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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을 알리다 [2024.07~08] #3 인권위원장, 양금덕 할머니를 만나다

 

“언젠가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양금덕 할머니를 만나다

 

양금덕 할머니(95)는 1929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다. 그해 가을 광주에서 조선인 차별에 격분한 학생들이 봉기했다. “한국인 학생들은 야만스럽다”는 일본인 중학생의 발언이 투쟁에 불을 붙였다. 2년 뒤 만주사변이 일어났고 일본 제국주의는 침략전쟁을 위해 중공업을 키웠다. 14살 시골 소녀가 일본 나고야의 미쓰비시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간 역사적 배경이다.

 

당시 근로정신대 강제동원을 밀어붙인 사람들은 “돈도 벌고 공부도 시켜준다”고 꼬드겼으나, 그런 시간은 오지 않았고 올 수도 없었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으로 몸은 지치고 병들었다. 미군의 수시 폭격으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희생된 친구들이 여럿이었다. 월급은 고사하고 밥까지 굶어가며 겨우 버텨서 목숨을 부지했다. 해방 이후 귀국하자 “일본에서 몸 팔고 온 여자”라는 비아냥이 따라다녔다. 식민지 조국의 ‘근로정신대’와 ‘정신대’는 구별되지 않았고, 외톨이가 된 양금덕은 남편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자식들을 키웠다.

 

1980년 5월 광주항쟁이 일어났다. 독재에 저항한 시민들이 총에 맞아 꽃잎처럼 쓰러졌다. 광주 양동시장 사람들은 함지박 가득 주먹밥을 만들어 시민군 트럭에 올렸다. 양동 뒷골목에 살던 할머니도 그 대열에 끼어 있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며 사지로 떠나던 청년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1990년대부터는 역사의 이름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엔 ‘근로정신대를 위한 시민모임’이 할머니의 뒤를 지켰다. 할머니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10년 가까이 법정 투쟁을 벌여 당당하게 패소했다. 일본의 모양 빠진 보상금을 팽개쳤고, 한국 정부가 동냥처럼 주는 돈도 단호히 거부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추천한 대한민국인권상(국민훈장)이 ‘횡액’을 맞았을 때도 의연했고, 시민사회단체들이 잇따라 수여한 ‘우리들의 인권상’과 ‘평화인권훈장’을 기쁘게 받았다.

 

 

어머니의 싸움을 끝낼 수 없다는 아들

 

2022년 세밑 할머니의 보금자리인 양동 집을 방문했다. 폭설이 내려 할머니는 문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대한민국인권상을 드리지 못한 미안함을 표하자 “상을 주었다 빼앗는 법도 있느냐?”며 화를 내셨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막걸리에 두부김치를 차리니 어느새 웃음을 되찾고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을 열창했다. 할머니가 기분 좋을 때 부르는 18번이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마다 눈물 고였다….” 2023년 10월 인권위 박진 사무총장이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그 사이 몸이 약해져서 아들 집에서 쉬고 계셨다. 인권위는 대한민국인권상의 정상적 추진을 위해 1년간 노력했으나 결실을 맺지 못했다. 외교부는 국회 답변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인권위 사무총장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괜찮다. 멀리서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양금덕 할머니를 만나다

 

2024년 5월 송두환 인권위원장이 할머니를 찾아갔다. 안타깝게도 할머니의 건강은 더 나빠져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더 이상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인권위원장은 할머니의 손목을 오랫동안 붙들고 “언젠가는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위로했다. 할머니는 “절대로 다른 나라에 지지 않도록 다부지게 힘써 주면 좋겠다.”고 답했다. 면담에 배석한 시민단체 관계자가 물었다. “정부가 훈장을 주지 않더라도 인권위가 추천한 기록은 그대로 남는 것이냐?” 물론이다. 인권위는 지금도 정부가 훈장을 수여하기를 희망한다.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명예가 회복되길 간절히 바란다. 할머니가 언제까지 싸움을 이어갈지 기약하기 어려운 시절, 아들 박상운 씨는 말한다. “어머니가 살아온 뜻을 잇고 싶다. 이렇게 싸움을 끝낼 수는 없다.” 그는 지난 3월 어머니가 100여 차례 넘게 다녀온 일본으로 건너가 항의 시위에 참여했다. 그러므로 양금덕 할머니의 싸움도, 대한민국인권상 추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글 | 육성철(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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