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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025.01~02] #2 민주주의의 보루, 광장의 시민들

 

민주주의의 보루, 광장의 시민들

 

어느 겨울밤 느닷없이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 ‘비상계엄’이라는 이름을 한 중무장한 군인들과 장갑차들이 들이닥쳤다. 많은 사람이 그 소식을 처음 접한 순간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라고 회고했다. 그만큼 이 시대, 이 나라에 일어날 수 있으리라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현실임을 확인한 뒤에, 나이 든 사람들은 과거 독재 시대에 군인들이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가던 기억이 수십 년 만에 다시 떠올라 손이 벌벌 떨렸다 했고, 젊은 사람들은 책과 영상에서 보았던 군사 통치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 그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세계 10대 경제강국이자 고도로 발전된 정보사회,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활기찬 ‘K팝’의 나라인 한국에서 군사 통치가 시도되었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다음 날 아침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등 세계 많은 나라의 방송과 신문에서 톱기사는 단연 “한국에서 계엄 선포”였다.

 

하지만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국의 또 다른 모습이 있었다. 계엄 선포 직후 수천 명의 시민이 한밤중에 국회 앞으로 뛰쳐나와 장갑차를 가로막고 중무장한 군인들 앞에 섰다는 사실이다. 해외의 많은 신문과 방송이 국회의사당 유리창을 깨고 진입한 군 특수부대원들의 모습과 함께,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군인들에 맞서고 있는 장면, 청년들이 장갑차를 가로막고 선 장면을 일제히 보도했다. 또한 이 시민들을 마주한 젊은 군인들 역시 권력에 눈먼 지휘관들의 명령에 맹종하지 않고 시민들의 안전을 존중했다. 군을 사욕의 도구로 타락시킨 것은 장군들이었고, 그 와중에도 군의 명예를 지킨 것은 병사들이었다. 시민들 덕분에 국회의원들은 12월 4일 1시 1분에 계엄해제 요구안 결의에 성공했다. 만약 이날 용기 있게 행동한 시민들이 없었다면 계엄사령부의 포고령대로 정치활동과 집회결사가 완전히 금지되고 언론·출판을 군이 통제하는 시대가 되었을 것이다. 매우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되찾기 위해 또 다시 많은 피를 흘려야 했을 것이다.

 

민주주의의 보루, 광장의 시민들

 

계엄 해제 후 수십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비상계엄 선포에 항의하고 엄정한 사법처리를 촉구하는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과거 계엄과 독재를 경험했던 중·장년층도 많지만,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그에 못지않게 활발히 참여했다. 젊은이들은 민주주의와 자유, 법치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살아왔다. 물과 공기처럼 당연시되던 그 전제가 파괴되는 걸 경험하면서, 그것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지켜야 하는 것임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 12월 10일 발표된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를 막는 청소년 시국선언’에는 무려 5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21세기 세계 청소년 운동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초대형 시국선언은 “폭력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무너뜨리고 후퇴시키려 드는” 시도들에 대해 “청소년도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서 행동할 것이며, 우리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되찾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계엄으로 다 쓸어버려야 한다’는 폭력적 언어를 쉽게 내뱉은 기성세대는 이 청소년들 앞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민중가요에서 K팝 떼창까지

 

민주주의의 보루, 광장의 시민들

 

광장의 시민들은 이번에 ‘응원봉 집회’라고 불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집회문화를 만들어냈다.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시민들이 함께하는 집회에서, 청년들과 청소년들이 중심이 되어 음악에 맞춰 춤추고 구호를 외쳤다. 진지함과 즐거움, 정치와 문화가 한데 섞였다. 시민들은 손발이 꽁꽁 얼 정도로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늦은 밤까지 함께 노래하며 연대의 힘을 느꼈다. ‘응원봉’과 ‘K팝’이 어떤 ‘가벼움’을 뜻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역사적으로 민중들의 집합행동은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풍자와 해학, 자부심과 여유로움은 저항적 민중문화의 본질적 구성요소다. 한국에서도 1970~80년대 잔인한 독재국가 치하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집회에는 언제나 풍물패가 함께 있었다.

 

2024년 겨울 시작된 집회에서도 시민들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데이식스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부르면서 민주주의와 시민주권을 외치고 있다. 이렇게 ‘K팝’이 집회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08년 촛불집회 때 전면에 등장한 이후 지속되고 있는 21세기 한국 집회문화의 특성이다. 2008년 당시 ‘힙합 촛불소녀’라고 불린 여중생들이 집회에 나와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은 엄숙한 집회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신선한 문화충격이었다.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의 밝은 에너지는 당시 1500명이 넘는 시민을 연행해 간 국가권력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최신 대중문화가 오래된 운동문화와 함께 하나의 집회 공간에서 어울리는 현상은 2000년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이다. 집회에서 사람들은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바위처럼>, <광야에서> 같은 권위주의 시대의 민중가요, 그리고 <헌법 제1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처럼 새로 만들어진 노래들과 더불어, <오 필승 코리아> 같은 비정치적 노래를 함께 불렀다. 이후 집회장의 대중가요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데이식스의 <웰컴투더쇼>, 로제의 <아파트> 등으로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는 한국 시민들의 놀라운 문화적 창조성을 보여주는 사회현상으로, 전 세계를 향해 K팝과 같은 ‘글로벌 소프트파워’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다양성 존중과 네트워크의 힘

 

민주주의의 보루, 광장의 시민들시민들은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할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 ‘촛불집회’는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희생된 두 여중생인 미선과 효순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후 ‘촛불집회’는 2016~17년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이르기까지 십여 년 동안 시민들의 새로운 자발적, 민주적 집회를 상징했다. 물론 과거에 사회운동 단체와 노동조합, 농민단체 등 조직 단위로 참여하던 집회들이 비자발적, 비민주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체 내에서 집회 참여 여부와 이슈를 토론하고 집회 후에 평가 토론을 하는 등의 공식적 절차들은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촛불집회의 새로운 점이라면, 21세기의 개인화된 네트워크 사회에 조응하는 자발성과 민주성의 방식을 개발했다는 데 있다. 집회 참여 여부, 방식과 강도 등에 대해 각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면서도 가족, 교우관계, 직장동료,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연결망서비스 등 다양한 경로로 참여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그 많은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가 거대한 촛불의 바다를 만들어내는 중이다.

 

그와 같은 다양성 속의 연대, 연대하는 다양성의 특성이 이번 2024년 집회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촛불집회의 ‘촛불’은 작고, 약하고, 평화로우면서도 크고, 강하고, 어둠을 이기는 빛들의 하나 됨을 상징했다. 2002년 시작된 초기 ‘촛불집회’의 시대가 2024년 막을 내리고 이제 ‘응원봉 집회’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본래 촛불집회는 수많은 참여자가 촛불을 손에 쥐고, 그 촛불들이 집회장에 바다처럼 펼쳐지고 행진 시 강물처럼 흐르는 형상이었다. 이와 달리 응원봉 집회에서는 모든 참여자가 제각각 다른 모양과 색깔의, 다른 문구가 새겨진 응원봉을 들고 집회장을 수많은 색의 향연으로 만든다. 청년들과 청소년들은 자신의 ‘최애’ 응원봉을 흔들고, 응원봉을 처음 구매하는 어른들은 가장 마음에 드는 색깔과 모양을 선택한다. 개인성과 다양성이 초기 촛불집회보다 더 분명하게 물질적으로 구현되는 연대의 형식인 셈이다.

 

민주주의의 보루, 광장의 시민들

 

그런 특성은 ‘깃발’에서도 나타난다. 집회장에 휘날리는 셀 수 없이 많은 깃발들은 이번 집회의 다양성과 참여자들의 주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깃발’의 의미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과거 집회 참여자들은 정당, 노조, 사회운동단체 등 조직을 단위로 구성돼 왔기 때문에 집회장에서는 참여 조직들의 깃발들이 펄럭였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촛불집회에서는 개인 단위 참여자가 많다 보니, 시민들은 단체들을 향해 집회의 주인인 것처럼 깃발을 세우지 말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다 보니 단체들은 깃발을 휘날리며 행진해서 집회장까지 왔다가도, 막상 행사가 시작되면 깃발을 바닥에 눕혀놓곤 했다.

 

그런데 2024년의 주목할 만한 풍경은 셀 수 없이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많은 깃발들이 집회장을 가득 채웠다는 점이다. 노조, 농민단체, 대학 학생회와 동아리, 그리고 환경단체, 페미니즘 단체, 기후운동 단체, 성소수자 단체 등 사회운동단체들, 또한 전국 각지의 주민단체, 협동조합, 소모임, 종교 공동체, 봉사모임, 온라인 커뮤니티의 정모 멤버 등 다채로운 성격의 깃발들이 모였다.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이 마음과 소망을 표현하는 깃발을 별도로 제작한 경우도 많았다. ‘논문 쓰다가 뛰쳐나온 사람들’, ‘대한 중2 학부모 연맹’, ‘세계 No. 1 한국 청년’, ‘기말고사 공부하다 나온 중학생 모임’ 같은 재미있는 깃발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이런 양상은 2008년이나 2016년 집회에서도 일부 있었으나 2024년 집회에서 두드러졌다. 이처럼 다양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시민문화에 계엄통치란 얼마나 기괴한 정치형태인가?

 

 

공감의 공동체, 사회의 학습장

 

광장의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경험은 뭐니 뭐니 해도 집회 현장에서 이뤄지는 낯선 타인들과의 소통, 이해, 공감, 학습의 과정, 그리고 이를 통한 민주적 인식의 확장이다. 사람들은 집회에서 몇 시간 동안 몇 개 되지 않는 구호를 반복해서 외치고 또 외치지만, 집회 참여자들이 구호만 외치고 헤어진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집회장에서는 일상생활에선 도저히 일어날 수도 없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는 엄청난 범위와 밀도의 커뮤니케이션이 집중된다.

 

소통의 ‘범위’에 관해 말하자면, 평상시에 사람들은 보통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타인들과 주로 접촉하기 때문에 서로 소통하는 경험이나 세계관도 제한되는 데 반해, 집회 광장에서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접한다. 중고등학생들은 대학생 사회운동 단체를 만나고, 대학생들은 노조, 농민단체들을 만나며, 노조와 농민단체는 기후·여성·퀴어운동 단체를 만난다. 이처럼 폭넓은 조우는 오직 촛불집회나 응원봉 집회처럼 대규모의 집합적 행위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경험이다. 소통의 ‘밀도’ 역시 특별하다. 집회 때마다 열리는 자유발언 시간에 사람들은 무대 위에 오른 청소년, 대학생, 노동자, 농민, 자영업자, 청년 구직자,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자, 사회적 참사 유가족이 들려주는 ‘자기 이야기’들을 듣는다. 이를 통해 지금껏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우리 사회 현실들을 새로이 알아가는 경험을 한다. 계엄 이후 여러 차례 개최된 시민집회에서는 매번 그와 같은 소통의 장이 준비되었고, 시민들은 자유발언을 신청한 뒤 오랫동안 줄을 서서 대기할 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민주주의의 보루, 광장의 시민들

 

민주주의의 보루, 광장의 시민들소통에 따른 공감의 확대는 실제적인 행동의 연대로도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로 2024년 12월 21일과 22일 경기도에서 서울 남부로 들어오는 입구인 남태령 고개를 들 수 있다.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트랙터를 몰고 올라오던 농민들이 경찰에 의해 봉쇄되자 광화문에서 저녁까지 집회를 하던 많은 시민들이 남태령으로 달려가 농민들과 결합했다. 농민과 노동자, 기후운동 단체들, 그리고 젊은 여성들이 밤을 새우고 발언을 경청하면서 서로를 배우고 이해하는 경험을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는 미디어와 인터넷에 유포되어 있는 ‘노조’에 대한 편견, ‘MZ세대’라는 허상, ‘페미니스트’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고 더 넓은 연대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간다. 그런 의미에서 광장은 공감의 공동체, 사회의 학습장이면서, 또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보루, 광장의 시민들

 

2024년 12·3 비상계엄은 1987년 민주화 이후 37년이 지난 후에도 이 나라의 국가기관 내에 반민주적, 반인권적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했다는 뜻은 아니다. 독재와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민주적 시민사회의 힘이 수십 년간 축적됐다는 것이 12·3 계엄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에서 분명히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한 나라 안에 이처럼 상반된 두 현실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지금 한국사회의 격렬한 정치적 갈등의 근원이다. 만약 국가가 권위주의적인데 시민들의 심성 역시 그러하다면 국가와 사회 간에 충돌은 없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시민들이 민주적인 만큼 국가 역시 민주적인 경우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 유산에 근거한 국가권력과 민주적이고 다원주의적 지향이 강렬한 시민사회가 충돌하고 있다. 상반된 두 힘 가운데 어느 쪽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미래는 예정되어 있지 않으며, 우리 시민들의 각성과 참여에 달려 있다. 깨어있는 시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으며, 침묵하는 신민을 두려워할 권력도 없다.

 

 

글 | 신진욱(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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