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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돋보기 [2023.11~12] 돌봄을 외국인에게 맡기려는 진짜 이유

 

외환위기를 겪으며 우리 기업은 인력을 비정규직화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 보호법으로 정규직 전환 의무가 발생한 이후부터는 한발 더 나아가 본격적으로 인력을 외주화하는 편법을 애용했다. 그래서 우리는 하청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위험의 외주화를 마주해야 했다.
이제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제도를 통해 돌봄도 외주화하겠단다.
그것도 외국인에게.

 

돌봄을 외국인에게 맡기려는 진짜 이유

 

도대체 왜 이런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인가? 서울시는 저출생과 여성경제활동 참가율을 언급하고, 고용노동부는 맞벌이 부모의 가사와 돌봄 부담 경감을 이야기한다. 이미 이런 제도를 사용하는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출생률 제고의 효과는 없는 것이 증명되었다. 아마도 돌봄을 이런 식으로 손쉽게 타국의 여성에게 떠넘기겠다는 정부의 태도 자체가 저출산을 유발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는 것이리라. 또한, 맞벌이 부부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그중 월 200만 원 이상을 지불하고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고용할 수 있는 부부는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유형에 속한다. 정부는 시범 서비스 제공기관에 사업 준비를 위한 초기 운영비까지 일부 지원할 계획임을 모집 공고를 통해 밝히고 있다. 왜 국민의 세금을 이렇듯 제한된 인구집단을 위해 선별적으로 사용하려 하는가?

 

무엇보다도, 이 제도는 윤리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에렌레이히와 혹실드(Ehrenreich, Hochschild)는 『글로벌 우먼』(Global Woman: Nannies, Maids, and Sex Workers in the New Economy)에서 발전 중인 국가에서 온 외국인 보모는 아주 공적인 문제에 대한 사적인 해결책일 뿐으로 돌봄의 가치를 더욱 낮추고, 이주 노동자가 가족 간 유대를 유지하고 살 권리를 훼손하는, 즉 몇몇은 선진국의 외국인 보모가 되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더 어려운 국가에서 온 보모에게까지 맡기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마치 전통적인 남녀 관계에서 남성이 여성을 착취한 것처럼 이제 선진국 가족이 개발도상국가의 여성을 착취하는 그런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취약한 지위의 외국인 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에 제한이 있는 E-9 비자로 우리나라에 온다면 각종 차별과 학대 등 인권침해에 무방비로 노출될 위험이 크다.

 

이런 국제적인 노동력 이동은 또한 내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없애고, 또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낮추는 실질적이고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성이 ‘자발적으로 기꺼이 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왜곡된 가정 아래 그 가치가 항상 저평가되어온 일이다. 가사노동자에게 최소한도의 근로기준이 적용되도록 한 가사노동자법이 시행된 지 겨우 일 년 남짓 지났을 뿐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유입은 돌봄노동의 저가치화(devaluation) 현상을 더욱 악화하고, 일자리의 질을 하락시켜 생계를 위해 괜찮은 일자리를 찾는 내국인 노동자의 유입을 막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필요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지금은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이런 최소한도의 기준마저 벗어난 채 일할 수 있는 방도를 연구할 시기가 아니라 이용자 가족의 책무를 명시하는 등, 내국인 일자리를 위한 이 법의 내용을 보완하고 발전시킬 때이다.

 

 

돌봄을 외국인에게 맡기려는 진짜 이유

 

왜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는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은 유급노동을 과대평가한 기존의 가치를 그대로 답습하는, 기존의 저출생을 발생시킨 구조를 그대로 강화하는 정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보수로 가정 내 돌봄 노동을 하게 되면 시장 소득을 얻을 수 없고, 유급노동에 종사한다 해도 그 소득은 감소한다. 얼마나 소득과 재산을 늘리는가의 관점으로 한 사람의 노동의 가치를 평가한 탓에, 우리 생활의 질을 높이고 공동체의 장기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여러 다른 형태의 노동, 즉 돌봄 노동과 자원봉사, 지역사회운동 등의 가치는 항상 저평가되어 왔다.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 지급할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한 가구의 남녀 모두 더 장시간 일할 유인이 강화되고, 돌봄은 아무리 200만 원이라도 최저임금에 불과한 저임금을 주는 다른 노동자에게 맡겨 버릴 수도 있는 그런 일로 더욱 더 평가절하될 수 있다.

 

진정 정부가 저출산과 맞벌이 가구의 지원에 관심이 있다면 돌봄과 공동체를 위한 활동보다 유급노동에 쓰이는 시간의 가치가 늘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 되어온 현재의 지형을 바꿔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복지국가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해야 한다. 저출생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장시간 노동도 핵심적인 원인 중 하나이다. 조직이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면,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더 지고 있는 여성은 승진하기 어렵거나 심지어 경력단절이 되기 쉽다. 만일 경력단절이 된다면 남성보다 훨씬 덜 일하는 불안정한 시간제 일자리밖에 재취업할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성은 자녀를 낳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보편적 생계부양자 및 돌봄자 모델로 전면 개편하고 남성과 여성 모두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게 하려면 노동시간 단축이 필수적이다.

 

 

핵심은 장시간 노동자 여성의 경력 단절

 

물론 고소득을 올리는 맞벌이 전문직, 관리직 부부의 경우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해 여성이 좀 더 용이하게 일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전면적인 개편이 아닌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가구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못하겠지만, 소수의 고소득 혹은 고학력 여성만 일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소수의 고소득, 고학력 여성이 속한 가구조차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깨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리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있어도 가사와 양육의 주된 책임자는 여성이라는 관념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터이므로 여성이 남성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여기에 쏟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도입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돌봄서비스를 시장에 맡기고 지불능력이 있는 소수 가정에만 혜택(장기적으로는 혜택이라 볼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을 주는 무책임하고 근시안적인 정책이다. 대다수 다른 가정은 똑같은 시민이라도 이런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성평등한 복지국가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시민이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도록, 남성의 돌볼 수 있는 자유와 여성의 일할 수 있는 자유를 동시에 제고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질 높은 공보육 시설을 확대하여 가정 내 모든 여성이 과다하게 지고 있는 육아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정책의 최우선순위에 놓여져야 한다. 질 높은 보육을 위해서는 그만큼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과 처우가 개선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여성은 물론 남성에게도 유급 돌봄 휴직의 기회가 제공되고 실제로 남성이 조직 내에서 제약 없이 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충분한 공보육 서비스와 함께 도입된다면, 기본소득과 같은 제도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남성에게는 유급노동시간을 줄이고 가정에서의 돌봄을 택하게 할 수 있고, 여성에게는 소득이 없거나 적은 여성의 가정 내 교섭권을 높여 유급노동과 돌봄 사이의 선택의 자유를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돌봄을 외국인에게 맡기려는 진짜 이유

 

서울시 시범 사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는 정부가 돌봄을 외국인에게 맡기려는 진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정부가 아이를 돌보고 일하는 여성과 남성을 지원하는 책임을 지기 싫은 것이다. 장시간 노동의 관행을 깨고, 복지국가의 패러다임을 성평등하게 바꾸는 꼭 필요한 기획을 하는 것보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정부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도 과시할 수 있겠다. 무언가 했다는 것을 인정할 터이니 서울시의 시범사업을 끝으로 제도 도입을 포기하면 좋겠다. 이 제도는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완전히 역행한다.

 

 

글. 이주희(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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