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브릿지 [2024.05~06] 당신은 청소년인권을 아는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서 진행 중인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 일상 언어 속 나이 차별 문제 개선 캠페인' 포스터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나이 어린 사람도 존중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활동하다 보면 “학생인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이들마저도 어린이·청소년에게 반말을 하거나 일방적으로 ‘친구’라고 부르며 기특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인권 교육을 가면 “교육을 위해서 체벌이 필요하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이 모습들은 문제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이 어린 사람에 대한 제대로 된 존중을 실현하는 운동을 이어나가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단체인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지음)’에서는 2020년부터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일상 언어 속 나이 차별 개선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이 캠페인에서는 어린 사람에게 하대하지 말 것을 공식 제안했고, 여러 지역과 현장에 포스터를 배포했다. 어린 사람을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린 사람에 대한 말과 표현 속에 있는 차별을 짚어내며 알렸고, ‘잼민이’, ‘급식충’, ‘중2병’ 등 어린이·청소년의 모습을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편견, 혐오 표현 등을 지적해왔다. 2023년 12월에는 언론과 미디어의 나이 차별적인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사회 공동의 실천을 제안하는 '나이 위계 없는 언론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를 만들어 발표했다.
중요한 것은 존중의 방식이다. 제대로 된 존중은 권력 관계를 인식하고, 위아래 구분에서 생기는 태도와 생활양식 등을 바꾸는 것이다. 예전에는 남성이 성별을 이유로 여성에게 하대하는 문화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여성 개인이 그게 편하다고 해도 그러한 행위와 문화는 분명 차별이다. 마찬가지로 나이 많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어린이·청소년에게 반말을 하고, ‘친구’라고 부르는 것 역시 ‘존중’일 수는 없다.
어린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 평등한 언론보도를 원한다! 00양, 00군이 아닌 한 명의 시민으로! 세계인권선언의 날 75주년 기념 <나이 위계 없는 언론 보도 및 취재 가이드라인> 발표 기자회견 참여자 사진
2024년 3월, 연세대 인권축제에서 이 캠페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 ~양, ~군, ~친구라고 종종 학생들을 불렀는데 생각해보지 못한 측면이네요."라는 메모를 남겼다. 어린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는 아직이지만, 우리가 계속 말하다 보면 어린 사람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성찰하는 사람이 늘어나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체벌은 국가폭력이다" 캠페인 결과 발표 및 토론회 참여자 단체 사진
‘체벌은 국가폭력이다’와 ‘체벌 생존자 위로회’
청소년인권운동을 한다면, 제대로 조명되지 않는 쟁점들을 발굴하기도 한다. ‘체벌’을 생각해 보자. 한국 사회 대다수의 사람들이 겪는 폭력이지만, 교육 및 훈육 목적으로 정당화되어 왔다. 보통 체벌 사건이 일어나면 체벌을 당한 사람이 한 잘못과 상처의 정도, 그리고 체벌을 가한 사람의 인성과 의도가 어떤지만 주목을 받으며 주로 개인 간의 문제로 여겨진다. 이러한 논의 구도와 한계 속에서 체벌은 체벌 행위에 직·간접적으로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을 만든 주체의 책임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기록하다 "체벌은 국가폭력이다" 캠페인 기록집>
2023년, 지음에서는 이러한 고민과 문제의식에 기반해서 ‘체벌은 국가폭력이다- 국가가 조장한 체벌, 국가에게 사과받자’라는 캠페인을 기획·진행했다. 이 캠페인에서는 청소년인권 보장을 위해 정부가 책무를 다할 것을 촉구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체벌이 인권 침해이고 잘못임을 국가가 인정해야 하며, 체벌을 더 명확하게 금지하고 근절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함을 이야기했다. 나는 주로 체벌 경험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기록하는 활동을 했다. 연령대에 따른 폭력의 경험을 살피고, 해당 경험이 미치는 영향을 확인했다. 한국 사회의 체벌 관련 제도적 현황과 역사를 함께 살피면서 정리하고 분석했고, 동료 활동가들과 함께 <체벌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기록하다 “체벌은 국가폭력이다” 캠페인 기록집>을 발간했다.
이 캠페인을 하면서 여러 번 감정이 벅차올랐다. 첫째는 별것 아닌 일로 여겨졌던 체벌폭력의 역사가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기록은 국가와 사회 등에 의해 당연한 문화로 이어져 왔던 체벌폭력의 역사를 민주적으로 서술했기에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후속 활동을 할 때 덜 외로울 수 있을 거라는 점 때문이었다. 인터뷰 참여자 중 한 분이 캠페인 결과 발표 및 토론회에 오셔서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면서 위안을 얻으셨다고 했다. 이 운동을 하는 나에게도 힘이 되는 말이었지만, 덕분에 이 운동 과정이 모두 사회적 회복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학교 체벌 생존자 위로회> 초대장
올해는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체벌 생존자들을 만나서 함께 위로하고 분노하는, ‘체벌 생존자 위로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체벌을 겪고 생존한 사람들이 자기 경험을 돌아보고, 상처를 돌보고,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인식함으로써 폭력과 자책, 두려움, 잘못된 신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한다. 더 많은 이들의 체벌 생존 경험을 모으면, 폭력에 기반한 교육 방식이 문제임을 명확히 하고, 국가와 정부 기관 등 학생인권 보장의 책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음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청소년인권운동 단체의 특성상 재정이 열악해서 위로회를 진행하기 위해서 모금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의 어린 시절 상처가 회복될 수 있도록 그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게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시길 기다린다.
글 | 빈둥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