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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바로미터 [2024.11~12] 공공의 적이 된 암표, 왜 문화향유권의 침해인가

 

‘손꼽아 기다렸던 그 날이 드디어 다가왔어/ 오늘이 최애 공연 티케팅의 날…/ 결국 티켓을 놓쳤다/ 맘은 너무나 아팠고…/ 근데 왜 중고거래에 티켓이?/ 안돼 안돼 암표 안돼…/ 암표 Out/ 우리가 바꿔가’. 가수 정동원이 부른 암표 근절 캠페인 노래 ‘안돼 안돼’의 가사 일부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10월 정동원 가수를 공연분야 암표 근절 캠페인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암표 근절 캠페인에 들어갔다.

 

공공의 적이 된 암표, 왜 문화향유권의 침해인가

 

활개 치는 암표 거래, 3,400건에 이르는 신고 접수

 

이는 암표 문제가 캠페인을 벌여야 할 만큼 심각하다는 의미다. 암표는 이익을 챙길 목적으로 웃돈을 얹어 거래되는 입장권이나 교환권·탑승권 같은 표, 티켓을 말한다. 유명 가수·배우의 공연·팬 미팅 같은 대중문화, 야구·축구 같은 프로스포츠 분야에서 공공연하게 거래된다. 물론 암표 판매는 불법행위, 범죄다. 현행 법률상 ‘경범죄처벌법’ ‘공연법’ ‘국민체육진흥법’ 등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그럼에도 암표는 뿌리 뽑히지 않고 여전히 활개 치는 상황이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는 암표 문제의 심각성이 확인됐다. 한국콘텐츠진훙원이 강유정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올해 7월까지 콘텐츠진흥원이 운영 중인 대중문화예술분야 온라인 암표 신고센터에 접수된 암표 신고는 3,400건에 이른다. 공연 유형별로 보면, 음악 분야의 암표 신고가 전체의 75%인 2,556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팬클럽 미팅·페스티벌이 519건, 게임분야 200건, 뮤지컬 125건 등이었다.

 

조사 결과, 실제 암표가 많이 발생한 공연은 ‘싸이흠뻑쇼’, ‘나훈아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 ‘2024 윤하 20주년 콘서트 <스물>’, ‘THE BOYZ 2ND WORLD TOUR : ZENERATION’ 등이었다. 암표는 주로 중고거래 플랫폼이나 X(옛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거래됐다. 심지어 가짜 티켓들도 있었다.

 

스포츠 부분 암표 신고 추이, 문화 부분 암표 신고 추이

 

 

콘서트, 프로야구 경기 등에서 활발...
‘매크로 프로그램’과 ‘직링’ 통해 확보

 

경찰에 검거된 암표 판매사범들의 조사 결과도 암표 거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서울경찰청이 20~30대 암표 판매상 7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유명 가수 콘서트와 뮤지컬 티켓을 대량 확보한 뒤 되파는 수법으로 폭리를 취했다. 티켓을 구하기 힘든 것으로 유명했던 가수 임영웅 콘서트 티켓은 정가의 4배가 넘는 웃돈을 붙여 팔았다. 배우 변우석의 팬미팅 티켓은 정가의 30배가 넘었다. 이외에 나훈아 콘서트, 뮤지컬 ‘드라큘라’ 등의 암표를 통해서도 불법 이익을 챙겼다.

 

2024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지난 20일 오후 광주 남구 봉선동 한 PC방에서 야구팬들이 티켓 예매를 하기 위해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뉴시스
2024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지난 20일 오후 광주 남구 봉선동 한 PC방에서 야구팬들이 티켓 예매를 하기 위해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뉴시스 [출처] - 데일리안 [원본링크] - https://www.dailian.co.kr/news/view/1419889/?sc=Naver

 

최근 암표 거래가 늘어나는 추세도 확인된다. 문체부에 따르면, 대중문화예술 분야 온라인 암표 신고센터에 접수된 암표 신고는 2020년 359건에서 2021년 785건, 2022년에는 4,224건으로 급증했다. 인기가 높은 프로스포츠도 마찬가지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운영 중인 ‘프로스포츠 온라인 암표 신고센터’에 접수된 암표 거래 건수는 2020년 6,237건, 2021년 1만 8,422건, 2022년 3만 6,823건, 2023년 5만 1,915건에 이른다. 올해 1~8월에만도 5만 1,405건으로 지난 한 해 수치에 육박한다. 종목별로는 프로야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암표 거래 증가는 기술발달과 SNS의 확장, 이에 따른 전문화·조직화가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 컴퓨터 자동프로그램으로 수백 장의 티켓을 순식간에 챙기는 매크로 프로그램은 대표적인 암표 확보 수단이다. 또 예매 버튼을 누르지 않고 예매창에 들어가 예매하는 ‘직링’(직접 링크)도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확보한 티켓을 SNS 등을 통해 손쉽게 되팔아 불법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행복추구권에 해당하는 ‘문화기본법’은 지켜져야 한다

 

암표는 당연히 경제·사회·문화적으로 갖가지 부작용을 낳는다. 모두에게 공정해야 할 티켓 확보 기회를 박탈해 공정한 구매가 이뤄지지 못하게 만든다. 자유시장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다. 공연과 스포츠 생태계 전반의 건전한 성장이나 발전에도 큰 해를 끼친다. 급변하는 디지털 사회 속에서 컴퓨터 활용에 취약한 계층의 디지털 격차, 불평등도 심화시킨다. 무엇보다 암표는 우리 모두, 인간의 기본권이라 할 문화향유권(문화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

 

문화권은 문화예술을 누구나 골고루 누리고 즐길 권리, 이를 통해 보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말한다. 문화권이 낯선 이들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가 가지는 아주 중요한 권리의 하나다. 헌법 제2장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의 하나가 문화권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문화에 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규정한 ‘문화기본법’이 존재한다. 문화기본법 제4조는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정치적 견해,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이하 문화권)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5조에서는 국민의 문화권 보장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까지 두고 있다. ‘문화 진흥정책의 수립과 시행’, ‘지역 간 문화격차의 해소’, ‘경제적·사회적·지리적 제약 등으로 문화를 향유하지 못하는 문화 소외계층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를 위한 필요한 시책 강구’ 등이다.

 

세계인권선언
세계인권선언

 

제27조
1.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며 예술을 향유하고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신이 창작한 과학적 , 문학적 또는 예술적 산물로부터 발생하는 정신적, 물질적 이익을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 문화 격차의 현실을 돌아봐야 할 때

 

국제적으로도 문화권은 중요한 기본권으로 여겨진다. 이미 19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회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UDHR)’이 대표적이다. 세계인권선언 제27항은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향유하며(enjoy),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화의 향유, 문화권을 인권의 하나로 강조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문화권의 보장과 확대를 중요한 정책적 목표로 삼고 효율성 높은 다양한 정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암표 문제는 인간의 기본권인 문화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지난 9월 암표 거래를 실질적으로 근절할 수 있는 제도개선을 정부에 권고했다. 현행 법률의 실효성 제고, 암표 수익의 몰수·추징 규정의 신설, 암표 신고처리를 담당할 기관 지정 등이다. 문체부는 이에 따라 공연법·국민체육진흥법 개정, 현행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인 벌칙 규정을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 조정, 암표 수익의 몰수·추징 규정 마련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접어들었지만 문화 격차, 문화적 불평등은 부끄러울 만큼 심각한 편이다. 문화시설이 몰린 도시와 그렇지 못한 농촌으로 대표되는 지역 문화격차는 물론 소득수준이나 정보 등에 따른 격차, 문화예술계 장르 사이의 양극화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문화권 보장, 문화격차 완화를 위해서라도 암표 근절은 절실하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실제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정부의 암표 근절 대책 마련과 집행을 기대한다.

 

 

글 | 도재기(경향신문 문화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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