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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연재 [2023.11~12] “수도권 사람들이 전기 펑펑 쓰기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월성원전 인근 주민 황분희씨

 

월성원전 인근 주민 황분희씨

 

원자력과 핵. 누군가는 원자력 발전소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핵 발전소라고 불렀다. 원자력은 우라늄이 핵분열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핵은 역사적으로 폭발, 폭탄 등 파괴적 무기로 주로 사용해왔다는 점에서 폭력성이 강조된다. 언어는 자의적이다. 그리고 언어에는 부르는 이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똑같은 실체를 두고 다르게 부르는 이유는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원자력발전소를 핵발전소라고 부르는 이를 만나기 위해 경북 월성원전으로 향했다. KTX 신경주역에 내려서 약 40km를 더 해안쪽으로 달려 닿은 곳, 돔 모양의 월성원전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월성원전 홍보관 앞 도로에는 허름한 천막과 상여가 2014년 8월 25일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월성원전 인접 주민 이주대책위원회’는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을 향해 이주대책을 마련하라고 외친다. 부위원장이자 원전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집을 짓고 38년째 살고 있는 1948년생 황분희씨도 원전 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싸움을 10년 넘게 계속하고 있다. 기자가 황씨를 만난 10월 16일은 집회 농성을 시작한 지 3,340일째였다.

 

 

지난 10월 중순 만난 황분희(75)씨는 월성원전 주민 이주대책위원회 농성천막 앞에서 “원전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중순 만난 황분희(75)씨는 월성원전 주민 이주대책위원회 농성천막 앞에서 “원전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 황분희씨

 

갑상선암 치료는 계속 받고 계신가요. 요즘 건강은 어떠신가요?

“나이가 있으니 오후가 되면 체력이 떨어져요. 운동도 하면서 몸의 근력을 키워줘야 하는데 쉽지 않네요. 병원은 수술한 지 5년이 넘었으니 3개월에 한 번 울산에 나가서 약을 타오고, 6개월에 한번씩 피 검사를 받지요. 만성질환이니 계속 관리해야 해요.”

 

 

요즘 집회 나오는 주민들은 몇 명쯤 되시나요?

“7명이요. 농사철이라 나락 타작해야 해서요. 2014년 처음 시위할 때는 70명이 넘었어요. 회원들도 많았고 부부가 같이 나오기도 하고 그랬는데 (많이 줄었지요).”

 

 

 

2021년 2월22일 농성집회 2,391일차 월성원전 홍보관 앞에서 상여 시위 중인 주민들(이상범 울산환경연합 사무처장, 김우창 작가 제공)
2021년 2월22일 농성집회 2,391일차 월성원전 홍보관 앞에서 상여 시위 중인 주민들(이상범 울산환경연합 사무처장, 김우창 작가 제공)

 

홍보관 앞에서 시위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있으실까요?

“원자력이 안심하다고 이곳으로 사람들을 많이 불러들였어요. 유치원생들도 견학하러 올 정도에요. 마을에서 공터가 여기밖에 없기도 하고요.”

 

 

1986년 8월, 39살 때 가족들이 이곳으로 이사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에 오실 때도 원전 1 기가 있었는데, 어떻게 원전 근처인 이곳에 정착하게 되셨나요?

“친척이 이곳에 있어서, 우리도 요양하러 왔어요. 우리집 아저씨가 현대중공업에서 13년을 일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힘들어 했어요. 키가 175cm인데 몸무게가 50여kg까지 마르더라고요. 병원에 가니 요양하라고 해서 요양할 곳을 찾다가 왔지요. 원자력이 뭔지도 몰랐어요. 처음에는 3년만 살고 복귀하려고 했는데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시골 인심도 너무 좋았어요. 시내에서 사람에게 시달리다가 행복의 기준을 달리 생각하고 들어온 이곳이 좋아졌어요. 아저씨 건강도 점점 좋아졌고요. 그러면서 원자력이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를 들었지요. 당시만 해도 원자력을 서로 가지고 가려고 하던 시절이었어요. 히로시마 핵 폭탄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어서 무서운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여기는 전기 만드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전기를 만드는 공장이고 무기가 아니니까 안전하지 않겠냐. 값싼 에너지의 전기를 생산해서 우리나라가 선진대열에 들어서서 좋은 건가보다라고 생각했어요.”

 

월성에 정착하고도 한참을 원전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고민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1호기만 있던 월성원전 인근에는 월성 2~4호기, 신월성 1~2호기가 순차적으로 들어섰고 중저준위(인근 봉길리) 방사능 폐기물장도 들어섰다. 현재 고준위 방폐물을 원전 부지 안에 임시저장하고 있지만 임시 저장공간의 포화 시점도 임박한 상황이다. 2021년 12월 기준 월성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률은 98.8%에 달했다. 지난 2022년 3월 월성원전의 임시저장시설(맥스터 7기)을 추가 건설해 2029년까지는 사용후핵연료 등을 저장할 수 있게 해두었다.

 

국가 전력 공급과 수요를 예측해 설계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10차 전력기본계획 총괄분과위원회 실무안을 보면, 2030년 원자력 발전 비중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서 제시된 23.9%보다 8.9%포인트 높은 32.8%로 정해졌다. 10차 전기본 실무안은 이 목표설비량이 확보되려면 2036년까지 원전 12기(10.5GW)의 계속운전이 이뤄지고 원전 6기(8.4GW)가 예정대로 준공돼야 한다고 봤다. 원전 12기의 계속운전은 2036년 이전에 설계수명이 만료되는 모든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준공 예정이었던 6기 중 신한울 1호기는 지난해 연말 가동을 시작했다. 운영허가 단계를 마친 신한울 2호기, 공사 중인 신고리 5·6호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중단됐다가 사업개재 절차를 밟고 있는 신한울 3·4호기를 말한다. 신한울 3·4호기 사업을 전기본에 포함하는 것은 사업을 재추진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황분희씨

 

정부나 한수원이 주민 대상으로 설명을 했나요?

“한수원과의 첫 만남은 우리가 집회 하면서부터였어요. 그 전까지는 의심도 안했죠. 정부가 국민들 죽이는 일을 할 리가 없으니 트집 한 번 안 잡고 쓴 소리 한 번 안했어요. 의심이 없으니 만날 이유도 없죠. 원전 호기 늘릴 때마다 주민 이주만 해주고 그랬어요. 2016년 9월 경주에 5.8 규모의 지진이 나고도 피신하라는 말도 안했어요. 그냥 방송에서 건물이 없는 곳으로 피신하라고 했는데 건물 없는 곳이 여기 홍보관 주변 뿐이에요. 그래서 원전 주변에 있었어요. 다행히 지진이 잦아들고 하늘에 감사했어요. 여기는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된다고, 세계적으로 이렇게 가까이 사는 나라(원전으로부터 914m만 떨어지면 안전구역이라 거주가 가능함)가 없다는데, 그러니까 주민들을 원전에서 1km라도 더 멀리 떨어뜨려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계속 싸우는 거예요. 정부나 한수원 말로는 주민들과 상생하고 산다고 하는데 그동안 뭘 상생했을까 따져보면 나는 모르겠어요. 대응은 형식적이고 주민들의 삶에 애정이 없었어요.”

 

 

원전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참사 전에는 크게 깨닫지 못했어요. 2014년 11월 정의당 의원이 ‘2009년 3월 월성 1호기 핵연료 교체 과정에서 이송 장비의 오작동으로 폐연료봉 다발이 파손, 연료봉 2개가 방출실 바닥과 수조에 떨어졌다’고 발표했어요. 또 그 전에도 원전 짝퉁 부품 사건이 불거져서 놀랐죠. 우리는 바로 옆 원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언론을 통해 알 수 있었어요. 방사능은 눈에 안 보이고 냄새도 안나서 알 수가 없는데 말이에요.”

 

원전의 실체를 몰랐을 때,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황씨도 원전의 계획예방정비(OH) 기간 동안 원전 안에 처음 들어가봤다. 다른 일보다 원전에서 일하는 게 급여가 더 좋기 때문에 선택한 일종의 아르바이트였다. 거대한 원전 안에 처음 들어갔을 때 그 크기에 압도됐고 수많은 부품들이 원전을 구성하고 있는 사실을 바로 알았다. 황씨는 “그 작은 부품들이 필요한 이유가 다 있을텐데, 그렇게 중요한 원전에 짝퉁 부품을 쓴 것도 주민들은 아무것도 몰랐다”라고 말했다. 갑자기 피곤해졌던 날, 건강검진을 받으러갔다가 우연히 갑상선암을 발견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병원을 다니고 있다. 건강을 잃은 원전 인근 주민은 황씨뿐이 아니다. 고리, 영광, 울진, 월성 등 4개 핵발전소 주변 지역에서 원전 가동 이후 반경 10km 이내에 5년 이상 거주한 이후 갑상선암이 발병해 수술한 주민 618명과 가족 등 2,882명이 원고인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2월 부산지법 동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재판에서 패소했고, 지난 8월 말 항소심도 주민들이 패소했다. 2심 패소 당시 황씨는 ‘탈핵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원전 주변 주민은 원전으로부터 가까이 살면 살수록, 오래 살면 살수록 삼중수소에 피폭돼 있다. 그런데 한수원은 자꾸 기준치를 따진다. 내부피폭이 되어 있는데, 몸속에 방사능이 들어있는데 ‘기준치’를 따진다는 것은 양심이 없는 짓이고 너무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원고들은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해 마지막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법원의 결정을 수용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핵발전소가 위험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어요. 우리 몸이 증거에요. 갑상선암이 발병한 내 몸이 증거인데, 그 발병의 인과관계도 피해자가 밝히라고 하고 있어요. 그걸 힘없는 우리가 어떻게 밝히나요. (이날도 황씨는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과 원전으로부터 3km 떨어진 경주 시내 시민들의 소변과 식수에서 검출된 삼중수소양을 비교한 민간환경감기구의 검사 결과를 여러번 강조해 소개했다)”

 

 

정부가 노력한 건 없었나요.

(고개를 절레절레 지으며) 우리가 봤을 때는 아무도 노력을 안했어요. 환경부가 건강역학조사를 발표했지만 이것 역시 타지역보다 우리 지역의 위험성이 낮게 나왔다고 왜곡해서 발표했어요. 현 정부는 핵발전소가 기후위기의 대안이라고 해요. 그런데 기후위기는, 바닷물이 더워져서 쓰나미도 일어나고 태풍도 거세게 부는 거잖아요. 원전이 온폐수를 바다로 내보내서 바다가 뜨거워지는데 원전을 기후위기의 대안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나는.”

 

 

황분희씨

 

주민들도 원전 때문에 보상을 받지 않았냐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경주 월성 원전 1호기 재가동(2015년)하면서 주민 보상금(1,310억원)이 나왔어요. 그 덕분에 이 동네가 쑥대밭이 됐어요. 몇십 년 동안 원전으로 인해 피해 본 어르신들에게 몇십만원씩이라도 고루 나눠준다면 차라리 나았겠죠. 어떤 사람이 이 돈으로 사업을 한다고 했다가 돈을 못 갚아서 검찰에 고발돼 세상을 등지기도 했고요. 주민들 이름으로 빚도 있어요. 그런 보상은 오히려 동네를 망치는 거예요. 보상을 한다면 지역 주민에게 주는 보상금을 고루 나눠주도록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이곳을 스스로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가 없어요. 원전 인근이라고 누구도 매매에 나서지 않으니까 억지로라도 그대로 살아야 해요. 전기요금 할인, 대학등록금 소액 정도 지원받는 것만으로는 건강까지 잃은 내 삶이 보상이 되지 않아요.”

 

 

정부는 원전 확대 정책을 계획 중입니다. 현 정부가 고려해야 하는 게 더 있다면요?

“원전이 기후위기 대안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주민부터 살게 해주고 해야죠. 이주를 시켜주고 할 거면 그렇게 하길 바래요. 전기는 대도시와 기업들이 다 쓰는데 왜 피해는 시골 사는 우리가 몽땅 끌어안아야 할까요. 우리가 그동안 몰라서 이주시켜 달라는 말을 안했지만 편한 곳으로 보내줘야죠. 몇 십년 동안 경제성장하도록 몸이 병들어가면서 전기를 생산했으면 자기들이 우리를 구제해줘야 합니다. 그만큼 깨끗하면 서울에 지어요. 고압선도 필요 없잖아요. 왜 자꾸 힘없고 불쌍한 시골 열악한 곳에 지어놓고 방치하나요. 주민들에게 이건 ‘창살도 없는 감옥’ 살이입니다.”

 

황분희씨

 

황씨는 취재진에게 마을 이야기가 담긴 책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를 선물했다.
황씨는 취재진에게 마을 이야기가 담긴 책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를 선물했다.

 

지난 10년 동안 황씨는 중앙, 지역 등 다양한 언론을 만나 주민의 목소리를 전했다. 영화 <월성>에서도 그는 자신의 모든 삶을 공개했다. 그의 싸움을 응원하는 수많은 이들과 함께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황씨는 여전히 원전에서 걸어서 10분 떨어진 집과 마을을 오가며 살고 있다. 맑은 날 집 옆 텃밭에 서면 원전의 회색돔이 더욱 선명해 보인다. 황씨가 말하는 인권은 안전한 삶이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이 세계에서 간과하고 있는 불평등 문제이기도 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하지만 우리 요구에 대해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어요. 정부도, 국가인권위원회도 전기를 펑펑 쓰는 뒤편에 우리처럼 희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글. 최우리(한겨레 기자)
사진. 전재천(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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