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콩떡 인권위 [2024.05~06] 누구나, 어디에서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국가인권위원회 이주인권팀
임선영 팀장
여러분이 생각하는 공무원의 모습은 어떤가요? 그들은 인권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왠지 딱딱하고 재미없는 이미지가 떠오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독특한 개성과 취향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하는 곳이 국가인권위원회랍니다. 이번 호는 20년간의 국가인권위원회 근무를 마치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이주인권팀 임선영 팀장과 함께 인권위 근무 경험과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Q. 인권위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7급 공채에 합격하고 부처를 선택할 때는 인권위가 설립된 지 얼마 안 됐을 때여서 정보가 없었어요. 전공도 인권과는 관련 없는 공학 쪽이었고요. 다만 과천정부종합청사 사무실은 조금 답답할 거 같아서 청사 밖에 있는 독립적인 조직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우연히 오게 됐어요.
Q. 처음 근무하셨을 당시 인권위의 일하는 분위기는 어땠어요?
인권위 설립 초기에는 일반직 공무원과 계약직, 별정직 공무원이 함께 근무하면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인권운동 경험이 있거나 전문성을 인정받아 채용된 직원과 비교해서 공채 시험을 거친 일반직 공무원의 인권 감수성에 대한 신뢰가 상대적으로 낮았어요. 그래도 갈등이 싫지만은 않았어요. 그 과정에서 서로 자극이 되고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조직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그들이 가진 인권 전문성, 열정, 헌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고, 많이 배울 수 있었지요. 시끌벅적했지만 인권위가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때였어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나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라고 생각했으니까요.
Q. 인권위에서 보람 있거나 의미 있게 추진했던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처음 인권위에 와서 2004년 세계인권기구대회 업무를 담당했어요. 전 세계 70여 개 국가에서 참여하는 큰 행사였는데, 실무 운영단을 맡았죠. 그때 인권에 대해 많이 배우면서 시야도 넓어졌고 업무적으로도 많이 단련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인권위에서 근무한 20년간 스스로 많이 성장했어요. 일반직 공무원으로 시작했지만 한 길을 걷다 보니 인신매매, 이주 인권 관련 분야에서 내 이름을 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요. 2019년 제2차 이주 인권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향후 인권위가 관련 업무를 추진하는 기반을 만들었던 일도 의미 있었고요.
Q. 안정적으로 ‘인권’ 관련 업무를 하며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게 인권위에서 일하는 확실한 장점이잖아요. 그럼에도 공무원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일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2018년부터 이주인권팀이 정책·단체협력 및 조사 업무를 병행하게 되면서 많이 바빠졌어요. 그동안 단체와 협력하면서 쌓아온 신뢰가 커질수록 인권위에 기대하는 역할도 더 많아졌는데, 담당하는 인원은 줄었거든요. 체력적으로도 예전에 비하면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앞으로 10년은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서 에너지를 쓰겠다고 결심했어요.
공무원에서 NGO 활동가로 변신할 계획
Q.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실 계획이에요?
어렸을 적 꿈이 집시였어요. (웃음) 출입국 관리직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서 처음부터 관심이 많은 분야이기도 했고, 지난 9년 넘게 이주인권 업무를 계속하다보니 활동가들의 에너지와 열정에 좋은 자극도 많이 받아서요. 앞으로도 이주정책에 대한 연구 또는 NGO 활동을 할 계획이에요.
Q. 이주인권 분야에서 일해 오시면서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사례가 있을까요?
언어적·사회적 소통이 낯선 곳에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이주민·난민들의 안타까운 사례는 너무 많아서 특정하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든다면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주는 활동가들의 현실적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2019년 전국이주인권대회에 190명의 단체 활동가가 모여 의견을 나눈 적이 있어요. 일과 삶이 하나가 되는 정체성과 생계의 문제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적 여건 등으로 이주인권 활동을 그만두거나 몸이 아픈 데 쉬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컸죠. 월급을 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의 나 자신을 담금질하는 자극이 되기도 했고요.
Q. 이주인권 이슈 중에서 사회적으로 시급하게 개선이 필요한 과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2023년 인권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주민의 인권이 존중받고 있다’는 응답은 여성(81.2%), 아동·청소년(78.3%), 노인(67.6%), 장애인(50.4%)의 인권존중 응답보다 현저히 낮은 36.7%였죠. 위원회 보도자료 중 댓글 반응이 가장 부정적인 분야도 이주인권 관련 내용이에요. ‘감성팔이 하는 것 아니냐’, ‘자국민이나 잘 챙겨라’ 등 거부감이 제일 크게 드러나고요. 하지만 이제는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다니고,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삶을 이어가기도 하는 세상으로 변했잖아요. 한국 사회도 저출생과 지역소멸 위기에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이고요. 단순히 노동력으로 이들을 바라볼 것이 아닌,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민이 우리 사회 구성원이 되고, 그들의 ‘다름’을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풍요롭게 할 자산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태도가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혹시 「인권」 독자들이 이런 부분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싶은 내용이 있을까요?
이주인권팀은 정책권고, 실태조사 결과, 진정사건 인용결정, 토론회 등을 대한 보도자료를 매년 20건 이상 발표하고 있어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시면 좋겠네요. 바쁜 일상에서 짧은 보도자료만 읽어도 이주민·난민이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인권위에서 어떤 역할들을 하고 있는지, 정부의 정책이 인권친화적으로 변화해 가는 모습을 간략하게나마 알게 되니까요.
Q. 지금의 인권위는 많은 변화를 앞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고유의 업무영역을 지켜나가려면 어떤 자세나 전략이 필요할까요?
최근 인권위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분야 중의 하나가 ‘기후’잖아요. ‘이주’에 대한 관심과 지원도 함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주 인권은 기후뿐만 아니라 여성, 아동, 정보화, 노인, 기업 인권 등의 모든 주제하고 연결되거든요. 국제적으로 관심이 많은 이슈이기도 하고요. 그동안 이주인권팀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권고, 의견표명을 통해 변화를 가져온 부분도 있고, 실태조사, 모니터링 사업 등을 통해 만들어서 쌓아놓은 데이터가 있으니까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인력 등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인권위가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일도 더 많아질 거예요.
Q. 떠나기 전에 인권위와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인권위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겠지만, 인권위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취지, 방향성 등이 계속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늘 칭찬만 듣는 기관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외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기관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느리더라도 인권위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노력하다 보면 “누구나, 어디에서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도달해 있을 거라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이 조직 안에서 내가 보람을 느끼면서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기 바라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분위기가 정착되기를 바랍니다.
진행 | 박정현(국가인권위원회 홍보협력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