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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바로미터 [2024.07~08] 더 넓고, 더 깊게, 더 크게 학생인권을 말하자!

 

2024년 4월 26일, 서울시의회에서 ‘서울 학생인권 조례 폐지안’이 통과되었다. 조례 폐지를 가결했던 몇몇 의원들은 ‘교사들의 숙원을 해결’했다는 의견을 내놓았으며, 일부 교사들 역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환영했다. 돌이켜보면 학생인권조례는 평탄한 시절 없이 매번 위기를 겪었다. 처음 조례를 만들 때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그 이후에도 학교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기만 하면 원인으로 몰리곤 했다. 2023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서울 S초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사건 이후, 언론과 교육부 등은 사건 원인을 학생인권조례에 돌렸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충남도의회와 서울시의회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마땅히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학교 내 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는 조례가 교육활동을 침해하고 교권 추락을 발생시켰다는 오해를 받고 폐지되고 있는 지금, 다시 한 번 학생인권과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꼼꼼하게 따져보자.

 

더 넓고, 더 깊게, 더 크게 학생인권을 말하자!

 

 

첫째 교사들은 정말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원했을까?

 

2023년 뜨거운 여름, 매주 함께 모여 외친 교사들의 요구는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아니었다. 교사들이 원한 것은 공교육의 회복과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한 보호였다. 교육을 더 잘하고 싶다고 외쳤던 교사들의 요구는 엉뚱하게도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로 돌아왔다. 마치 교사들이 자신의 평안을 위해 학생들의 권리를 제한하길 바란다는 듯이 말이다. 교사와 학생, 교사와 보호자 사이를 편가르기 원하지 않았던 교사들은 서울시의회의 조례 폐지안 통과 후,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서명을 시작했다. 만 하루만에 필자를 포함한 1500여 명의 교사들이 서명에 참여했으며, 그 내용은 조례 폐지를 반대하며 천막 농성 중인 서울시교육감에게 전달되었다. 서명에서 교사들은 ‘협력적 지원과 공동의 책임, 그리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교육 공간’을 원하는 것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안전한 일터에서 학생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며 교육을 잘하고 싶다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학생인권조례가 추구하는 이상과 맞물린다. 서울 학생인권조례는 제1조에서 모든 학생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것만큼 교육의 본질을 잘 설명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방식으로 교사들을 보호할 수 없음을 교사들은 알고 있다. 교육의 본질을 바라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학생인권조례 폐지로 왜곡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넓고, 더 깊게, 더 크게 학생인권을 말하자!

 

둘째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면, 무슨 일이 생길까?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다고 해서 학생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교육기본법」 제12조 제1항에서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평생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초·중등교육법」 제18조의 4 제1항에서도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학생인권조례가 아니더라도 이미 학생의 인권은 교육의 장에서 반드시 보장해야 하며, 보장받을 근거가 확실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다 하더라도 학교 현장은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과거에 비해 사람들의 인권감수성이 높아졌고, 인권침해를 모른체 하지 않을 것이라는 묵언의 약속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학생인권조례 폐지 소식이 알려지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현장에는 변화가 생겼다. 한 학교에서는 용의복장 단속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도 했으며,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형태의 학칙 개정을 미루는 일도 발생하였다. 학생들에게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으니 행동 조심하라’는 경고를 한 학교가 있다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일부 소수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애써 가꿔온 친인권적인 학교 문화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위기감이 느껴진다.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기는 참으로 어렵고 힘들지만 뒤돌아가는 것은 쉽고 빠르다. 더 빨리, 더 많이 후퇴하기 전에 학생인권 보장을 더욱 단단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셋째 학생인권조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필자가 처음 교사로서 발을 디뎠을 때와 지금, 20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학교는 참 많이 달라졌다. 스마트칠판이나 태블릿 활용 수업 등 물리적 환경도 크게 바뀌었지만, 이에 못지 않게 변한 것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와 생활지도 모습이다. 국가·지역·학교 교육과정에 기초하고 있는 수업에 비해 생활지도는 교사 개개인의 특성이 좀 더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교사의 인식과 허용 범위에 따라 학생의 행동에 대해 자의적인 판단이 작동하기 쉬웠고, 그 과정에서 학생의 존엄과 신체의 안전, 결정권이 훼손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다. 고백하건대, 필자도 초임 시절 이러한 자의적인 생활지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학생인권조례가 생긴 이후, 학교는 생활지도에 대한 규범과 원칙을 차근차근 만들기 시작했다. 아주 낮고 초보적인 수준에서 ‘어떤 행위나 말이 의도치 않더라도 학생의 존엄을 침해할 수 있다’는 감각을 쌓아갈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때로는 ‘이 정도도 안돼?’ 라던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실수일 뿐인데 억울하다’는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달래고 나면, 더 나은 교육방법과 생활지도의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4월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1층 현관 앞에 마련된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72시간 천막 농성장을 방문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대화하고 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이 4월 26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1층 현관 앞에 마련된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72시간 천막 농성장을 방문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대화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헌법」이나 「교육기본법」에서 추상적으로 제시한 인권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형태로 구체화하여 제시한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서 우리 사회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들이 존엄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생겼다고 해서 마법처럼 학교가 인권친화적인 공간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는 필자를 포함한 교사들에게 교육의 본질이 무엇이며, 학생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만나야 하는지를 상상하고 실천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더 인권친화적인 학교 공동체, 더 나은 관계를 상상하고 실현할 기회는 학생들에게도 필요하다. 나와 다른 존재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연습할 기회 말이다. 이를 위해 학생인권조례는 학기당 2시간, 학생인권에 대한 교육을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복잡성을 갖는 학생인권이 의미있게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고 더 풍부하게 다뤄지고 가르쳐져야 한다. 함부로 학생들이 학생인권을 남용한다는 평가를 내리기 전에,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추락한다고 말하기 전에, 학교 구성원 모두가 함께 모여 다양한 맥락과 상황 속에서 학생인권의 모습을 고민하고 토론하자. 학생인권이 더 깊고, 더 풍부하고, 더 넓고, 더 크게 말해질 때, 학생인권이 온전히 실현된 학교를 상상해볼 수 있을 때, 그제야 비로소 모두의 존엄이 보장되는 학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1) 에듀프레스(2024.4.30.) “교사 1500명 학생인권조례 폐지 규탄. 우리가 원한 건 교육의 회복”
http://www.edupress.kr/news/articleView.html?idxno=11652
2) 한겨례(2024.5.10.) “학생인권조례 폐지하자마자... 복장두발 단속 꿈틀댄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139988.html

 

글 | 이은진(초등학교 교사, ‘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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