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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024.07~08] “예측 불허의 재난 발생 늘어, 현장 대응하기 더 어려워져”

 

이상호 강릉소방서 예방안전과장

 

지난 5월29일 강릉 낮 기온은 30도를 넘었다.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뜨거운 태양볕에 땀이 흐르는 초여름의 한 낮, 강릉시 강릉소방서에서 이상호 강릉소방서 예방안전과장(소방령)을 만났다. 이 소방령은 1994년 말 소방관이 된 뒤 29년 동안 산불 화재진압, 응급처지 구급업무, 사고 구조, 소방훈련과 상황실 근무 등을 두루 경험했다. 내년 6월 퇴직을 앞두고 산불전문강사로 활동 중이다. 대형산불 발생을 예방하고 혹여 산불이 난다면 지역 주민들의 피해가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산불홍보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상호 강릉소방서 예방안전과장

 

“시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다”는 선한 의지로 소방관이 되었다는 이 소방령은 “앞으로도 고향인 강릉뿐 아니라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경험 많은 그에게도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 너무 “섬뜩하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안전교육과 소방시설 민원 업무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6개월 전까지는 강원 소방본부 소속 환동해특수대응단에서 산불진압 업무와 가스폭발화재 같은 특수화재 대응, 여름철 해수욕장 피서객 인명 구조 등 각종 구조 대응 업무를 했습니다.”

 

5월 말 강릉소방서에서 이상호 소방령. 최우리 기자
5월 말 강릉소방서에서 이상호 소방령. 최우리 기자

 

지난해 4월 11일 강릉 경포 일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진압에 참여하셨지요.
“그날은 24시간 근무 뒤 쉬는 날이었습니다. 비상발령이 있기 전 강릉시 난곡동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개인 차량으로 바로 뛰쳐나갔죠. 워낙 광범위한 지역에 산불이 발생해서 초기에 소방차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강릉 경포대에 소방차가 오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아파트 주민들 대피는 잘 했습니다만 2~3시간 안에 경포대까지 불이 번질 수도 있음을 직감했죠. 시청 산불진화차량에 연락해 경포대에 미리 물을 뿌리라고 지시하고, 동료들과 이 차량과 비상소화장치함을 이용해 경포대와 송림(소나무숲)으로 불이 번지는 걸 막았습니다. 바람이 매우 세서 강풍 속에서 불을 끄는데 여러 곳에서 물을 끌어다 쓰다 보니 비상소화장치함 수압이 약해서 경포대로 번지기 직전 겨우 진압했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납니다.”

 

쉬는 날인데도 진화에 나서야 했던 이유가 있었을까요.
“소방관 근무 체계는 24시간 근무하고 이틀(48시간) 쉽니다. 9일 동안 3일 일하죠. 국가직으로 전환되고 나서는 전국으로 출동해야 하는 부담이 있기는 합니다. 2019년 4월 강원 고성 원암리 산불 이후 국가동원령이 생겼는데 전국으로 이동하는 부담도 큽니다. 양양에서 밀양 가는 데 6시간 걸린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봄철 대형 산불은 곳곳에서 진압을 해야 하고 며칠이 걸려 진압하기 때문에 쉬는 날이어도 나서는 게 당연했습니다.”

 

이 소방령은 쉬는 날 산불 진압에 나선 경험이 많다. 강원 양양소방서 방호구조과장이던 2022년 3월 5일에도 동해 산불을 진압했다. 산불 관련 자료를 작성하러 동해시에 갔다가 우연히 현장 지휘에 나섰다. 이 소방령이 기억하는 강원도 지역 봄철 대형 산불은 서울 중심의 언론사들도 보도한 굵직한 사건이었다. 2017년 5월 6일 강릉 성산 산불(주택38동 총55동 소실), 2019년 4월 4일 고성군 원암리 산불, 2021년 2월 18일 양양읍 산불(건축물 6동 소실), 2022년 3월 5일 동해 산불(주택 178동 포함 373동 소실), 2023년 4월 11일 강릉 경포산불(636동 소실) 등이 있었다. 건물 6동이 불에 탄 2021년 양양 산불도 대응 2단계가 발령될 정도로 끔찍한 산불이었다.

산림으로, 민가로, 불길이 더 확산되는 것을 막아내는 것은 항상 소방관들의 몫이었다. 이 소방령은 그 중 2019년 4월 고성 산불을 가장 진압하기 힘들었던 화재로 꼽았다. 주택 654동 피해, 농축산시설 1,012동 피해가 발생할 정도로 커서 2박 3일 내내 불길을 잡기 어려웠던 대형 화재였다. 이날 밤 강릉시 옥계면에서도 대형 산불이 발생해 주택 97동, 농축산시설 179동이 피해를 입었다.

 

 

2019년 4월 고성 산불. 소방청 블로그 갈무리
2019년 4월 고성 산불. 소방청 블로그 갈무리

 

그날 밤 상황은 어떠했나요.
“강원소방본부 본부상황실에서 24시간 근무 중 저녁 7시50분쯤 고성 산불 신고가 들어왔죠. 전국 최초로 대응 3단계 전국 소방 총동원령이 내려졌어요. 그런 적은 처음이었어요. 산불의 원인은 전기스파크가 전봇대 밑에 붙어 강풍에 번진 거예요. 그해 봄 특히 바람이 강했죠. 2박 3일 꼬박 쉬지 않고 진압해서 겨우 불길을 잡을 수 있었지요. 인명 대피를 먼저 한 뒤 국가기간시설인 변전소와 가스충전소, 주유소 등으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고, 군사시설과 문화재(국가 유산), 민가 순서로 대응했어요. 그런데 이날 고성뿐 아니라 인제, 강릉까지 대형 산불이 3곳에서 발생해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2019년 4월 고성 산불. 소방청 블로그 갈무리
2019년 4월 고성 산불. 소방청 블로그 갈무리

 

양간지풍. 양양과 강릉 사이 봄철 부는 센 바람을 의미한다. 작은 불씨가 큰 산불이 되는 센 바람은 주로 봄철에 분다. 불티가 여기저기로 튀어 위험하다. 이 소방령은 고성 산불 당시 먼저 출동한 소방펌프차에 달린 카메라가 전송해오는 화면 속에서 불티가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날아가는 걸 목격하고 단일 소방서만으로는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불티가 날아간다면 화재가 번지는 속도가 그만큼 빨라지겠네요.
“봄철 고온건조한 상태에서 바람이 세게 불면 관목, 작은 나무에 불이 붙어서 타다가 소나무 윗부분에 붙습니다. 그러다가 소나무와 소나무 윗분만 빨리 타고 넘어가는 수관화(樹冠化, crown fire)가 나타나 불길이 급속하게 빨리 이동합니다. 또 불길이 이동하는 중에도 불티는 멀리 튀어서 저 앞에 도착합니다. 그렇게 5~10km 거리를 1시간도 안되어 불티가 이동하기 때문에 금세 동해 바다까지 가지요. 일종의 전시상황이에요. 봄철 남서풍에서 부는 바람은 북동 방향으로 V(브이)자 패턴으로 확산해요. 바람이 세면 이 속도도 더 빠르니 정말 사투를 벌이는 거예요. 봄철 산불은 주택, 민가 지역으로 번지지 않도록 산에 난 불보다 건축물 방어에 중점을 두고 미리 차량을 배치하여 막는 것이 전략이라면 전략이지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평가보고서에서도 전지구적 온난화 현상으로 인한 산불 위험을 경고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캐나다, 미국 서부, 유럽 남부, 호주 등 고온 건조한 지역을 중심으로 대형 산불로 인한 피해가 수시로 전해졌다. 한국의 과학자들은 토양이 건조하고 바람이 센 봄철 산불뿐 아니라, 여름 폭염으로 인한 산불이 늘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산림청 자료에서도 여름철 산불은 2003년~2012년 4.1% 발생했으나 2013~2022년 9.2%로 배 이상 늘었다. 2022년 5월 31일~6월 3일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산불이 발생해 축구장 1,000개 면적 임야와 건축물 6개동이 소실됐다.

 

 

불티가 여기저기로 날아 어느새 동해까지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의 증가, 체감하시나요.
“대형 산불이 빠르게 늘고 있어요. 100ha 이상 면적을 태우거나 24시간 이상 불타는 산불을 대형 산불이라고 보고 있는데, 막기가 쉽지 않습니다. 남서풍으로 북동진하는 산불이 많아서 경상북도 울진에서 난 산불도 강원도까지 올라오지요. 강풍이 심한 봄 산불이 무서워요. 다만,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로 여름 산불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바닷바람이 습하고 남동풍이 불기 때문에 태평양 쪽에서 오는 바람이 습해서 불티가 날아가다가도 자연적으로 꺼집니다. 다만 봄철이 가물기 때문에 초여름인 5월 말과 6월 초에는 산불 위험이 낮지 않고요.”

 

화재 진압할 때 소방관분들도 많이 힘드시지요.
“대형 산불은 기본적으로 바람이 세차게 불 때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화재 진압에 어려움이 많지요. 적은 인원으로는 넓은 범위를 막을 수 없지요. 이미 수백여 채의 건물이 타고 나니 어디를 먼저 막고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판단하기가 혼란스럽죠.”

 

피해주민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시나요.
“대부분 피해주민들이 직접 불을 낸 게 아니니까요. 너무 황망해하고 상심하시죠. 저희도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해요. 지난해 4월 경포 산불에서는 한 분이 돌아가셨고 두 분이 화상을 입으셨어요. 산불이 확산할 때 인근 지역의 민가는 화염과 불티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어요. 저는 산불강사로서 이런 상황 속에서 언제 대피해야 하고 언제 건축물을 방어해야 하는지, 어떻게 나의 주택을 방어해야 할 것인지, 대형 산불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고 있어요.”

 

소방관들의 업무 강도가 세지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환동해특수대응단에 있을 때 모든 재난에 출동했었어요. 소방 업무가 참 많습니다. 말벌집 제거, 동물 구조, 실종자 수색, 자살의심자 출동 등 생활안전 영역까지도 저희 업무예요. 특히 독거노인분들이 취침하실 때 보청기를 빼놓으시는 경우가 많아 싸이렌 소리를 듣지 못해 대피하셔야 하는 것을 모르실 때도 많죠. 전기차 화재 진압, 고층건물 화재 등 새로운 기술 개발로 인한 새로운 화재 진압 방식도 고민해야 하고 출동도 많아지고 있어요. 기후변화로 인한 대형 산불의 증가, 태풍이나 집중호우 등 풍수해 재난 대비를 생각하면 후배들 걱정이 앞섭니다. 심리상담도 지원하고 대원들의 건강과 생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2019년 4월 고성 산불. 소방청 블로그 갈무리
2019년 4월 고성 산불. 소방청 블로그 갈무리

 

 

인터뷰 도중에도 출동을 알리는 알림음이 계속 됐다. 실종 노인을 찾아달라, 접촉 사고 발생 등 다양한 시민들의 일상을 소방관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30년 경력의 이 소방령은 “소방관들은 직업 만족도와 자부심이 높은 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누군가의 삶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의 하루를 지켜주고 있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기후변화가 심화되는 미래 소방관들의 업무 강도는 지금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크니 인력 보강 등 다양한 대처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2023년 4월 11일 불이 번진 인월사 내 관리동에 연기가 자욱한 모습. 이 소방령 제공, 2023년 4월 11일 강릉 경포대 인근 화재 방어 후 잠시 쉬고 있는 이상호 소방령. 이 소방령 제공리
2023년 4월 11일 불이 번진 인월사 내 관리동에 연기가 자욱한 모습. 이 소방령 제공
2023년 4월 11일 강릉 경포대 인근 화재 방어 후 잠시 쉬고 있는 이상호 소방령. 이 소방령 제공

 

미래 소방관들은 어떤 모습으로 일하게 되실까요.
“기후위기라는 게 세계적으로도 예측 불허의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는 게 특징이잖아요. 예를 들어 대양을 사이에 두고도 한쪽은 극단적 가뭄이 오고, 한쪽은 극단적 폭우가 발생하지요. 기후위기 시대에 주요하게 발생하는 재난이 대형 산불과 풍수해라고 생각해요. 대형 산불은 현장에서 인명대피와 진압 전략 등 대응이 우선 중요하죠. 태풍이나 집중호우 같은 풍수해 재난이 사실 더 무서울 것 같아요. 갑작스러운 땅꺼짐, 산사태의 위험성, 도로 유실, 크고 작은 제방이나 댐 붕괴로 현장 접근 조차 어려운 상황도 많아요. 앞으로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대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기후위기 시대, 산불과 풍수해의 증가로 고통받는 시민 곁에 소방관들이 함께 하기 위해서 사회는 재난 발생 상황에서의 필수인력들을 위한 안전망을 잘 갖춰야 할 것이다. 다양한 재난이 늘어나는 미래가 예측된다. 재난 발생 이전에 미리 대비하고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글/사진 | 최우리(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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