌어올려 강렬한 집단 경험을 하게 만들때 나타난다는데, 신성한 영역의 교감을 온라인에서 기대하기는 어렵다.
조목조목 우려를 정리하던 저자는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의 해악을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사회적 박탈.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2012년 하루 122분에서 2019년 67분으로 줄었다. 둘째는 수면 박탈. 스마트폰 시대 전세계 선진국 청소년들의 수면은 질과 양에서 모두 나빠졌다. 셋째, 주의 분산. ‘도둑맞은 집중력’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넷째 문제는 중독이다. 중독은 불안과 과민성, 불쾌감 등의 금단 증상을 가져온다.
그런데 우리가 몰라서, 아무 생각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척척 사주던가? 가급적 버텨보려다 끝내 넘어가는 수순 아니던가? 친구들 다 쓰는데 왕따라도 당하면 어떻하지? 단톡방에 우리 아이만 빠져도 괜찮은가?
최소한 고등학교 진학 전까지는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한다든지, 16세 이전에는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든지,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 장치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감시를 받지 않는 놀이와 아동의 독립성을 더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고심해야 한다. 여기에 저자는 나름 현실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예컨대 ‘8학년까지 기다리자’(Wait until 8th)는 모임은 학교와 학년이 같은 아이를 둔 가정 10가구가 서명할 때만 구속력이 있다.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도 자신이 ‘유일하게’ 배제됐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고심한 아이디어다.
사실 저자의 고민을 따라가다보면, 우리 아이들이 제대로 놀지 못하는 것이 오직 스마트폰 때문이라고 하는게 비겁한 핑계 같다. 유치원에서부터 한글과 영어를 함께 배우느라 애쓰고, 학원 뺑뺑이 하느라 놀이터에 아이들이 사라진 사회에서 우리는 아동학대 공범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어른들의 법정근로시간보다 더 긴 시간, 아이들은 공부한다. 밥벌이에 바쁜 부모가 어쩔 수 없이 방치한 덕에 폰이라도 붙잡고 자라는 아이들도 있다. 최소한 중학생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더 많은 공적 자원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우울하고 불안해 자해하는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 현상을 보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건 어른의 일이 아니다. 친구를 사귀고, 공감을 배우고, 감정 조절을 배우고, 대인관계 기술을 배우는 것을 폰에게, AI에게 맡기지 말자.
글 | 정혜승(북살롱 오티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