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로 보는 인권 [2024.07~08] 노동권, 전진과 후퇴의 역사
노동권을 규정한 우리나라 헌법 조문들이다. 헌법 제32조에 따르면, 근로는 모든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근로를 강제하는 내용도 있다. 문제는 일제 때부터 사용되던 근로라는 말이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제33조에는 노동자란 말 대신 근로자라고 되어 있다.
만일 개헌을 하게 되면, 이 용어부터 바꿔야 한다. 근로란 말은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한다는 의미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한다는 의미로도 다가온다. 권리를 침해당하는 부당한 지시나 명령에도 따라야 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본다.
근로자에서 노동자로
1994년 근로자의 날이 노동절로 바뀌었다. 오랜 동안 3월 10일, 한국노총 창립일에 맞춰서 ‘근로자의 날’로 기념하던 것이 국제사회의 노동절인 5월 1일로 바뀌는 과정에는 한국노동운동의 발전이 배경이 되었다. 1987년 6월항쟁에 뒤이어서 터져 나온 게 노동자대투쟁이다. 그해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벌였다. 들불처럼 번져갔다고 하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조가 1천3백 개 넘게 설립되었다. 한국노총 소속의 어용노조와는 다른 노동조합들이 대거 설립되었고, 이 민주노조들을 근거로 지금의 민주노총이 만들어졌다. 노동자대투쟁은 울산의 현대그룹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노동자들이 내걸었던 요구 중에 눈에 띄는 게 있다.
사진=1991년 5월 전국 총파업 투쟁
[출처] - 경향신문 [원본링크] - https://www.khan.co.kr/article/200503231818451
“두발 자유”
흔히 두발 자유는 학생들로부터 나온 요구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이 먼저 이런 요구를 들고 나왔다. 1987년까지 공장은 군대식으로 통제되고 있었다. 머리카락의 길이를 짧게 유지하고 단정하게 다듬어야 했다. 복장도 자유롭게 입을 수 없었다. 거기에 폭언과 폭력이 난무했다. 작업 시간 전에 나와서 청소를 해놓고, 준비 체조도 해야 했다. ‘무임금 노동’이란 인식도 없던 때였다. 이때까지의 노동은 노예노동이었다. 노동자란 말은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이 쓰는, 불온한 용어처럼 인식되었다. 그렇게 해서 바뀐 용어가 아직도 헌법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의 헌법은 1987년 6월항쟁 결과로 만들어졌지만, 노동자대투쟁에서 제기되었던 사회경제적 민주화 요구는 반영되지 못했다. 그런 결과로 과거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근로기준법, 노동관계조정법 등 노동권을 규정한 대표적인 법률들에도 여전히 ‘근로’와 ‘근로자’란 용어가 그대로 쓰인다. 사회적으로 노동자란 말이 대세가 된 현실임에도 헌법과 법률은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
노란봉투법 입법의 의미
나는 노란봉투법 입법을 위한 시민단체 ‘손잡고’의 대표다. 노란봉투법은 파업이나 집단행동에 나선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손배가압류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 만들어진 단체다. 2013년 12월 쌍용자동차 파업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당시 1심 재판부는 47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회사에서 쫓겨나고 절망에 빠진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연쇄적으로 자살하거나 돌연사하던 상황에서 나온 비정한 판결이었다. 이 판결을 본 시민 배춘환 씨는 한 언론에 4만7천 원의 돈과 함께 편지를 보냈다.
“해고 노동자에게 47억 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이 나라에서 셋째를 낳을 생각을 하니 갑갑해서,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어서입니다. 47억 원… 뭐 듣도 보도 못한 돈이라 여러 번 계산기를 두들겨봤더니 4만7000원씩 10만 명이면 되더라고요.” 시민 배춘환으로부터 시작된 노란봉투 캠페인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다. 4만 7천 명을 넘는 사람들이 참여했고, 14억 넘는 돈이 모였다.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단체가 ‘손잡고’이다. 손에 손잡고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스러운 손배가압류 문제를 노조법 개정을 통해 해결하자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로부터 국회에 법안 발의를 하고,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냈다.
지난 해 10월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합법 쟁의의 범위를 넓히고,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으로 발생한 손해도 구체적으로 입증되는 한에서 배상하라는 내용이었다. 손해배상가압류를 무분별하게 사용하여 노동권을 제한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였다. 제3조와 함께 노조법 제2조의 사용자를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 사용자”까지로 확대하는 것으로 개정하였다. 현실에서 특수고용이나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교섭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 내용이었으므로 노동자들에게도 환영받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손잡고와 노동시민단체들은 22대 국회 초반에 노란봉투법을 재입법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단체행동에 참여한 노동자 개인에게 가혹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추가하길 기대한다. 노란봉투법은 우리나라 노동권 실현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노동자와 시민의 분리를 넘어서
1944년 발표된 필라델피아 선언의 핵심 내용은 이렇다.
80년 전 발표된 선언을 언급하는 이유는 지금의 노동현실이 선언의 정신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노동은 상품처럼 다루어지고, 노동자들의 인격은 존중받지 못한다. 노동자들의 단결권이나 단체행동권은 너무 제약이 많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단체행동에 나서면 기업과 공권력의 탄압을 받는다. 위험한 작업은 비정규직에게 넘겨지고, 아예 외주화된다. 법에도 분명히 규정되어 있는 위험한 작업 상황에서 쓰는 작업중지권을 사용할 수도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제정되었지만, 공권력은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주를 처벌하지 않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간의 차별은 심각하다. 차별이 가장 많은 분야가 고용 분야다.
사진=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분홍색 노조 조끼를 입고 참석하고 있다.
[출처] - 뉴시스 [원본링크] - https://www.newsis.com/view/?id=NISI20240603_0020363338
거기에 AI 기술과 로봇산업이 산업현장에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플랫폼 노동과 같은 새로운 고용형태도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다수가 빈곤 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고착화되는 상황이다. 치열한 경쟁을 강요받는 현장에서 인간적인 노동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노동권을 실현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 암담한 현실을 어떻게 넘어야 할까? 입법과 제도화를 통한 노동권 실현으로 나아가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와 시민이 분리된 현실을 극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업과 언론, 거기에 정부까지 나서서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을 귀족노조로 낙인찍어왔다. 그 결과 시민들은 노동조합을 자신의 삶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긴다. 정부가 나서서 노동조합을 탄압하면 도리어 여론은 그런 정부를 지지하기까지 한다. 시민들의 인식이 안 좋아지게 된 데는 노동운동가들의 책임도 크다. 노동조합이 고통 받는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지 않고, 자신들의 임금과 처우 개선에만 매달려온 까닭이다.
지금은 산업의 대전환과 함께 ‘노동의 대전환’이 급속히 진행되는 시기다. 헌법을 비롯한 관련 법률들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고, 국제인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권을 우리 현실에서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은 노동운동가들이나 노동조합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대부분 노동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민들이다. 사회복지국가 실현도 노동권 보장으로부터 가능하다. 더 많은 ‘시민 배춘환’이 나와야 한다. 그러니, 시민들이여, 노동권이 바로 우리들의 권리임을 분명히 인식하자. 계속해서 국가에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자. 아울러 연대를 통해 노동권이 보장되게 하자. 일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라도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고,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다. 그래야 민주국가다.
글쓴이 박래군은 인권운동가로 4·16재단 상임이사,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글 |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손잡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