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Intro [2024.07~08] 노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 걷어내기
노년기 경험하는 일상의 제약들
요즘은 커피 한 잔을 마시려고 해도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키오스크 주문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은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면 땀을 흘리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기차표 예매는 어떤가요? 기차표를 끊기 위해 매표소를 직접 찾았지만, 스마트폰 예약자들 때문에 이미 매진되었다는 말을 듣고 속절없이 발길을 돌려야 하는 안타까운 소식들도 들립니다. 다행히도, 2024년도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서 교통약자(노인, 장애인 등)를 위해 설 명절 승차권 예매 기간을 별도로 정해 운영했습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처럼 키오스크, 스마트폰 등 새로운 기기의 등장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혜택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기기 사용이 어려운 노년의 경우에는, 기기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 카페라든지 기차, 온라인 뱅킹 등 실질적인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과학기술의 발전이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한 혜택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일까요? 단순히 디지털 문명에 대한 이해가 낮고, 변화를 무서워하는 노년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요?
노년기 차별을 이야기할 때, 흔히 ‘연령주의(Ageism)’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연령주의는 ‘나이를 이유로 차별하는 사상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용어로, 구체적으로 고정관념(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가)과 편견(우리가 어떻게 느끼는가) 그리고 차별(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을 의미합니다. ‘나이가 타인과 자신에게 해를 끼치고, 불이익과 부당함을 초래하며, 세대 간의 연대를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고 나누는 데 이용’된다면 이를 연령주의 혹은 연령차별이라고 합니다. 연령주의를 디지털 문명과 관련지어 살펴봅시다. 단순히 나이 때문에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게 어렵고, 그 결과로 대중교통 예약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불이익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노인 차별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대우를 노인에 대한 불이익이자 차별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왜 그럴까요? 한마디로 부정적인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입니다. 노인은 나이 때문에 인지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둔화하여 소위 디지털 문해력과 적응력이 낮을 거라고 여기는 게 한 예입니다. 나아가 나이가 들면 변화를 두려워하여 신기술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피하려고 한다는 그릇된 인식을 일반화하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목도할 수 있는 노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변화에 뒤처진 사람들, 연금, 의료 등 복지재정을 ‘축내고’ 사회에 부담을 주는 사람들, 주름지고 축 처진 피부로 대표되는 신체적 노화로 보기 싫은 사람들 등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나이듦의 결과로서 노년기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들이 처한 환경과 조건, 능력 등을 문제 삼아 섣부르게 노년의 특성으로 일반화하고 있을 뿐입니다. 노년기에 나타나는 신체적 특성들을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것’으로 희화하거나 혐오의 표현으로 치환하여 노년에 대한 구별과 배제 그리고 차별을 일반화한다는 뜻입니다. 그러고는 마치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대중이 받아들이게 만드는 거죠.
노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걷어내기
노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어떻게 걷어낼 수 있을까요? 물론 고정관념과 편견을 버리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일단 판단을 멈추고, 주변을 한 번만 살펴봐 주세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여러분의 인식이 어쩌면 근거가 별로 없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노년기 디지털 사용에 관한 고정관념이 있다면 주위를 한번 살펴보세요. 70세가 넘은 분 가운데도 태블릿을 사용해서 OTT 드라마를 보는 분이 많습니다. 노년에게 어떤 본질적인 문제가 내재된 것이 아니라 노년이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 놓여 있는지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작년(2023년)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중 최하위’였다고 하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렇게 소득 수준이 낮으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기기사용에 대한 학습이 일어나기가 어려운 상황일 테고, 기술문명에 적응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요.
키오스크, 스마트폰 등을 개발하는 영역에도 일정 책임이 있습니다. 개발자들은 디지털 기기의 주 사용자를 청(소)년층으로 잡습니다. 흔히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하는 층이지요. 그래서인지 개발자들은 노년의 사용 가능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설정 기능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가야 겨우 찾아내는 글씨 크기 조절 기능은 또 어떤가요? 뭐든 한 번에 되는 일이 없습니다. 개발자들은 애초에 노년의 접근성을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정녕 고려할 수 없었던 걸까요? 이제부터는 노년에 대해서 바로 떠오르는 통념들을 잠시 거리를 둔 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어쩌면 이 단순한 연습을 통해 노년의 본래 모습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권위가 제작한 〈노년의 인권, 어떻게 볼 것인가〉의 4편의 영상도 노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 | 김현정(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기획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