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024.01~02] “기후변화로 건강과 생명을 위협받는 이동노동자를 위한 제도는 없나요?”
전성배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라이더유니온 서울지부장
영하 10도의 세밑 한파가 전국에 닥쳤던 2023년 12월 하순, 늦은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한 마트 앞 언덕에는 캠핑카가 세워져있었다. ‘찾아가는 이동노동자 쉼터’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서울노동권익센터와 이동노동자(라이더, 퀵서비스, 대리운전, 배달플랫폼) 노동조합 총 4곳이 함께 12월 한 달 동안 서울시 곳곳에 캠핑카 4대를 쉼터처럼 이용할 수 있게 한 곳이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라이더유니온지부 서울지부장이자 5년차 라이더인 전성배(39) 지부장도 캠핑카 하나를 맡았다. 이날 전 지부장은 이태원의 한 마트 앞 공터에서 쉼터(캠핑카)를 운영하며 동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성배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라이더유니온지부 서울지부장. 최우리 기자
“장갑이나 넥워머같은 동계용품이 많이 필요하죠. 프리랜서라고 해도 쿠팡이나 배달의 민족과 같은 하나의 플랫폼에 소속돼 2~3년씩 일을 하는 데도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장비도 제공받지 못해 결국 각자 마련해야 하거든요. 쉼터가 있지만 다음 배달 때문에 바로 움직이느라 대부분의 라이더들이 이곳에서 오래 쉬지는 못해요.”
이날도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5명의 이동노동자가 들러 장비를 받아갔다. 전지부장이 타주는 믹스 커피 한 잔을 받아들었던 노동자들은 3분도 채 머물지 못하고 다시 일터로 떠났다. 전 지부장은 떠나는 그들에게 “안전 운전 하세요”라고 인사했다.
낮에도 배달이 많나요?
“물론 식사 시간 무렵이 가장 몰리긴 해요. 그런데 요즘은 아침에도 커피 한 잔, 샌드위치 하나 주문하는 경우도 많고요. 날씨가 좋은 봄이나 가을보다는 날씨 안 좋은 계절에 주문이 몰려요. 외출하기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그런 날이 우리에게도 수입이 좋은 날이지만, 그런 날일수록 위험하니까 긴장을 더 많이 해야 해요. 엔데믹으로 대면 모임이 다시 늘어나면서 주문량이 줄었어요. 예전에는 눈 오는 날이면 쉬기도 했는데, 이제는 솔직히 쉴 수가 없어요. 주문이 줄어서 수입도 줄다보니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죠. 저희에게는 시간이 돈이에요.”
2024년 1월3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는 기자회견을 열어 라이더자격제와 대행사등록제, 폭염·한파 등 극심한 기상 상황에 필요한 안전대책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부 날씨 영향을 많이 받을 텐데 그런 날에는 어떻게 대비하나요?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수시로 날씨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에요. 당일 날씨뿐 아니라 일주일 정도 미리 날씨 예보를 확인하죠. 비가 오면 우의를 입고 핸드폰 방수 케이스를 챙기고요. 갈아입을 옷이나 양말을 준비해요. 바퀴에 뿌리는 미끄럼 방지 스프레이도 뿌리고요. 저도 비가 오는 날 처음 사고가 났어요. 차량 상대로 사고나는 경우는 오히려 별로 없어요. 혼자 넘어지는 사고가 압도적이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보통 방수 코팅이 돼 있어 미끄럽습니다.”
라이더들에게 안전한 주행 방법 등을 가르치는 강사로도 활동하는 그가 설명하는 사고들은 빠른 배달을 원하는 소비자와 배달 플랫폼 기업들이 만들어 낸 사회적 압박때문으로 보였다. 라이더들은 다음 일을 잡기 위해, 핸드폰을 조작하면서 이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차간 주행이나 갓길 주행 할 일도 잦다. 다음 일을 잡지 않으면 하루 벌이를 놓친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기 때문에 도로 위에서는 항상 시간과 다툰다고 했다.
안전을 챙기며 천천히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가요?
“위험하다고, 교통법규를 위반하지 말라고 강조하죠. 신호위반은 절대로 안 되고, 턱을 조이는 헬맷을 필수적으로 착용하라고 꼭 안내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사실 라이더 입장에서 그런 교통법규 등을 다 지키면서 일하면 최저시급(2023년 기준 9620원)도 벌 수 없어요. 또 갓길이나 골목 주행을 많이 하다 보니 택시에서 갑자기 손님이 내릴 때 문을 열어 라이더가 부딧히는 사고도 많아요.”
5년 동안 라이더로서 일하면서 날씨 변화를 느꼈나요?
“요즘 날씨는 정말 종잡을 수 없지요. 확실히 더 안 좋아졌어요. 폭염이 있던 해의 경우는 가을을 모르고 지나가요. 가을이 저희 업종에서는 비수기이기는 하지만 요즘은 10월까지 여름처럼 덥잖아요. 그러다 갑자기 추워지고요. 운전하면서 느꼈는데 가을인데도 낙엽은 떨어지지 않고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지 않았어요. 저희는 젖은 낙엽이 쌓여 있으면 주행하기 위험하고, 갑자기 전날과 크게 다른 날씨가 닥치면 대비가 안 돼 있는 경우가 많아 힘들어요. 그런데 점점 그런 날이 늘었어요.”
외부 날씨가 견디기 힘든 날에는 보통 어디서 쉬나요?
“이동 쉼터에 못 갈 때는 편의점 앞 파라솔이나 공원 그늘로 대피하죠. 그런데 딱히 쉴 곳이 없어요. 더위 먹으면 스스로 판단이 어려워져요. 특히 저희는 순간적 판단이 사고로 이어져서 매우 위험하니까 조심해야 해요. 헬멧은 사실상 방한용품같이 덥거든요. 그렇지만 안 쓰면 사고 위험이 높아지니까 꼭 써야 하는데 올해 여름같이 날씨가 후텁지근할 때는 정말 힘들죠. 슬리퍼나 고무신을 여름에 신고 타는 라이더들 손가락질 하는 분들 많으시죠. 미끄러지니 신으면 안 돼요. 그런데 폭우 오는 날 계속 같은 신발 신고 있으면 발이 썩어가요. 헬멧도 여름용 구멍 뚫린 것 잘못 쓰면 정말 위험한데, 너무 더우니까 그런 유혹을 떨쳐내기 어려우니 사고가 나면 크게 나는 거죠. 우스갯소리로 여름에는 체력전, 겨울에는 아이템전이라고 해요”
위험한 날씨에 일을 안 하면 안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직업이라서요. 그렇게 쉬기가 쉽지가 않죠.”
기후변화로 이상기후가 더 잦아지면, ‘다른 일을 하면 안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요?
“저는 그런 질문 자체가 무례하다고 생각해요.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이미 많습니다. 또 배달업은 이제 이 사회에서 없어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런 쉼터도 필요한 거고요. 저는 배달노동자들도 사회에서 직업으로서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이 일이 좋아서 이 일을 선택했어요. 각자 자신의 적성과 삶의 환경에 맞게 직업을 선택하며 살아가는데 다른 직업을 찾으라는 것은 옳지 않아요. 그리고 이동노동자들이 출현하게 된 배경에는 플랫폼 기업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이들이 도로나 통신 등 사회 인프라를 이용하면서 사업을 유지하고 있어요. 플랫폼 기업들도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동 쉼터와 안전교육, 이상 기후에 대한 대비를 이들 기업과 정부에서 나서서 하는 것이 왜 어려울까요. 제 생각으로는 노동자로서 인정하기 싫어서라고 생각해요.”
사회의 연결망 역할하는데 정작 기후위기 대책에서는 소외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시민들 중 상당수가 라이더로 유입되었다. 라이더를 전업으로 하는 이들은 전국에 40만명 이상으로 추산한다. 부업으로 라이더 일을 하고 있거나 해 본 이들을 합칠 경우 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일하는 라이더가 60%라고 보고 있다. 40~50대 가장이 많고, 여성 라이더도 5%는 훌쩍 넘었다. 보통 오토바이 배달 노동자를 상상하지만, 지금은 전기자전거나 킥보드, 도보로 배달일을 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서울 성동구와 광진구 중심으로 일하는 전 지부장도 평균적으로 2km는 이동하지만, 멀게는 10km씩 배달을 간다. 음식 배달을 넘어서 물품 배송도 하기 때문에 퀵서비스 기사와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는 것도 최근 특징이다. 전 지부장이 말하는 라이더 생활이란, 기존 택시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목표 금액을 채울 때까지 시간을 늘려가며 근무를 하거나, 시간을 정해놓고 딱 그 시간만큼은 사무직 노동자처럼 노동하는 자신만의 규칙을 만들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회가 빠르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연결망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같은 배달 일을 하더라도, 마트에 소속돼 배달하는 노동자, 택배 노동자 등 탑차를 타고 이동하는 이들,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라이더, 고객의 차량을 대신 운전하며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대리기사 등 외부 환경에서 근무하는 배달노동자는 점점 세분화 되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도 늘고 있다. 보험외판원이나 가스점검원 역시 이동하는 노동자로서 기후위기로 인한 생명과 건강의 위협을 직접 대면하고 있다.
날씨가 좋지 않을 때 배달노동자들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나 제도가 있을까요?
“먼 거리 배달은 기본 요금에 거리당 할증 요금을 추가로 지불해요. 날씨가 좋지 않을 때는 그렇게 할증이 붙는 방식도 있는데 이를 제대로 정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박정훈 라이더유니온지부 조직국장과 노동자들이 고용노동부에 기후사회보험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 국장은 2023년 8월 “기후 사회보험이 필요하다”는 기고글을 통해 “사망사건이 일어나고 나서야 노동자와 쪽방촌의 현실을 보도하거나, 야외활동 자제권고 문자를 보내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기후 재앙은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고, 취약한 국민에게 피해가 집중되므로 상호 호혜와 연대 정신에 입각한 사회보험으로 대비해야 한다. 라이더유니온은 이를 기후 실업급여로 명명하고 기자회견을 개최해 정부에 제도 도입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기후로 인해 일을 못할 경우 배달노동자들도 유급휴가를 갈 권리가 있다는 주장일까요.
“저희도 고용보험을 내고 있는데 이를 실용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고용노동부 주최로 회의를 하긴 했지만 기업만 초대했고 노동자들은 논의에 참여하지도 못했다고 해요. 사실 저희는 폰으로 콜을 받지 않고 일을 안 하면 사실상 퇴직인 사람들인데, 일할 수 없을 때 그 보험금을 기반으로 유급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봐요. 라이더 노동자들도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나 정책이 필요하다는 취지입니다.”
정부의 관심이 적나요?
“1년 수입의 2/3 이상이 여름과 겨울에 몰려있어 계절성 노동자로 봐도 무방해요. 다만, 근무 시간도 그만큼 길고 의류비나 오토바이 감가상각, 보험비나 기름값 다 포함해 계산하면 계절특수를 본다고도 할 수 없죠. 저는 기후위기 상황에 따라 노동 환경이 더 나빠질 거라고 봐요. 그런데도 정부가 나서서 함께 조사해보고 대책을 마련하자고 한 적이 없었어요. 라이더들의 수가 수십만명이고 이들이 없으면 시민들의 불편함도 커질 수밖에 없어요. 사회가 함께 대안을 찾고 변화해가는 게 당연해보이는데 아직은 그렇지 않아요.”
날씨에 따라 받는 할증요금도, 기상청 예보가 틀려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배달의 민족에서 기상할증 제도를 두고 눈과 비가 올 경우 500원, 1,000원을 더 주죠. 기상청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이 할증 제도를 적용하는 건데, 국지적 호우도 많이 내리고 데이터가 잘못되었는지 현실과 맞게 연동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는 제보가 쏟아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지금 나는 도로 위에서 비를 맞고 있는데 기상할증 적용은 안 되는 거죠. 라이더 입장에서는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많습니다.”
이동노동자에게 가장 필요한 변화가 무엇일까요.
“불안정성을 없애달라는 거죠. 약관에 따라 일하는데, 취업규칙이 없으니까 회사가 마음대로 변경해도 우리는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이 기준이 싫으면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 식이니까요. 지금 플랫폼 산업체들은 빠르게 변해가는데 정보 공유나 규제, 노동환경은 여전히 과거 방식대로에요. 사고율이나 산업재해 등이 조금씩 공개되고 있지만, 라이더 노동자들의 불안함은 그대로라는 게 가장 불만입니다.”
일회용 음식용기를 배달하는 일을 하면서 오히려 다회용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는 전 지부장은 이 일을 하면서 오히려 구조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상기후로 일을 하지 못할 때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우선 이들이 노동자라는 것을 기업과 정부가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후변화가 인류의 삶을 바꿔온 역사를 보면 기후변화가 그 자체로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물론 자연 재난의 직접적 피해를 입을 수 있으나 그보다 더 위협적인 이유는 기존의 많은 사회 모순을 폭발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고 기존의 모순들을 잘 관리하고 극복하는 사회만이 급격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었다. 노동자로 인정 받지 못해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권리를 요구하고 협상할 수 없는 라이더들은 악천후 속에서 또 배달비를 구하기 위해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이런 불안한 일터는 누구를 위한 일터냐는 질문과 함께.
글/사진 | 최우리(한겨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