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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보기 [2025.03~04] #2 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것 그 깊은 슬픔

 

나는 아들(자폐상 장애)이 다니는 특수학교의 학부모회장이다. 방학 중 학교로부터 두 번의 연락을 받았다. 두 번 다 재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병과 사고로 인한 죽음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연달아 장례식장을 다녀오면서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마음. 영정 사진 앞에서 “나는 계속 @@이 엄마가 하고 싶어요”라고 울부짖던 목소리가 가슴에 맴돈다.

 

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것 그 깊은 슬픔

 

그런 말을 한다. 발달장애인의 부모 소원은 자식보다 하루 더 사는 거라고. 정말 그럴까? 그 말을 바꿔 말하면 자식이 나보다 빨리 죽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부모가 살아생전 자식의 장례를 치르는 게 소원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다녀온 두 번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부모들은, 발달장애인의 부모를 대표해 소원을 성취하기라도 한 사람들이란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내 아들은 발달장애인이다. 올해 고등학생이 됐는데 아직도 두 세 살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은 돌봄이 24시간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최중증 장애인이다. ‘발달장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들 얘길 듣는 순간 “엄마가 안 됐다” “힘들겠다”고 한다.

 

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것 그 깊은 슬픔

 

하지만 아들과 함께하는 삶은 힘들지 않다. 물론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아직도 양치를 해줘야 하고, 똥도 닦아줘야 하고, 옷도 입혀줘야 하니까) 육체적 힘듦은 그것마저도 일상이 되어버리고 나면 더는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 루틴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러한 삶의 형태가 당연하게 몸에 익어버리는 것이다.

 

중요한 건 ‘마음의 힘듦’이다. 마음이 힘든 건 육체가 힘든 것에 비할 게 아니다. 다행히 “아들 때문에 인생이 저당잡혔다”고 울고불던 시절은 10년 전에 지났다. 지금은 오히려 발달이 느린 아들 덕분에, 발달장애로 인해 마음속이 온통 투명한 아들 덕분에 집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것 그 깊은 슬픔

 

“너 아니면 우리가 웃고 살 일이 뭐가 있겠니”.

 

남편과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이렇게 아들 덕분에 남들보다 더 많이 웃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마음속 깊은 곳엔 ‘큰 슬픔’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슬픔은 아들이 장애인이어서도 아니고, 아들이 말을 못 하거나 특정한 상황에서 도전적 행동이 나오기 때문도 아니다. 그 슬픔의 근원은 ‘나의 죽음’이다. 엄마인 내가 없는 어느 날에도 혼자 남겨져 살아가야 하는 아들을 떠올릴 때면 느껴지는 깊은 슬픔인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엄마로 사는 이 삶에 특별함이 있다면 그건 늘 생(生)을 살면서도 사(死)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이다. 엄마인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아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엄마인 내가 옆에 있는 동안에>가 아들 생존의 디폴트값이 되어버리면 반대로 엄마인 내가 죽는 순간부터 아들의 삶은 지옥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아들을 양육하고 교육하고, 함께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는 모든 일은 내 사후에도 아들이 이 세상에 잘 적응해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비장애 자식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걱정과 우려를, 아들이 최중증 발달장애인이기에 늘 가슴에 담고 사는 것이다. 내 소원은 아들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내 소원은 나는 잘 죽고 내가 죽은 후에도 아들은 잘 살아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것 그 깊은 슬픔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실감하고 있다. 이제 3년 후면 아들은 성인이 된다. 성인이 된다는 건 기존에 속해있던 ‘특수교육’의 품을 떠나 ‘사회복지’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뜻이다.

 

성인기를 잘 보내기 위해선 학령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궁금했다. 운이 좋게도 전직 기자, 현직 작가로 활동한 덕분에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발달장애인의 성인기 삶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알게 됐다. 발달장애인의 성인기 삶에선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자느냐는 ‘밤 생활’의 주거 양식이 낮 활동의 형태까지 좌지우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하지만 현재의 복지정책은 ‘시설 입소’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을. ‘그룹홈’이라는 소규모 주거 형태마저도 그 안에서의 생활 양식은 ‘관리형’의 시설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중증 장애인인 아들이 1:1의 지원을 받으며 자유롭게 도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립지원시스템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아들은 아직 어렸다. 언젠가 내가 없는 세상에서 살기까진 20년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을 터였다. 그러니 나는 포기하면 안 된다. 나 없는 세상에서 아들이 24시간 지원인력(활동지원사, 근로지원인, 주거코치, 주거 코디네이터)의 1:1 돌봄을 번갈아 받으며 자기 명의의 임대주택(서울시 지원주택)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남은 20년 동안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열심히 글을 써서 정책 변화에 힘을 보태고 여론을 조성해 나가는 것. 그것이 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장애인의 부모로 산다는 것 그 깊은 슬픔

 

지난 2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됐다.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지만 중증의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도 지역사회 안에서 자립해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눈물이 날 만큼 반갑다.

 

법안은 통과됐으니 남은 건 예산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정책이 있어도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주지 않으면 정책이 무용지물인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봐 왔다. 이제부턴 기획재정부 예산 편성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리라 다짐한다.

 

그리하여 정말로 20년 후에 그날이 오면, 내 살아생전에 아들이 자립해서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는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나는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부채춤이라도 추겠다. 그날이 오면 발달장애인의 엄마이기에 가슴 깊이 묻어둔 ‘깊은 슬픔’도 눈 녹듯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아들의 손을 잡고 세상으로 향한다.

 

 

글 | 류승연(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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